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들은 제각기 다른 나이를 가진 듯하다. 오래된 간판과 집들 사이, 젊은이들이 가득한 이태원. 용산 미군기지에 인접한 기지촌에서부터 성장한 이태원은 어느새 그 시간들을 잘라내고 어색하게 새로운 가게를 접붙인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 살아왔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니키는 자식들 결혼할 때를 걱정해 한국 사람 없는 미군 클럽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열아홉부터 이태원에서 놀았던 영희는 미군과 결혼도 했지만 1년만에 돌아왔다. 미군 전용 술집을 차렸던 삼숙은 미군 기지 이전으로 40년 된 자신의 가게를 접는다. ‘후커’, ‘술집여자’ 누군가 그녀들에게 붙일 이름. 삶에 굳은살이 박인 그녀들은 그저 태연히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왔다. 그녀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이태원, 그 공간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와 즐거이 인사하던 이웃들이, 해가 지자 그녀의 공간을 밝혀주던 간판들이, 쉼터를 만들어주던 나무들이 보이지 않던 때는. 그녀와 그녀의 집은 여전히 이태원을 지키고 있지만, 그녀의 주변은 여전하지 않다. 이따금 그녀들을 반기던 주변의 것들이 그리울 때, 그 그리움은 왜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야만 했을까.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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