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의 언어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한다. 언어는 사람의 세계관을 구성하며 동시에 어떤 세계를 만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수어가 자신의 언어인 농인은 수어로 세상을 만나고, 세상을 만든다. 하지만 농인이 마주하는 세상은 들리지 않는 것을 기능의 상실로 여겨 ‘치료’를 통한 기능의 회복을 요구하며, 소리언어를 가르쳐 청인과 유사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려’ 한다. 이렇게 청인 중심의 세계와 소리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농인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시끄럽게’ 부딪친다.
수어를 사용하지 말라며 이들의 문화와 세계를 빼앗으려는 세상을 향해 농인들은 ‘손으로’ 그 누구보다 시끄럽게 투쟁한다. 농인 부모는 청각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이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에게 “우리는 수술 없이도 수어를 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말한다. 농인 국회의원은 농인들의 연대를 강조하며, 지금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함께 말해야 청인 중심적인 정책이 바뀐다고 말한다. 농인 공동체는 수어 사용에 대한 자신감을 서로 임파워링 한다. 이렇게 농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끈끈한 연대로 청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낸다.
농인은 ‘장애를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농인 정체성을 가진 주체이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되는 대신 소란한 저항으로 맞서 싸워 이길 것이라 말한다. 농인으로서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위한 저항의 흔적들은 이들의 일상 모든 곳에 완연하다. 그렇게 농인으로서, 농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항의 움직임을 적막으로 덮으려는 세상을 향해 균열의 파장을 그려내는 손이 있다. 손으로 말하기까지 그 누구보다 ‘소란스럽게’ 손을 사용한 사람들이 있다. 손으로 말하는 존재의 방식은 겹겹의 파동이 되어 세상을 부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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