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혼란 속에서 마지드에게

프로그램 노트

영국 땅이 보이는 칼레에는 매일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들이 찾아온다. 트럭이나 배에 숨어서, 또는 해협을 헤엄쳐 결국 영국으로 가려는 이들이다. <혼란 속에서, 마지드에게>는 이러한 난민 당사자들이 핸드폰과 카메라로 직접 찍은 영상들을 모아 엮었다.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나’의기억은 곧 난민들의 기억이다.

기억은 죽지 않는다. 기억은 자꾸 엉킨다.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동생 마지드에게 전하는 말은 이 기억을 함께 가지고 있는 모두에게 전하는 말이 된다. “잊자, 잊자” 읊조리지만 전쟁의 기억을 거둘 수 없다. 폭격이 이어지는 고향 다마스쿠스를 살아서 탈출했지만 “내가 런던에서 다마스쿠스를 찾을 수 있을까” 되물어야 한다. 폭격에 세상이 흔들리던 기억도, 발코니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향에 대한 기억은 모두 오롯이 나의 것이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 흔들리는 시야, 지저귀는 새,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의 결까지 생생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살아서 겪어내야 했던 장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창공과 새, 바다의 이미지는 새로운 터전과 미래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면서 떠날 수 없는 고향과 그 기억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모든 장면들은 영화를 마주한 이를 집어삼킬 듯 혼란스럽다가도, 무수한 추억이 깃든 ‘나’의 고향에 스며들게 한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마지드에게>는 시리아를 떠났지만 다른 땅에 닿지 못한 수많은 마지드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고, 수많은 마지드를 기억하는 기록이 된다.

이 기록이 시리아에서, 시리아 바깥에서, 또 다른 전쟁의 공간 안팎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나’와 마지드에게 치유의 힘을 전할 수 있기를.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3프로그램 노트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