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와 가족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친 몸을 잠시 뉘러 들어온 ‘집’은 다시 투쟁의 장소가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매번 온 힘을 끌어모아 이야기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가족이 만든 울타리에서 탈출한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내 방문을 다시 울타리 삼아 숨을 쉴 만한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나를 부정하는 부모가 아닌 서로 공유하는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그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며 이 공간을 채울 사람을 기다린다. 이렇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 네 사람은 저마다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퀴어인 내게, 집은 어떤 공간일까. 퀴어인 내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집을 구성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퀴어인 나를 참을 수 없어 한다. 왜 평범하게 살지 않냐고, 그렇게 살면 내가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내 존재를 위협한다. 퀴어인 나를 드러낼 수 없는 집에서 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렇게 집에서나 집 밖에서나, 퀴어인 내가 온전히 몸을 뉠 곳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원가족으로 부터 탈출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집에서 ‘탈주’한다.
내 정체성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퀴어정체성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나를 퀴어라 명명함으로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퀴어정체성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퀴어라는 것을 매번 새롭게 이야기해야 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망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나도 모르게 정상성에 끌려다녀 지친 나를 다시 숨 쉬게 할 수 있는 곳. 이런 내 심호흡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상상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퀴어로 남을 수 있는 ‘퀴어의 방’을 만든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내가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새로운 ‘집’에 나를 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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