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퀴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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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혼인·출산을 통해 구성된 가족들이 세대를 재생산하는 장소로서 그 사회적 중요성이 부여된다. 그래서 주택 정책은 기본적으로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그에 따른 전형적 생애주기를 전제한다. 계급 양극화, 청년 실업, 고령화 같은 사회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청년, 노인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주택 정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문제가 애초에 노동, 보건복지 등 ‘정상가족’을 모델로 운영되는 사회적 재생산 구조의 참패를 방증한다는 것을 쉽게 잊고 만다. 다수의 주거 취약층을 소수자화하고, 이들에게 주택공급, 임대, 대출 제도의 문을 부분적으로만 개방한다.

개인에게 ‘집’은 소유물이나 자산 증식 수단, 정착과 휴식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 집에서 정착하고 휴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는 가구마다 다르며, 한 가구 내에서도 구성원들마다 다른 처지에 놓인다. ‘주부’나 ‘엄마’에게 집은 언제나 일터였다. ‘가족’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집은 구성원 각각의 정체성과 욕망을 협상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TV, PC, 식탁과 의자 등 물리적인 공간 배치뿐만 아니라, 밥을 먹고 TV를 보고 잠을 자야 하는 시간 규율, 누군가 방문을 함부로 열 수는 있지만 맘대로 잠가서는 안되는 룰,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지 등, 이미 이런 사소한 룰들까지도 힘의 불평등 위에서 결정된다. 여성,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집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퀴어는 어떠한가? 퀴어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이 더 어렵고 고되다. 퀴어퍼레이드에서 가져온 스티커나 무지개 깃발을 둘 곳이 마땅찮다. 퀴어로서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느냐를 넘어 퀴어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퀴어는 집에서 ‘존재’하기 어렵다. <퀴어의 방>은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여정과 변화이다. <퀴어의 방>의 주인공들은 퀴어 정체성뿐만 아니라 입시거부, 흡연, 동물권 운동과 비거니즘 등의 면면이 원가족 안에서 불화한다는 점을 깨닫고, 가족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이 ‘정상성’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그래서 소수자 주거권 문제는 ‘가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물질적 집이 아니라 ‘정상성을 재생산하는 공간으로서의 가족과 집’, 즉 권력과 차별의 문제를 돌아보도록 요청한다.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2006~), ‘소수자 주거권 확보를 위한 틈새 없는 주거권 만들기 모임’(2010~) 등은 소수자, 반차별, 가족과 정책의 문제를 다뤄왔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퀴어타운 프로젝트>(2011), 가족구성권연구모임과 언니네트워크의 <정상가족 관람불가展>(2012),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2013~) 등의 프로젝트는 성소수자 공동체 상상을 위한 자원들을 연결해왔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2015~)의 일시 쉼터, 함께주택협동조합의 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하우스’ 등 사적(私的) 복지를 넘는 퀴어 주거의 가능성은 여전히 실험 중이다.

더지(언니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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