인권해설: <바스티안>

인권해설

트랜스젠더는 바로 당신이 답하길 바라/보고 있다

 전 흔히들 트랜스젠더 인권에 관하여 논할 때 나타나는 어떤 상상적인 ‘구도’에 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또는 그 옆에 서 있는 트랜스젠더 인권 옹호자들)가 답하길 바라/보고 서 있는 구도. 이해하기엔 낯설고 불쾌하고 두려운 모습-말하자면 두껍고 어색한 화장 따위-으로 서 있는, 어쩌다 마주친 트랜스젠더를 응시하는 구도 말입니다. 그 구도 속에서 트랜스젠더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대체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지,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지,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는 알고 저러는지 관해 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럴 때 왠지 우물쭈물 하는 트랜스젠더. 답이라고 해봐야 모순에 불과한 답답한 소리만 내놓는 트랜스젠더. 그런 주제 자신이 남성/여성이라고 ‘주장’하며 화를 내고 찡찡대는 억지스러운 트랜스젠더들. 그러니 그들이 ‘주장’하는 권리라고 할 것들이 과연 ‘예상될 수 있는 문제’(예컨대 화장실 안전 문제 따위)를 떠안아야 할 만큼 보장 돼 마땅할 것일지… 트랜스젠더는 허상이 아닐지.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아니고서야 트랜스젠더가 현실에서 이런 구도 속에서 다른 이들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그렇게 흔하진 않습니다. 앞선 구도가 불쾌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구도가 성립되기 위해선 하나의 ‘마주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서, 다른 이들과 사회적 관계에서 부대낄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전제해야 합니다. 저런 상상적인 구도를 전제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러저러한 혐오적인 밈 따위를 내놓는 사람들에게 제가 어처구니없음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저런 대화를 나누려면 우선 트랜스젠더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트랜스젠더가 학교에, 일터에, 길거리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여유와 함께 충분히 존재하는지, 존재할 수 있는지? 저는 그래서인지 “우리 곁에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도)다”는 말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말 그대로(인구 비율이 0.25퍼센트라는 점을 보더라도) 우연적인 확률로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불특정 장소에 있을 수는 있지만, 그가 ‘트랜스젠더’로, 다른 사람과 충분한 소통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곁에’ 있을 가능성… 트랜스젠더로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는 장소를 놓쳐야 했던, 말하기를 멈춰야 했던-이를테면 학업, 경력, 진로, 가족과의 관계를 놓아버려야만 했던 저, 그리고 수많은 트랜스젠더의 역사-사람들을 떠올릴 때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트랜스젠더들이 말하기를, 어떤 장소에 있기를 단념하고만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과 ‘트랜스젠더’로서 마주치려는 계기를 만들고자 치열하게 말하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그 몸짓과 말을 너무나 쉽게 흘려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즉 저는 앞에서 말한 경우처럼 트랜스젠더만이 질문 받는 것이 아닌, 트랜스젠더도 어떤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로선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A, 그렇게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청소년기부터 “너무 (어려서) 헷갈리는 것이다”라는 부모나 사회의 애쓴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과 성별과 미래와 욕망과 삶을 말하고 새기려는 트랜스젠더들… 부모에게, 의사에게, 주변인에게 정체성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 맞춰 자신의 삶을 조직하기 위해, 이를 위한 단 한 번의 분명한 마주침을 위해,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청소년)들이 그 긴 고립의 시간동안 말과 욕망을 벼려내야 하는지… 남에 의해 규정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창출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부모를, 주변인을, 자신을 책임져야 마땅할 그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보지 않더라도(또는 애써 무시하더라도) 얼마나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지, 당신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제게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법적인 이러저러한 제도, 인식 등등 그런 흔한 답변을 내놓곤 했지만 왠지 불충분한 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스티안>에서 주인공이 20살이 되는 장면을 보고, 제 20살 때를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현 듯 20살을 맞아 처음으로 가졌던 기자회견문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 누구보다 뜨거운 의지와 열망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학교를 비롯한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증명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짝사랑이었던 당신들이, 그래서 많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줬던 당신들이, 교육청이 우리 트랜스젠더들만 당신들에게 우리를 증명하고 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응답할 때입니다. (…)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이 없으면 실패할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 당신이 마땅히 우리의 존재와 열망에 응답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서지 말고 응답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제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구도를 바꾸는 것. 당신들만이 우리를 응시하고, 답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당신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도 당신들에게 답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 그 사실을 새기는 것. 

한성(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튤립연대

튤립연대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 모임입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간의 친목도모, 인권향상을 위한 정치적 행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youthtranskor@gmail.

54인권해설

인권해설: <섬이없는지도>

인권해설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리베카 솔닛)
한 곳에서 여러 땅을 밟고 사는 느낌,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느낌.(에밀리)
애초에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다.(그레이스 김)

<섬이 없는 지도>는 2018년 여름의 뜨거웠던 제주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서울에서도 9월과 10월에 난민 반대 집회와 환영 집회가 동시에 열렸고,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광화문을 메우는 것을 매일 지켜보아야 했다. 한국 사회에 난민이 정치적으로 등장하면서 인권과 인도주의의 간극을 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인권활동가로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야스민이 난민인정이 불허되고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게 된 이후 제주를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 가지는 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부터 과소인간이기를 명령받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제주에서 함께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기억하고 서울에서 난민인권운동을 하면서 제주에서의 관계를 미래의 약속으로 만들어낸다. 이걸 이렇게 함께 해낸 이들은 누구일까.

섬은 손쉽게 고립으로 은유된다. 하지만 섬을 다루는 지배의 방식을 보면 뭍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섬을 고립된 채로 남겨둘 필요를 느낀다. 쉬러 가는 곳, 보급 기지화하는 곳, 먼저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곳, 별도의 질서를 통해서 자본을 유입하도록 하는 곳.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그려지는 예멘 난민 환대 활동,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 제2공항 건설 반대운동은 단지 제주 이슈로서 이해될 수 없다고 하면서,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섬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요청한다. 이를 통해서 누군가의 삶이 뿌리뽑히고 있는지, 어떤 관계들을 갈라놓고 있는지, 반대로 누가 환대하는지, 누가 새롭게 정착하는지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운동이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장소와 몸이 만나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통해서 약속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여성, 퀴어, 정주민, 이주민으로서의 몸들이 시간차를 두고 어떤 장소에서 먼저 도착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서로의 정체성과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평면적인 지도에서는 도저히 표시할 수 없는 이 움직임들이 섬을 살고 있다. 주민운동이라고 부르기엔 충분치 않은, 어떤 장소에 살아가는 것으로서 운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배제되어왔던 존재들의 해방을 위해서 오랫동안 중요한 전략이 되어왔다. 특히나 여성과 퀴어들이 일구고 있는 평화와 환대, 국경을 넘는 연대, 반개발주의, 반폭력의 현장의 삶은 너무나 고대해왔던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타리(나영정)
┃퀴어활동가로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성소수자, HIV 감염인 난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서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이다.


*본 인권해설은 26회 인천인권영화제 “시간의 겹, 당신의 겹: 돌아보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인천인권영화제 www.inhuriff.org

60인권해설

인권해설: <세월>

인권해설

자녀를 앞세운 비극적 사건의 유가족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상, 새로운 삶의 세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 집, 대화가 사라진 가족, 소원해진 친인척, 의미 없는 명절과 기념일,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하루, 삶과 일의 의미를 상실한 삶, 살아있음에 대한 구차스러움, 끊임없이 상상되어지는 자녀의 마지막…. 하지만 또한 살아있기에 일상은 또한 계속된다. 먹고 사는 일, 챙겨야 할 자녀, 돌봐야 할 부모,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죽음, 매해 돌아오는 자녀의 생일, 문득 스미는 웃음과 행복에 침투하는 죄책감 등….

진상규명을 위한 정치적 애도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자녀의 죽음 이후 유가족들이 마주해온 시간은 그동안 살아왔으며, 축적해왔던 경험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누군가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일상과 삶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듯, 자녀를 잃고 장사지내며 ‘사회적 상(喪)’을 치르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일상의 파괴와 일상의 유지, 재건을 동시에 경험해야 하는 중첩적 상황 속에서 비일상적이며 비동시대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1964년부터 2013년까지 50년간 10명 이상이 사망한 재난이 276건에 달한다. 반세기 동안 두 달에 한 번꼴로 대형참사가 발생하고, 유가족이 양산되어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재난참사 유가족의 삶은 제대로 조망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사건 직후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로서 회자되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라치면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상종 못 할 인간이란 사회적 오명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이들의 애도와 추모는 ‘빨갱이’로 매도되기도 했으며, 자녀의 죽음으로 생기를 잃은 삶은 무수한 ‘눈초리들의 감옥’을 경험하며 공동체와 사회로부터도 소외됐다. 상처받은 수많은 유가족이 침묵하고 자취를 감췄다.

재난과 상(喪)의 과정은 사회적이나 삶의 회복은 개인의 영역이라 치부하는 사회는 부정의하다. 자녀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과거로의 복귀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회복이란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닌 앞으로의 삶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회복과 제도개선을 통한 사회적 상(喪)의 완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희생에 대한 오랜 추모와 애도는 안전한 사회건설에 대한 공헌의 표현이자 재발방지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또한 유가족의 정체성으로만, 유가족다움으로만 유가족의 삶이 구성된다고 믿는 사회는 빈곤한 사회다. 수없이 무너짐을 반복하며 길을 내고 있을 유가족들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로, 다양한 욕구로 상실을 애도하고 상실 이후를 살아낼 수 있을 때야 사회가 존재한다 할 수 있다. 삶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저변의 인식변화가 필수적이다. 유가족의 삶을 옆에 두려는 부단한 노력, 교육과 접촉을 통한 만남, 유가족다움이 야기하는 폐해에 대한 지식의 향상은 유가족들의 삶을 위해서,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인 가해자 혹은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시도될 때, 우리는 사회의 재건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회적 치유가 시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해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경상국립대 학술연구 교수
┃416세월호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재난참사 유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인권기록활동을 통해 인권문제를 벼리며, 재난참사, 국가폭력, 소수자에 대한 기록과 연구를 해오고 있다.


*본 인권해설은 26회 인천인권영화제 “시간의 겹, 당신의 겹: 돌아보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인천인권영화제 www.inhuriff.org

59인권해설

인권해설: <당신과 나를 잇는 법>

인권해설

‘차별금지법온에어옴니버스다큐멘터리프로젝트’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팀은 여러 의미로 ‘진행중’인 프로젝트 팀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2030퀴어페미니스트들의 평등에 대한 관심과 감각이 관점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미디어활동가들의 역량강화 프로젝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2021차별금지법연내제정쟁취 농성장’을 세우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 미디어팀은 농성기록단을 구성해 운영했다. 다양한 현장 연대 경험이 많은 활동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신진 미디어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기록이 되었다. ‘미디어활동이라고 불리우는 활동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활동가, 자신을 활동가라고 불러야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너털 웃음 지으며 말했던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혔으며, 모두 ‘이 현장에서 무엇인가 하고자’ 달려나온 마음들이었다. 연대체인 차제연의 담당자인 나는 그 속에서 연분홍치마에서 해왔던 현장미디어 활동의 연장이자, 함께 고민해왔던 ‘현장’의 의미의 확장을 실험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별’에 대한 다른 감각과 언어를 가진 2030퀴어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겨울 농성을 기록하며 주 1회 짧은 영상으로 함께 만든 시간의 기억을 다지는 작업을 기획했던 미디어팀은, 농성장을 접고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출발하자 다른 방식으로 고민을 이어갔다. 차별금지법에 관심있는 2030퀴어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자 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모두’를 포괄하는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언어화되지 않는, 뾰족하게 정답이 내려지지 않는 차별에 대한 ‘감각’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이것이 옴니버스라는 형태로 엮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제작팀은 수개월을 주 1회 혹은 그보다 더 자주, 혹은 조금 덜 빈번하게 만나며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 작업과정은 연분홍치마라는 인권운동단체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이 가지고 있던 새로운 활동비전에 포문을 여는 기획이 (결과적으로)되었다. 그간 연분홍치마는 신진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많지 않지만 연분홍치마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라는 자원을 나누고, 서로의 가능성을 함께 키우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차에, 알게모르게 지원하던 이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제작하게 되면서 이런 활동들을 함께 만들어나갈 틀을 짜게 된 것이다. 앞으로 ‘놀이터 프로젝트’는 차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가진 이야기들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완성’의 의미는 관객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차별’이라는 거대한 단어 앞에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이 옴니버스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자신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4편의 단편과 한편의 에필로그가, 수천의 자기 이야기로 덧붙여 완성되는 이야기가 되어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방법이 되기도, 우리를 평등하게 만드는 기본법이 제정되는데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넝쿨(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저항의 현장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고 여성주의적 삶을 실천하며 연대하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55인권해설

<당신과 나를 잇는 법> 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 노트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외침과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믿음은 곧 경계 없는 초대장이 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현장은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다.

2021년 11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장에서 만난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이 있다. 기록촬영을 도우러, 연대자로서 농성장을 찾은 이들은 어느샌가 신진작가이자 미디어활동가로서, 2030 퀴어페미니스트로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당사자가 된다. 이들이 경험하고 감각하는 차별이란 무엇일까. 이들의 일상과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닿아 있을까.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네 개의 에피소드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된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청년 여성이 주목하는 차별의 지점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 그리고 ‘평등한 우리’를 위해 나아가는 길에 놓여있는 나/너/우리의 혐오와 낙인을 되짚는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감독 자신의 내밀한 경험이기도 하면서, 이 경험이  ‘차별금지법’을 경유하면서 전개되는 고민과 상상이기도 하다. <오프닝>이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는 결국 관객을 이들 각자의 농성장으로 초대한다. 관객은 이 초대를 거절하기 쉽지 않으리라.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의 기획, 제작 과정에는 서울인권영화제도 살포시 함께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엮어내는 과정을 보며,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섹션에 이 작품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다른 세상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로 향하는 길 위에 경계 없는 초대와 용기 있는 응답이 이어진다. 신진 미디어활동가들은 이를 기록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또 다른 만남의 광장을 제안하며 알록달록 아름다운 길을 열어낼 것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58프로그램 노트

[25회 둘째날] <파디아의 나무>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소식

사진 1. 무대에서 <파디아의 나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무대 좌측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뎡야핑 활동가, 우측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미나상, 가운데엔 명혜진 수어통역활동가가 서있다. 상영관 우측 끝에는 장정수 속기사가 문자통역을 하고 있다. 객석에 관객이 두어명 앉아있다.

25회 서울인권영화제의 둘째날의 막을 연 상영작은 [집을 그리다] 섹션의 <파디아의 나무> 입니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뎡야핑님께서 와주셨습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한국에서도 이라크에 파병을 했을 때 문제의식을 가진 평화활동가들이 만든 단체로, 뎡야핑님께서는 2004년에 합류하셔서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팔레스타인을 방문하시는 등 연대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정체성부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 부족, 한국 기업의 책임까지 영화와 관련된 풍부한 이야기 나눠주셨습니다.

“저는 사사는 못 가봤지만 이스라엘 안에 있는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많이 가봤어요. 저는 아무 신분이 아니니까 돌아다닐 수 있는데 정작 가야 되는, UN에서 인정한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안 된다고 해서 갈 방법이 아예 없어서 저렇게 그리워하는데도 못 가본다는 게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반대로 팔레스타인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유롭게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요. 내부에서 이스라엘이 바깥에 나가게 허락해주지 않기 때문에요. 팔레스타인 난민이든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이든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데도 국제사회 의제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얘기가 지워져 있어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무단으로 불법적으로 부수는데 한국의 현대중공업의 중장비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고, 최근에도 서안지구 마사베르야타라는 마을에서도 불법적으로 부수는데 현대 중장비가 사용돼서 현대중장비에 대한 보이콧이 (팔레스타인에서부터) 있었거든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앞으로 같이 그런 운동을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는 부족한 팔레스타인 난민 의제에 대한 관심이 <파디아의 나무> 상영에 참석해주신 관객분들로부터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난민 이야기에 끝까지 주목하고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61소식

[25회 둘째날] 오늘의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소식

[집을 그리다]

스틸컷1. 창문 너머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는 파디아의 뒷모습.

파디아의 나무 Fadia’s Tree

사라 베딩튼 | 영국 | 82분

9.22 목 14:00

관객과의 대화 with 덩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스틸컷1. 녹색 식물이 가득한 마당. 김영식 선생이 돋보기로 작은 나무의 이파리를 들여다 본다.

2차 송환 The 2nd Repatriation

김동원 | 한국 | 156분

9.22 목 16:00

관객과의 대화 with 김동원(감독), 영철(피스모모)

 

[존재의 방식]

스틸컷1. 니샤가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있고 뒤에서는 남편이 자전거를 밀고 있다.

빠마 Perm

섹 알 마문 | 한국 | 30분

9.22 목 19:10

관객과의 대화 with 섹 알 마문(감독)

 

스틸컷7. 집과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로힝야를 거닐다 Wandering, A Rohingya Story

멜라니 캐리어, 올리비에 히긴스 | 캐나다 | 87분

9.22 목 20:10

관객과의 대화 with 김기남(사단법인 아디)

50소식

[25회 첫째날] 개막식 이모저모 앨범

소식

사진1. 성미산마을극장이 있는 시민공간 나루의 외벽에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역행의 시대를 역행하라 현수막을 걸고 있는 모습. 위에서 아래서, 특히 오늘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출동해주신 활동가들이 고생을 많이 해주셨답니다. 나무로 된 건물 외관과 보라색 포스터 현수막이 꽤 잘 어울리지 않나요?

 

사진2. 극장 안 분장실을 활동가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요다, 인천인권영화제 랑희 활동가가 분장실 겸 대기실에서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기념 티셔츠를 포장하고 있을 때 한 컷!

 

사진3. 개막식 사회자인 서울인권영화제 요다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있습니다. 옆에는 수어통역활동가 명혜진님의 수어통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진4. 개막식을 빛낸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운동~해요! 사진은 앵콜 무대의 모습입니다. 관객들도 무대로 내려와서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정말 운동이 되더라고요!

 

사진5. 개막작 “바스티안”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모습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미나상의 진행으로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이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활동가 한희님이 이야기손님이 되어 3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대를 비춘 네모난 조명이 꽤 귀여운데요!
57소식

[활동가 편지] 보름달은 생각보다 말랑하고

소식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울림에 편지를 올리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입니다. 한가위 보름달 아래서 몇 자를 적어 보아요.

벌써 추석이 지나가고 있다니, 올해는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을까요. 25회 자원활동가들도 한참 전에 만난 것 같은데 이제야 일 년이 되어가고 있네요. 봄에 차별금지법 제정 쟁취 농성장을 왔다갔다 했던 것도 오래 전 같은데 아직 서너 달 지났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사실 서인영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작아졌어요. 지난 달부터는 상임활동가를 포함해 여덟 명이 25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외롭고 어려운 순간도, 많긴 합니다. 이번 태풍 때 사무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을 땐 으앙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어요. 항상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지만 아직도 좌충우돌 미숙한 점이 너무 많은 저에게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네요. 그러다 보니 해야 하는 것들, 더 깊이 살펴봐야 하는 것들을 자꾸 놓쳐서 “죄송해요”라는 말도 붙이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죄송해요”보다는 “감사해요”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사진1. 태풍 힌남노가 온 날, 사무실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모습. 천장의 나무 타일이 비에 젖어있다.

그래도 모두들 일당백을 하며, 서로를 다독거리면서 어느덧 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있어요. 추석 날 저녁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동고동락하는 한국농인LGBT의 보석 활동가, 그리고 번역이며 자막작업이며 손가락에 불이 나는 우리 자원활동가 요다님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 편이 짠하기도 합니다. 요다님이 예쁘게 담아오신 송편과 전을 보자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서 눈가가 시큰해지네요.

너무 말랑해질 때면 초심을 떠올려 봅니다. 실은 초심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어요. 자원활동가로 처음 서인영에 발을 들였을 때는 ‘나는 영화도 좋아하고 인권도 좋아하니까 인권영화제가 딱이겠군’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상임활동가 제안을 받았을 땐 저도 ‘잘’ 쓰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딱 그 정도였어요. 큰 포부라든가 하는 건 조금 쑥스럽지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저의 초심도 나름 괜찮은 듯해요. 저는 좋아하는 일 아니면 못하거든요. 그리고 그 일이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일인 것은 행운이니까요. 최소한 세상을 망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요. 그래서 지치거나 외로울 때, 마음이 찡하고 눈물이 터질 때, 초심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과 우정은 이긴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일은 사랑과 우정의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내가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는 일임을 잊지 말자고요. 억지 책임으로, 억지 노력으로 하지 말자고요. 그러면 너무 억울해지니까요. 

서울인권영화제는 조금 작아졌지만,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영화제 준비를 하며 ‘기틀 다지기 모임’도 진행이 되었는데요, 서인영에 다소 부족했던 조직의 기반을 좀 더 단단히 다지는 활동이었습니다. 25회 영화제가 끝나면 다시 이 활동에 집중할 예정이에요. 이는 초심을 다시 잡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초심은 첫 마음이 아니라, 어려울 때 떠올리는 마음인 것 같기도 해요. 좀 서툴어도, 사실 서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리듬으로 뚜벅뚜벅 서인영의 내일을 계속해서 열어보려고 합니다.

말만 많고 결론이 없는 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기쁠 때는 충분히 기뻐하고, 아플 때는 충분히 아파하고, 사랑할 때는 충분히 사랑하며 개막까지의 시간을 보내봐야겠습니다. 힘이 들 땐 오늘처럼 이렇게 수다도 떨어보고 그러면서요.

그럼, 우리 곧 만나요!

2022년 9월 한가위 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드림

 

55소식

뚝딱뚝딱, 25회를 짓는 서인영 풍경

소식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아 두근두근 하는 요즈음입니다. 혹시 영화제 준비에 박차를 가한 사무실과 활동가들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궁금해하시길 바라며…) 이번주 서울인권영화제의 풍경을 소개합니다!

일단 자막공장이 열렸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모든 작품에 자막해설을 넣어 상영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어요. 국내작 같은 경우는 영화의 감독님들이 직접 자막해설을 작성하여 넣어 주셨습니다. 장애인접근권 실천도 영상/영화의 기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길 바라는 서울인권영화제의 마음에 뜻을 함께해주셨기 때문이죠.

사진1. 자원활동가 요다가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 에 자막을 입히고 있다. 창문 바깥은 깜깜하고 사무실 안은 환하다.
사진1. 자원활동가 요다가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 <바스티안>에 자막을 입히고 있다. 창문 바깥은 깜깜하고 사무실 안은 환하다.

그렇다면, 해외작은 어떻게 할까요? 먼저 서울인권영화제의 든든한 번역활동가가 작품을 보고 한국어로 번역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활동가가 직접 감수에 들어갑니다. 감수를 마치고 나면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들이 소중한 번역을 자막으로 입혀요. 그러면 1차 완성! 그리고 드디어 소리정보를 작성하고, 이를 자막으로 또 입힙니다. 그렇게 되면 자막해설이 있는 인권영화로 재탄생하게 되지요.

사진2.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 업무 공간. 컴퓨터 세 대가 방 안에 들어 차 있고, 그 중 한 컴퓨터 앞에서 자원활동가 나기가 자막 작업 중이다. 뒤에서는 자원활동가 송연이 번역 중이다.
사진2.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 업무 공간. 컴퓨터 세 대가 방 안에 들어 차 있고, 그 중 한 컴퓨터 앞에서 자원활동가 나기가 <파디아의 나무> 자막 작업 중이다. 뒤에서는 자원활동가 송연이 <긱 이즈 업> 번역 중이다.

이렇게 적으니까 엄청 뚝딱 되는 것 같은데요, 사실 시간이 꽤… 아니 엄청 걸린답니다. 그래서 자원활동가들은 사무실을 오며 가며 빛의 속도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기죠. 컴퓨터가 있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셋이 한 번에 자막작업을 하고 있으면 마치 뒤주 같은 풍경이…

사진3.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 보석 활동가가 모니터를 보며 수어통역 중이다. 보석의 강아지 보리가 보석 앞에 누운 채 귀를 쫑긋 하고 있다.
사진3.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 보석 활동가가 모니터를 보며 수어통역 중이다. 보석의 강아지 보리가 보석 앞에 누운 채 귀를 쫑긋 하고 있다.

자막해설본이 완성되면 드디어… 수어통역활동가들이 작품을 보며 한국수어 번역을 고민합니다. 작품의 제목부터 삽입된 노래의 가사, 중요한 소리정보 등을 번역하고 확인하며 통역을 준비하죠. 때로는 한국수어에 없는 단어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에서 자주 나오는 ‘탄소’가 그랬어요. 그래서 탄소를 수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 뒤에 영화 시작 전 탄소 수어를 설명하는 영상을 넣게 되었습니다.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문법, 어휘 등이 다르기 때문에 신조어나 비유적인 표현도 꼼꼼하게 번역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수어 표현이 없도록 만전을 가하는 한국농인LGBT(준)의 활동가들은 언제 봐도 너무 멋져요!

추석 날 저녁에는 보석 활동가가 강아지 보리와 함께 와서 세 편의 작품을 통역하였습니다. ENFP가 분명한 보리는 엄마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지쳐 잠이 들고… (영화 중간에 도어락 소리가 나오자 귀를 쫑긋 하고 벌떡 일어난 보리…)

이번주 사무실 풍경, 어떤가요? 다음에 또 재미있는 풍경이 생기면 울림 구독자 여러분께도 꼭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이렇게 여러 장면들을 통해 탄생할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꼭 와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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