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예전 일을 기억하지 않죠. 그래서 어르신들도 예전 일을 기억하지 않고요.”
영화 <22(용기 있는 삶)>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던 가족의 말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과거’를 통과한 ‘당사자’만의 몫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기억되기 위해서는 주체의 말을 듣고 기억하려는 자가 있어야 한다. 기억은 기록에 의존하고, 기록은 기억을 넓히고 끊임없이 이야기되도록 한다. 또한 기록은 ‘특정 시점’ 기록이기에 ‘시간의 변화와 듣는 자들’에 의해 변주되고 새로운 이야기로 등장한다. 기록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연결하면서 현재의 문제로 만들 뿐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로 만들어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으로 엮는 역할을 한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위안부 용어와 사진이 사라졌다. 밀란 쿤데라가 “권력에 대한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하였듯이 권력자들이 지우려고 하는 것들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이렇듯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누구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남길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때 역사의 추상성을 뛰어넘는 기록이 있어야 개인의 삶이 살아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을 접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라는 추상성이 여러 결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오듯이 말이다. 그래야 ‘과거’만의 일이 되지 않고, ‘그녀’들만의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타자화하지 않으면서도, 개개인의 삶과 그 맥락을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드러내야 한다. 더구나 기록자와 구술자(화자)의 권력관계, 그로 인한 대상화를 피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기록자의 필터로 걸러진 기억과 이야기만을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록은 어렵다.
무엇이 인권감수성 있는 기록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그 첫걸음은 ‘그/녀’의 이야기를 피해자화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듣고 전하려는 시도에 달려 있다.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했으나 전하기는 어려워하는 그/녀들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다. 용기 내서 말해준 그/녀들의 기록이 퍼지도록 하는 일이다. 아무도 안 보는 기록은 생명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기록과 기억이 생명을 얻으려면 우리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