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

프로그램 노트

여러 개의 문이 겹겹이 쌓여있다. 문지기는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그럼에도 문을 열기 위해 그 힘과 맞서는 이들이 있다.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율리아와 카쨔는 틴스코이 장애인수용시설에 살고 있다. 그들은 시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며 투쟁한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판단하는 국가가 그 문 앞에 굳게 서 있다.

개인이 일상을 유지할 자격을 국가가 판단할 수 있을까. 혹자는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시설로써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기저에는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 존재하며, 그것에서 벗어난 이들의 삶을 교정의 대상으로 단정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모두의 몸과 몸의 경험이 다른만큼 일상은 모두에게 다르고, ‘건강한 상태’ 또한 모두에게 다르다. 율리아와 카쨔는 그들이 시설 밖에서 살고 싶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무엇을 더 증명해야 했을까.

코로나19를 피해 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던 한편,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코로나19는 모두의 재난이다. 그러나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은 시설이 끝끝내 은폐하던 사실을 드러냈다.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의 정신장애인 입원자 102명 중 10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칠곡 중증장애인 수용시설에서는 2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예천의 중증장애인 시설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할 수 있었을 때, 모든 행동이 집단적으로 이뤄지고, 최소 주거면적마저 보장되지 않고, 사소한 이동마저 제한되는 공간에서 바이러스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개인은 지워졌고 집단만이 남았다. 사회는 그들을 ‘보호’라는 이름 아래 격리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대남병원에 ‘코호트 격리’ 조치를 취했다. 시설의 사람들은 집단감염과 격리로 인해 다시 한번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이미 격리에 의해 건강권을 제한당한 이들에 대한 코호트 격리는 ‘보호’가 아니라 분리와 방치에 불과했다. 치료가 아닌 격리는 재난의 불평등을 심화했고,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대책이 되지 못했다.

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시설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나 보호자가 있으며, 시설 내의 인권침해는 시설 개념 자체의 문제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의 문제나 활동지원의 부재가 해결되지 못한 사회를 사는 장애인에게 ‘시설’은 선택이 아닌 강요의 결과가 될 수 있다. 시설 밖에서의 삶을 상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탈시설의 선택과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탈시설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에 속해야 하기에, 우리는 탈시설을 논함과 동시에 탈시설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에 탈시설은 시설로부터의 탈출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코호트 격리에 대한 사회의 열광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시설의 논리’를 증명한다.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 존재하고, 존엄한 개인의 몸이 경험하는 세계를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설이다. 시설화된 사회는 탈시설 이후의 개인에게도 계속하여 삶에 대한 증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일상을 규율하는 ‘보호’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의 고유한 욕구와 필요에 대한 책임과 지원이다.

누군가가 남겨졌다. 사람들은 ‘우리’를 만들었고 ‘그들’을 구분했다. 소수자에 대한 분리와 배제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반복되어왔고, 이 시대의 혐오는 보호와 시혜의 위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차별과 폭력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더는 살아갈 자격을 증명하라는 무례를 범하지 말라.

누구도 남겨지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는, 문 밖으로.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 은긍

24프로그램 노트

추천사: 사고 파는 건강

인권해설

영화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의약품 접근성’입니다. 특히 지적 재산권과 특허에 대한 부분을 잘 파고들어 설명해줍니다. TRIPS로 불리는 ‘무역 관련 지식 재산권 협정’은 제약회사들이 특허에 목을 매기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TRIPS 이후 국제 무역에서 특허권이 절대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의약품을 20년 이상 세계 독점하는 일이 가능해졌거든요. 독점하는 동안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국가와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제약회사가 부르는 돈을 낼 수 있는 국가, 그리고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죠.

불평등과 재난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노출되고, 더 많은 상처를 주곤 합니다. 영화는 가난하고 힘없는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에게 더 가혹한 의약품 공급 현실을 보여줍니다. 개발도상국을 가장 괴롭히는 질병은 AIDS,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병인데요. 이들 질환은 약만 있으면 극복 또는 관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약을 구매할 방법이 없어 감염자는 방치되고, 주변으로 전염됩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 약이 있어도 그 약을 삼킬 깨끗한 물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매년 1500만 명이 남반구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전염성 질환의 85%가 발생하는 남반구에서 11%의 의료 비용을 쓰고 나머지 89%를 북반구에서 쓴다는 사실은, 이 조용한 재앙이 불평등에서 비롯된다는 걸 증명합니다.

김주성(늘픔약사회)

23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사고 파는 건강

프로그램 노트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이 있었어도 사람들은 이토록 코로나19를 두려워했을까? 약이 없는 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람들은 의약품 개발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약의 개발이 코로나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약이 없는 병과 약이 있는 병뿐만 아니라, 약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아있는 한, 감염병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고 파는 건강>은 의약품 공급에 대한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역시나 가난하고 힘없는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에게 의약품 공급은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의약품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결코 개발도상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는 현재 의약품 접근에 제한을 겪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따라 약품의 가격을 인상하기도, 그 공급을 중단하기도 한다. 의약품 특허 독점을 위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경쟁에 환자의 건강권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닌 것이다. 매력적인 소비자가 없는 곳에 약은 없다. 과연 “00을 살 돈이 없다”라는 말 앞에 ‘약’과 ‘건강’이 들어갈 수 있을까.

불평등한 의약품 접근권 문제의 중심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트립스(TRIPS,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협정이 있다. 이 협정은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에 20년의 특허를 주어 해당 기간 동안 타회사에서 일반복제약을 제조할 수 없도록 시장 독점권 지위를 부여한다. 의약품 개발이 공공제약이 아닌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다뤄지면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먼저 특허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결과물은 고가의 약이 되어 시장에 돌아오고, 의약품 접근권 문제는 여지껏 해결되지 않았다. 1940년대 유럽에서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던 때 대량 공급되었던 말라리아 치료제 ‘디디티’는 유럽 내 말라리아가 사라지자 생산이 중단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내성이 생긴 구식약에 의존하고 있는데, ‘아프리카 말라리아’를 위한 약은 누가 개발하고 있는가. 현재 국내에서도 상업성을 이유로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생겼다. 국내 민간 제약사들은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분명하고, RNA변이가 쉬워 개발하더라도 수익을 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시바삐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수익성을 기준으로 개발 여부를 따지고 있는 상황이다.

트립스에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겪고 있는 나라에 한해 특허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한시적으로 일반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의약품 특허 강제실시’라는 규정이 있다. 코로나19를 신속하게 퇴치하기 위해 캐나다와 독일은 코로나-19에 치료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들에 특허 강제실시를 신속하게 발동하도록 법률 개정을 마쳤고, 칠레와 에콰도르 의회도 강제실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달리 국내 특허청은 ‘코로나19 특허정보 내비게이션’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오히려 국민들에게 특허출원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백신 개발을 권력 독점과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바라보며 경쟁적으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공평한 분배를 보장하기 위해 결성한 세계보건기구(WHO) 협의체에 불참하기도 했다. 이처럼 코로나19사태를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들 속에서 섣불리 어떤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선진국이라는 지위와 상관없이, 의약품 접근성이 확보된 공공성이 높은 국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제약회사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치료제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치료제를 보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누구에게 먼저 약을 제공할 것인지. 치료제의 균등 배분은 어떠한 공적인 전달체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인지. 초국가적인 의약품 공동 개발 관리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 코로나19는 가히 인재라고 불릴 만큼 의료 및 제약 관련 체제와 관리에 나 있던 구멍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단순히 ‘아웃’-코로나 아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코로나를 넘어서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고, 누구도 남겨지지 않을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선아, 스

27프로그램 노트

International Film Submission for 26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소식

International Film Submission for 26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Submission for human rights films to be screened at the 26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7 ~ 25 February 2024

SUBMIT FILMS https://bit.ly/submission26th

■ Submission Form Accessibility Guide

The online entry application page(https://bit.ly/submission26th) you can fill out an online entry form for the 26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in 2024. If you are having trouble filling out this application through the Google Form, please contact the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 82-2-313-2407, hrffseoul@gmail.com). We will make it easier for applicants to complete entry forms through more convenient methods and forms.


ELIGIBILITY

  1. Films that provide insight into human rights issues.
  2. All genres including fiction, documentary, animation and experimental film can be accepted.
  3. Film selection criteria are based on artistic completion and, above all, sincerity in dealing with human rights issues, irrespective of genre, format and length.
  4. The year of film completion has to be 2022~2024.
  5. SHRFF responds to the calls of Palestinians and joins the BDS movement against Israel.  Any film commissioned or funded by an official Israeli body or non-Israeli institution that serves Brand Israel or similar propaganda purposes regardless of the contents of the film will not be accepted. See details on BDS movement and 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 https://bdsmovement.net/pacbi■ The 26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will be held in June, 2024.

ENTRY REQUIREMENTS

  1. International film submission deadline: 25, February, 2024.
  2. Entry fee: no entry fee is charged.
  3. Both entry form and screener must be sent by the deadline.
  4. Only online links for previewing is accepted. The streaming of a film must be free of charge, the number of previewing must not be limited and the film must be available till the opening day of SHRFF which is supposed to be June, 2024.
  5. Every film is recommended to have english subtitles burnt regardless of its original language. If it is not available, a full english script must be submitted together with the screener. Deaf and hard of hearing or blind and visually impaired people may participate in the judging process.

SELECTED FILMS

  1. The selected films will be announced on the web page of SHRFF and each submitter of the selected film will be informed via each email.
  2. For each selected film, the submitter or the filmmaker will be asked to provide;
    1. subtitles and dialogue transcription of the film in both original language(s) and English. The transcription must be identical to the screening copy. It is recommended to contain music and sound information not only dialogue.
    2. stills from the film
    3. a photo and filmography of the director
    4. a trailer and the screening copy/data file. (Files must be in a format of either mov or mp4. SHRFF do not afford to screen DCP, 16mm or 25mm due to the outdoor screening.)
  3. For Disability Justice; Every selected film will be screened with Korean Sign Language and Korean subtitles that relate narration and dialogue, music and sound information.
  4. Publicity and Archiving
    1. SHRFF can use three minutes of the film for the publicity. If the runtime of the film is under 30 minutes, SHRFF can use 10% of the runtime in maximum.
    2. SHRFF can use the trailer and all publicity materials for publishing catalogue and other promotional purposes.
    3. The final screening copy including KSL and Korean subtitles of each film will be strictly archived in the festival office for research and educational purpose.
    4. Films can be screened at other human rights activism organizations, non-profit organizations or schools in Korea after the festival screening, if the submitter agrees in advance.
    5. Films can be provided for annual or tour screenings for a cultural or human rights activism purposes after the festival screening, if the submitter agrees in advance.
    6. Any conditions that have not mentioned above can be discussed between the submitter and SHRFF.

ANY QUESTIONS TO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hrffseoul@gmail.com (+82)-2-313-2407


SUBMIT FILMS https://bit.ly/submission26th

47소식

2024년 1월 재정 보고

소식

40소식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작품 공모 알림

소식

26회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할 인권영화를 찾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1996년부터 영화를 통해, 영화제라는 방식으로 인권의 길을 닦아왔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인권감수성 확산을 위하여, 평등한 접근권 실현을 위하여, 인간을 위한 대안적 영상 발굴을 위하여 오는 6월 스물여섯 번째 서울인권영화제를 개최합니다. 인권영화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인권영화는 누구나 차별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26회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할 작품을 찾습니다.

  1. 삶의 서사를 이야기하며 투쟁의 현장으로 이끄는 인권영화
  2. 2022 9 이후 제작하여 완성된 작품
  3.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한글자막이 있는 작품(상영작 선정/프로그래밍 과정에는 농인/청인 활동가가 모두 참여할 수 있으므로 한글자막이 없을 경우 심사가 불가합니다.)
  4. BDS운동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 작품 (BDS운동, 문화보이콧 운동과 관련하여 자세한 사항은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pal.or.kr/wp/?page_id=406, https://bdsmovement.net/pacbi)

 


◼︎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 신청서 다운로드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 신청서26회 서울인권영화제 단체 출품 신청서■ 신청서 작성 접근성에 대한 안내
신청서 작성에 어려움이 있다면 서울인권영화제(02-313-2407, hrffseoul@gmail.com)로 연락해주세요. 출품인에게 더욱더 편한 방법과 양식을 통해 출품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개인 출품과 단체 출품에 대한 안내
4작품 이상 출품할 경우 “26회 서울인권영화제 단체  출품 신청서” 파일에 작성하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품인은 본 신청서의 사본을 보관해야 합니다.


◼︎ 출품 방법

1. 출품 기한(국내작): 2024년 1월 31일 수요일 23시 59분

2. 출품 방법: 본 신청서를 작성하여 hrffseoul@gmail.com으로 첨부하여 제출합니다. 메일 및 첨부파일 제목은 “26회 작품 공모 -작품명”(단체 출품의 경우 “26회 작품 공모 – 단체명”)으로 작성해주세요. 엑셀 및 pdf 파일 모두 제출해주세요.

3. 출품 신청서와 스크리너 모두 기한 전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4. 스크리너는 온라인 링크만 가능합니다. 제출한 링크는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작품 심사 완료일까지 접근 가능해야 합니다.

5. 한국수어나 화면해설이 입혀진 스크리너가 있다면 해당 영상을 제출합니다.


2023. 1. 3.

서울인권영화제

94소식

인영의 인연들 1회: 마주&소하

소식

특집기획! 인영의 인연들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을 만들어나가고 지켜보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픈 마음에 기획한 특집 인터뷰 시리즈! 서인영의 인연들을 만나보는 시간, “인영의 인연들”입니다. 첫 번째 인연들은, 올해부터 서인영 활동을 함께하게 된 자원활동가이자 울림의 든든한 편집자인 마주&소하입니다. 고운&나기가 마주&소하를 만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인연을 맺게 된 각자의 계기들

사진1. 산타와 예수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은 마주와 스타워즈 후드 티셔츠를 입은 소하. 이야기하는 소하를 마주가 바라본다.
사진1. 산타와 예수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은 마주와 스타워즈 후드 티셔츠를 입은 소하. 이야기하는 소하를 마주가 바라본다.

나기 : 인사를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한 분씩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눈치 눈치)

마주 : 저부터요?

소하: 앗싸!

마주 : 면접 보는 기분이네, 큰일났네. 마주라고 하고요. 일도 하고 영상도 만들고 8월부터 서인영 자원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와 산타가 있는 옷을 입고 왔어요.

고운 : 어디서 나셨어요?

마주 : 다사이 유상무라는… 끝이에요.

소하 : 저는 소하라고 하고요,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에 살고요.

나기 : 이렇게 거주지를 오픈해도 되는 건가요?

소하 : 동단위는 뭐 (웃음) 최근에 오토바이 정비 일을 시작해서 지금 적응 중이고, 저도 올해 처음으로 서인영 자원활동 하게 되었습니다.

나기 : 반갑습니다. 두 분 다 올해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고 들어오셨는데, 어떻게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주 : 충동적으로 지원하긴 했는데요, 공고를 본 시기에 지금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이유에서 세상에 대한 절망이 깊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 고민이 많던 시기였고요.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것 같아요. 한편 영화랑 멀어지기가 싫었고, 같이 이야기하고 함께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 인스타 게시물이 너무 깜찍해서. (웃음)

소하 : 저도 마주님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방황하다가 들어왔죠. 저는 언제쯤이더라, 올봄 즈음에 직장을 잃게 되면서 새로운 일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인권 관련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위 친구들 중에 인권활동가가 있었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자체가 일이라는 게 되게 보람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활동가가 되려면 딱히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잖아요. 어디에 관심이 더 많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의 역량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이런 걸 해보는 걸 어떠냐 해서 추천해준 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이었어요. 그래서 친구 소개로 자원활동을 신청하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막연히 영화제라고 하니까 영화제 자원봉사 같은 건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었는데 와서 설명을 들으니까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어요”

나기 :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 그중에 소하님께 특히 다가온 일이 있을까요?

소하 : 글쎄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뭘 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기여를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스스로 좀 부끄러운데요.

나기 : 그럴 리가요.

소하 : 보통 영화제 자원활동 같은 건 영화제 운영과 관련된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는 기획부터 다같이 참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들이…

고운 : 보통 그런 점들이 되게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을 하시는데 그런 점들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소하 : 활동하는 기분을 내게 해준달까?

나기 :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걸까요?

소하 : 네, 그런 것 같아요.

마주 : 맞아요.

나기 : 마주님은 아까 서인영에 들어오기 전 절망감이 있기도 했고, 그러는 한편 영화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달라진 점이 있으세요?

마주 : 전에 영화제 자원활동가를 몇 차례 했었는데 그때는 되게 이 행사를 위해서 단기간 노동력으로 차출되었다는 느낌, 나를 소진시키고 버려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영화제 자원활동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다 같이,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어떤 사람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느낌이 아니라, 같이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라는 점에서 영화제를 만드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영화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만날 수 있는지 다시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기 : 감동스러워라… 게다가 지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다큐 작업과 서인영 활동을 함께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마주 : 다큐를 만들거나 구상을 하다보면 영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간접적으로 함께하는 것이다보니까 내가 이 사람들을 불러서 인터뷰를 시키고 이런 것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들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영화제 활동을 같이 하다 보니까, 거리상영회도 그렇지만 이 영화로 하여금 사람들이 모여 같이 이야기할 수 는 장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라는 게 어떻게든 인권이랑 맞닿을 수 있구나, 투쟁 자체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기 : 마주님이 말씀하신 게 서인영의 활동 목표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고운 : 네, 몸소 수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진2. 카페 한 쪽에서 긴 머리를 묶고 소하에게 질문하는 나기, 답하는 소하. 마스크를 쓴 마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2. 카페 한 쪽에서 긴 머리를 묶고 소하에게 질문하는 나기, 답하는 소하. 마스크를 쓴 마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활동으로 만나기

나기 : 소하님은 서인영 외에도 다른 활동들을 하고 계신 걸로 알아요.

소하 : 올해 들어 백수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그러면서 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모임에 많이 참석하게 되었고요. 아무래도 퀴어이다 보니까 인권감수성에 대해 민감하게 되고 그래서 인권감수성에 대해서 불편하지 않을 만한 공간을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역시 다 인권단체였고, 인권단체 모임에 많이 참석하게 되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인권팀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인천성소수자인권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그 모임을 통해서 올해 인천퀴어문화축제 집행위에 참여해서 퀴어문화축제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등 이런저런 많은 활동들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기 : 실제로 소하님은 서인영과 함께 이번 트랜스젠더추모의날 행진, 상영회에도 참여하셨잖아요. 이렇게 여러 활동들 간의 연결이나 시너지, 또는 차이가 있을까요?

소하 :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는 느낌이 없어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 단위들에 속해있다 보니까 여러 단위들이 참여하는 집회나 행사에 여러 단체에 가입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인권운동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문에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운 : 집회 현장에서 소하님! 하고 인사하면 또 저기서 소하님! 하고 인사하고 또 여기서 소하님! (웃음)

나기 : 마주님은 다큐 작업을 하면서 영화와 사람이 맞닿는 것을 목격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영화제 활동가 이전에 미디어활동가로서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마주 : 바라는 게 있다면… 서인영이 오래 지속되는 것 아닐까요? 영화/영상이 그냥 만들어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사람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그런 장, 특히나 인권에 대한 영상을 만난다든지 혹은 장애인접근권이 보장이 되는 자리랄지 이런 게 많지는 않다 보니까 지금처럼 앞으로도 지속해주면 좋겠다는 것이 가장 바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고운 :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웃음)

나기 : 저도 마주님과 소하님이 서인영과 오래오래 함께하면 참 좋겠어요. 원래도 영화를 좋아하고 만들어오신 것 같은데 이전에도 인권영화를 많이 봐오셨나요?

마주 : 저희가 워크숍에서도 얘기했지만 인권영화의 정의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분류되는 영화들을 좋아했던 것 같긴 해요. <깃발, 창공, 파티>, <보라>도 좋아했어요. 그 영화들을 보면 둘 다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다큐멘터리인데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되게 다층적으로 담은 영화예요. 보고 있으면 노동조합에서 투쟁을 하면서 동시에 생일파티도 하고 다양한 장면들이 나오고요. 삶 자체를 좀더 사랑하게 되는 영화들이어서 좋아하는 인권영화입니다.

나기 : 소하님은 지난번 활동펼치기 글에서 정체화 2주년을 맞이했다고 하셨는데요, 맞나요?

소하 : 우선 제 정체성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MTF, 다른 말로 트랜스젠더 여성이에요. 그렇게 정체화한 날로 제가 기억하는 날이 2019년 11월 20일이에요. 그날이 첫 호르몬 맞은 날이기도 한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잖아요. 그래서 기억하고 있어요. 

나기 : 의도하셨던 건가요?

소하 : 아뇨. 그때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라는 걸 몰랐는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고운 : 엇, 2주년이 아니라 벌써 4주년이네요.

나기 : 5주년에도 서인영과 함께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시다면?

고운 : 5주년에도 같이 하셔야 한다는 그런 질문이기도 합니다.

소하 : 몇 주년이고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고요 (웃음) 서인영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트랜스젠더 인권 관련해서 뭔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쪽으로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트랜스 관련 섹션을 넣는다거나, 관련 영화들을 상영할 수 있도록 해보고 싶어요.

고운 : 3월에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 있는데, 3월에 특집 상영회를 해도 좋겠네요.

 

우리 오래오래 함께해요!

나기 : 내년에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하게 될 텐데 이런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는 게 있을까요?

마주 : 회의 때 한 번 얘기했었는데 우리나라의 현장 다큐가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 진짜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만나면 좋겠어요.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소하 : 현장 다큐가 뭐예요?

마주 : 주로 투쟁의 현장이랄지, 그런 데서 옆에서 카메라가 함께 지내면서 시간을 보내고 하는.

고운 : 최근에 점점 적어지는 것 같기는 해요. 투쟁 현장 상황이 열악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같이 버틸 수 있는 미디어활동가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영화를, 그런 활동을 기다리고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현장의 카메라에 같이 연대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서인영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일 같습니다.

나기 :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인터뷰이가 서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인데요. 준비해온 질문이 있으신가요?

마주 : 제가 궁금한 것은요, 연말인데 소하님의 올해의 영화는?!

소하 : (왓챠피디아를 한참 보며 고민하다가) 단순히 재밌게 본 영화를 하나 꼽을게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재밌게 봤어요.

마주 : 오~ 재밌죠.

소하 : 일단 다른 실사 액션영화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기발한 액션신들이 많아서 매우 흥미로웠고 트랜스젠더 서사로 비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녹아있어서 제 정체성과 겹쳐 보면서 더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거기에서 가장 큰 갈등 중에 하나가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에 대한 서사였는데 그런 것들이 퀴어서사와 많이 겹쳐보여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렇다면 저도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마주님도 올해의 영화를 한 편 꼽는다면?

마주 : <너와 나>. 마침 세월호 가족 인터뷰를 하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 안에서 생명안전공원, 단원고가 나와서 시작부터 오열하면서 봤어요. 슬프고 예쁜 영화입니다.

나기 : 그럼 대망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구독자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마무리해볼까요?

소하 : 일단 동료 활동가분들에게는 앞으로 소중한 추억들을 같이 쌓아 나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구독자분들께는 내년에 서울인권영화제 하잖아요, 많이 많이 찾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주 : 연말에 뉴스레터를 읽어주고 계셔서 감사하고… 내년도 함께하면서 여러 일들이 또 있겠지만 같이 보다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안녕히…


인터뷰이 – 마주, 소하

인터뷰어 – 나기

기록 – 고운

77소식

[활동가편지] 두부의 2023년 돌아보기

소식

안녕하세요. 두부입니다. 저는 올해 8월부터 서인영 활동가를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울림의 활동가편지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ㅎㅎ

벌써 2023년이 다 지나갔어요! 여러분의 한해는 어떠셨나요? 이 글을 24년이 되고 보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죠? 여러분의 새해는 어떤 느낌인가요?

저에게 2023년은 익숙함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었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시기였어요. 솔직히 조금… 아니 정말 힘든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걸 배우고 새롭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한해이기도 합니다!

사진1. 2023년 새로운 시작 중 하나였던 서울인권영화제 활동. 지난 9월 "스크린 너머 위기를 넘어" 거리 상영회 현장 모습. 천막 아래 스크린을 향해 관객들이 앉아있다.
사진1. 2023년 새로운 시작 중 하나였던 서울인권영화제 활동. 지난 9월 “스크린 너머 위기를 넘어” 거리 상영회 현장 모습. 천막 아래 스크린을 향해 관객들이 앉아있다.

혹시라도 ‘2023년 되돌아보기 시간’을 가지지 못하셨던 분들은 편지 읽기를 잠시 멈추고 가볍게 지난 한해가 어땠는지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생각하기 귀찮으시면 안하셔도 좋아요. ㅎㅎ 저도 그런거 잘 생각 안 하거든요. 대신 이왕 제가 편지라는 것을 쓰게 됐으니, 저의 2023년을 되돌아보고 올해 가장 깊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공유해드릴게요.

바로 다양함과 다면성에 대한 건데요. 올해 저는 익숙하던 공간과 사람들을 떠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답니다. 거기서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성격과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그들의 성격과 감정이 하나같이 모두 다면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너무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답니다.

어떤 이야기냐면 흔히 부정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감정들이나 특성들도 그 단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강점들과 소중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불안함은 무언가를 미리 고민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하고, 예민함은 그만큼 섬세한 모습을 보여줘요. 소심한 성격 역시 다른 사람들이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주기도 하죠. 반대로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감정이나 특성들도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무던함은 나 자신의 아픔이나 슬픔을 마주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것마저도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게 만들기도 하는 거 같아요.

위의 생각들을 항상 추상적으로만 느끼다가 이 편지를 작성하면서 글로 풀어내게 됐는데요. 아마 저와는 또 다르게 감정과 특성들을 바라보시는 분들이 있을 거 같아요. 다만 확실한 건 저마다 다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확실하게 필요하지 않거나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없다는 것이고, 이런 다양한 특성들이 함께 모였을 때 보다 나은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마다 약점과 강점이 있고 이를 서로 보완해 주는 거죠.

저는 이런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에게도 있을 거고,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과 모습들이 소중한 만큼 나 자신의 것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저를 좀 더 소중하게 여기다 보니 또 다른 존재들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좋은 순환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이기에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너무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거예요. 적어도 저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답니다. 너무 오지랖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이 마음을 서인영 활동을 통해 더 잘 풀어내고 싶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마지막은 항상 제가 생일인 친구들에게 전했던 말로 마무리할게요. 여러분 모두 2024년도에는 조금 덜 슬프고 더 많이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두부

82소식

팔레스타인 긴급 연대 상영회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소식

팔레스타인 긴급 연대 상영회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홍보이미지

울림 311호 [함께나눠요]에서 소개하는 <잇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이름의 무게>, <핑크워싱> 등 총 세 개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이어가는 저항의 현장과 함께 No to 핑크워싱, BDS 운동 등 각자의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대하는 장면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1월 4일부터 7일 자정까지 HRflix.org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49소식

인권해설: <핑크워싱>

인권해설

내가 마시는 과즙 음료의 원재료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와 수자원을 약탈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내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역시 토지를 빼앗아 지어진 불법 정착촌의 공장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면, 또는 그 기술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하고 감금하는 데 사용된다면, 나의 연구·창작물·행사참여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수단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거부하는 것이 바로 ‘BDS 운동’의 본령이다.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전략인 BDS 운동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를 뜻함) 체제를 철폐시키는 데 기여한 20세기 말 BDS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2005년 ‘팔레스타인 BDS 민족 위원회(Palestinian BDS National Committee)’가 발족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점령국이자 또 다른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인 이스라엘에 전 세계가 Boycott(불매 운동), Divestment(투자 철회), Sanctions(제재)로 대응함으로써 자신들이 겪는 점령, 학살, 인종차별을 끝장내기 위한 저항운동에 힘을 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응답이 각국의 운동단체, 교육기관, 종교기관, 정부기관 사이에서 꾸준히 확산되고 있으며 또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국제 행동을 저지하는 데 이스라엘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점령 국가라는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 이미 대규모 재정을 쏟아붓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는, ‘브랜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국가 홍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각국의 입법자들에게 직접 접근하는 로비 활동에서부터 문화·예술·학술계에서 ‘지원’과 ‘교류’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민관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나아가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은 다양하다. 이 영화에 나타난 것처럼 텔아비브를 ’중동’의 유일한 ‘퀴어 천국’으로 포장하려는 ‘핑크워싱’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는 윤리적 생산과 소비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구매 선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인 나를 위한 것인 동시에 상품의 생산·유통 종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선택이 모이면 시공간을 넘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도 하다. 기업 윤리를 망각한 기업에 대한 외면이 당연하듯, 점령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가 홍보 상품’에도 우리의 불매 운동이 절실하다. 날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전해지는 절규와 연대호소에 우리도 BDS 운동으로 응답하는 것은 어떨까.

새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스라엘은 유럽의 시온주의자들, 다른 말로 유대민족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의 선주민 아랍인을 추방하면서 세운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다. 1948년 국가 수립 선포 이후, 총 네 차례의 이스라엘아랍 전쟁(중동 전쟁)을 치르면서 줄곧 영토를 확장해 왔을 뿐 아니라,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일대의 군사적 맹주로 군림하며 국제 정세를 좌지우지한 지도 오래다.

이스라엘은 유대민족국가를 정체성의 골자로 하며 건국 단계에서만 칠십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 수많은 난민을 만들었다. 전 세계 모든 유대인에게는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부여하면서, 자기가 살던 집과 일구던 밭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그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이 남기고 떠나야만 했던 집과 땅은 부재자 소유물로 정부 관리부동산이 되어 궁극적으로 유대인 정착민에게 분배된다. 법률, 정책, 제도 대부분이 유대인 시민권자를 중심으로 마련되므로, 2할이 넘는 비유대인 시민권자는 2등 시민으로 살아가며 이스라엘의 모든 일상에서 체계적으로 차별받는다.

애초에 이스라엘은 타민족에 대한 수탈과 폭력과 차별로 구성된 국가이다. 이스라엘 국경 안에서만 차별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가자지구와서안지구의 사정 역시 엄혹하다. 가자지구는 하다못해 구호 작업이 불가할 지경까지 봉쇄됐다. 서안지구 주민은 녹색선이라 불리는 공식 경계를 침범하여 건설되는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으로 인해 이동권, 교육권, 건강권, 재산권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이는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보장하도록 하는 1948년 유엔총회 결의안 194를 칠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무시해 왔다. 분리 장벽 건설을 국제법 위반이라 규정하며 기존 장벽 철거, 새로운 장벽 건설 중단, 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인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상을 권고한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 권고에도 꿈쩍 안 한다. 권고 후 1년이 지나도록 사정이 달라지지 않자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국제사회에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구매 혹은 이용 거부), 투자철회, 제재(BDS: Boycott, Divestment, Sanction) 운동 참여를 촉구한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에서의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선전 사업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 이름은 ‘브랜드 이스라엘.’ 널리 각인된 점령국으로서의 군사적 이미지나 유대교 중심의 실질적 정교일치 국가라는 이른바 전근대적 이미지를 탈피해, 세속민주주의 인권 국가로 자신을 포장해 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취한 주요 전략 가운데 하나가, 자국을 중동지역 통틀어 성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곳으로 자랑하며 텔아비브 같은 도시를 게이의 휴양 낙원으로 꼽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주변 아랍국이 하나같이 성소수자를 끔찍하게 박해하는 데 비해 이스라엘은 다양한 성소수자가 자유롭게 즐기며 살아가는 근사한 사회라는 게 홍보의 요지다.

우리 사회는 완전히 퀴어 친화적이에요. (가끔 극우 초정통파 유대민족주의자가 성소수자를 린치하기도 하는데, 그건 특수한 경우니까요.) 우리는 비유대인 성소수자 인권에도 관심 가져요. (물론 이스라엘이 구원자로 나서서 아랍국가보다 우월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데 써먹을 수 있을 때만 선택적으로 그렇게 해요.) 이스라엘에는 호모포비아하고 트랜스포비아가 존재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하고 다른 아랍국가는 호모포비아하고 트랜스포비아가 심해서 참 딱하지 뭐예요. 우리를 모범 삼아야 할 텐데요.) 우리는 중동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달돼 있어요. (분리 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건 당연히 제외하고 하는 얘기예요.) 우리는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해요. (팔레스타인인하고 타종교인만 빼고요.)

위 문단에서 괄호에 담긴 내용을 삭제하고 괄호 바깥의 내용만으로 스스로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바로 ‘핑크워싱(pinkwashing)’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분홍색 ‘핑크(pink)’와 연막 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의 조합어다. 이는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스라엘 사회 내 인종 차별을 종식할 근본적인 노력 없이 단순히 자국의 이미지만을 세탁하기 위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이용하는 위선적인 기획이다. 자국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초래하는 막대한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호모포비아나 트랜스포비아로 인한 성소수자 인권 침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점령 문제의 심각함을 축소한다. 점령 체제 자체가 팔레스타인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나 이스라엘의 2등 시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에게 가할 인권 침해를 지워버리고 말이다.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성소수자 인권 보장과 엮고 주변 아랍국가와 이슬람교를 성소수자 박해와 엮는, 소위 문명 대 비문명의 이분법 자체가 정형화된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한 부당 대립이다.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이 진행됨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 국가 성소수자 단체들은 저마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선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며 국제 사회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도 관심과 도움을 요청한다. 팔레스타인 성소수자와 연대하고자 한다면 BDS 운동에 성소수자 개인 혹은 단체로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당부한 것이다. 이에 호응하여 ‘콰이아: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퀴어들(QuAIA: Queers Against Israeli Apartheid)’이란 이름의 모임이 여러 도시에 생겨난다.

딘 스페이드의 <핑크워싱>은 2012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을 비춘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자기 도시를 습격한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과 어떻게 싸웠고 이겼고 다시 좌절했고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는지를 기록한다. 이스라엘 성소수자 대표단의 핑크워싱 투어 행사를 잡아버린 시애틀 시정부 엘지비티위원회를 찾아가 실상을 알리고, 시애틀 퀴어영화제에 핑크워싱 작품이 걸리자 상영장 안팎에서 감독 및 관람객을 상대로 직접 행동을 벌이며, 다른 지역의 성소수자 BDS활동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얻은 영감으로 콰이아 시애틀지부를 결성하기까지를 아우르는 치열한 투쟁기다. 활동가들은 지역 정치와 국제 연대를 긴밀히 연결해 사유하며 비타협적으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즉 점령과 인종차별을 비판한다. 성소수자 국제연대와 지구적 BDS 운동은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돼서도 안 됨을 힘주어 말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서울인권영화제는 21회 영화제를 준비하며 ‘핑크워싱’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Third Perso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이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Third Person>의 상영 계획을 2016년 3월 31일 취소했다.

상영 취소를 결정한 <Third Person>은 성소수자 다큐멘터리로, 인터섹스(intersex)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제는 상영작을 선정하고 있던 당시 <Third Person>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성소수자 인권 영화는 늘어나고 있지만, 인터섹스에 대한 영화는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이 영화는 인터섹스가 처한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구성도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로 자기 경험을 풀어내는 식이라, 영화제의 모든 활동가들이 이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상영 결정 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의 미팅 중 ‘BDS운동(보이콧, 투자철회, 제재·Bocycott, Divestments, and Sanctions)’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간단히 말해, BDS운동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그런데 <Third Person>이 BDS운동의 대상에 부합하며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핑크워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DS운동이라고 하면 특정 제품이나 활동에 대한 ‘보이콧’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운동에는 문화 생산물도 포함된다. 물론 영화도 속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모든 작품을 보이콧하지는 않는다. BDS운동의 학술·문화 부문을 아우르는 ‘PACBI 가이드라인’에 따라 BDS운동의 대상이 정해진다. 이 가이드라인은 “큰 틀에서 PACBI는 전 세계 문화 노동자(예술가·작가·영화제작자 등)와 노동조합이나협회를 비롯한 문화 조직에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로비 단체나 문화 기관이 연루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전세계 문화 영역에서 이스라엘의 정상 국가화를 조장하고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및 팔레스타인인 권리 침해를 은폐하며 BDS 가이드라인을 위배하는 행사·활동·협정·프로젝트를 보이콧하거나 취소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Third Person>은 PACBI 가이드라인에 부합했다.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가이드라인을 검토했고, 앞으로 BDS운동에 연대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Third Person> 측에 상영취소 결정을 통보하자 이 영화의 배급사와 제작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BDS 운동에 대한 비난·폄훼를 쏟아 부었다. 제작자·배급사는 BDS운동이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메일에 언급하기도 했다. 또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메일로,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왔다. 갈수록 이스라엘의 ‘창대한’ 반격을 받게 된 것이다. 그중 압권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대응이었다. 대사관은 BDS운동을 비난하며 계속해서 상영재고 및 공관차석과의 미팅을 요구했다.

제작자·배급사는 상영 취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영화’라는 이유로 대사관까지 나서 영화제를 압박한다면, 의도를 생각해볼 만하지 않은가. 대사관의 적극적인 접촉은 결국 이 영화가 단지 개인의 창작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Third Person>은 이스라엘의 성소수자 친화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핑크빛’ 국가 이미지 ‘세탁’, 즉 ‘핑크워싱’에 속한다.

영화에도 잘 드러나 있지만 ‘핑크워싱’은 이스라엘의 이미지 쇄신 작업이다. “이스라엘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중동의 유일한 나라”라고 국가 이미지를 꾸미는 것이다. ‘핑크워싱’의 대표적인 예는 “게이들의 천국 텔 아비브”라는 광고 영상이다. 이 광고에서 이스라엘의 도시 텔 아비브는 게이들의 에덴동산으로 그려지지만, 실상은 팔레스타인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만든 정원에 가깝다. 이처럼 이 ‘핑크워싱’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흐리게 만든다.

서울인권영화제는 21회 영화제에서 <Third Person>의 상영을 취소하고, <핑크워싱>이라는 작품을 상영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맥락과 상영하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영화 이면에 가려진 폭력과 차별에 대해 환기하고, 이를 놓칠 뻔 했던 것을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끝으로 서울인권영화제가 늘 중요하게 가지고 가는 가치가 ‘표현의 자유’라는 지점에서도, 서울인권영화제가 BDS운동에 연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왜냐하면 반-BDS운동은 BDS운동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를 설득하거나 협박하지 못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국가가 그리고 기업이, 어떤 권력이 사람들의 ‘삶’의 외침을 가리지 않도록 지켜온 ‘표현의 자유’를 폄하하기엔 그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그 근거가 온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표현의 자유를 끌어다 쓰는 맥락은 단지 팔레스타인을 밟고 선 핏빛의 땅이, 핏빛이 아니라 선의의 핑크빛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가지고 온 허울 좋은 가림막이기에.

우리가 불을 붙이려 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BDS 운동에 대한 응답,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문제제기는 우리의 것만으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울인권영화제는 한국과 해외의 영화제들에게도 BDS운동을 환기하고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문화예술계에 이스라엘의 폭력과 인종차별에 힘을 실어줄 계기들이 자라나는 것을 함께 막아내길 바라면서.

다희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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