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도시 속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던 감독들은, 그 순간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공간과 기억을 되짚는다. 그들이 다시 목격한 공간은 이미 흔적도 없이 변해있었거나 머지않아 사라지려 한다.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모이고 밀집하는 도시. 하지만 공간은 한정되어있고 욕망은 끝이 없다. 누군가는 내치고 누군가는 나가떨어져야만 하는 게 도시의 생리이다. 결국 개발의 욕망은 누군가의 이주와 철거를 만든다. 도시에서 이 변화의 압력은 너무나 높아서 버티고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 그렇기에 영화 속 사람들은 각각의 공간에서 철거에 맞서 절규하지만 무력하게 뽑혀나간다.
변화의 여파와 진동은 우리에게까지 미친다. ‘당장 내일 눈을 뜨면 내 공간조차 집어삼키고 있진 않을까’ 싶다가도, ‘나에게도 역시 개발의 콩고물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며 들썩거린다. 이렇게 우리는 자주 욕망에 의존하고, 동조하고, 휩쓸리곤 한다. 결국 어느 날의 우리는 뿌리째 뽑혀서 갈 곳을 잃지만, 또 어느 날의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 어떤 이들의 삶을 큰 힘 들이지 않고 튕겨낸다. 누군가에겐 돈벌이, 매물, 개발부지일 뿐인 공간이 누군가에겐 삶이자 뿌리이며 역사라는 것을 종종 잊는다. 편리와 발전을 위해 도시는 언제나 변화해야만 하는 걸까.
도시 안에 선 우리 중 누구도 이 복잡한 긴장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저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내 옆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죽어가는 새벽에 나는 무얼 했나’라는 부채감이 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인다. 각자 자신의 공간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하나의 철거부지에 모여 싸운다. 그렇게 오늘도 도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지켜내려 한다.
매일 마주하는 도시엔 언제 사라졌고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떠나고 머무르는 이들이 누군지 조차 모른다. 이쯤 되면 도시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변화의 속도는 여전히 체할 것만 같다. 도시는 언제쯤 잠잠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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