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씨씨에게 자유를!

인권해설

한국에서 씨씨처럼 트랜스여성 수용자가 감옥에 간다면? 이제는 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입소 전에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결정을 받지 않는 한 ‘법적 성별’에 따라 남성 수용동에 수감된다. 맨 먼저 마주치는 문제는 신체검사. 속옷까지 벗고 가운을 입는다. 맨발로 전자영상 검사기에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용변을 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검사기에 장착된 카메라에 항문 부위를 보이게 하면, 교도관은 검사기에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항문 영상을 육안으로 관찰한다. 여성 수용자는 여성 교도관이 검사하나 트랜스여성은 교도관에게 남성일 뿐이다. 그 외에도 집단생활이라는 교정시설의 특성상 식사와 목욕(샤워), 실외 운동, 작업과 접견도 남성 수용자와 함께해야 한다. 교도관과 다른 수용자들의 편견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지만 도망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사고’를 막기 위한 가장 쉬운 길은 트랜스여성을 다른 수용자로부터 격리시키는 독거수용이다.

교정시설 수용자의 처우를 규정하고 있는 형집행법은 장애, 나이 등과 함께 성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면서 노인, 장애인, 외국인, 소년에 대해서는 별도 처우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수용자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2003년 법무부의 공문 <성전환 수용자 수용처우에 관한 지시>에 따라 “외형상 성정이 뚜렷한 성에 따라 독거수용”하고, “신체적 특성 등으로 성희롱, 인권침해 등의 논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수용사동이 결정된 후에도 독거수용, 칸막이 설치, 계호보강 등 수용관리에 철저를 기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작업과 운동, 샤워 등 다른 수용자와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처우에서 배제된다.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없다.

대부분의 수용자가 독거수용을 원한다. 과밀수용 문제가 심각하고 공동생활 과정에서 갖은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자가 원하는 독거수용은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독거수용과는 다르다. 형집행법령은 “주간에는 교육·작업 등의 처우를 위하여 일과(日課)에 따른 공동생활을 하게 하고 휴업일과 야간에만 독거수용하는 것”(처우상 독거수용)을 수용의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지만, 예산을 이유로 지켜지지 않는다.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독거수용은 징벌방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다. 이마저도 트랜스젠더로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다. 법무부는 입소 전에는 외부 병원, 입소 후에는 의무관의 진단을 받았거나, 판결문에 트랜스젠더로 기재되어 있어야 트랜스젠더로 인정한다.

2005년 안양교도소에 갇힌 트랜스여성 A는 트랜스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A는 남성 4~15명이 수용되는 수용실에 8개월간 갇힌 후에야 독거실로 옮길 수 있었다. 게다가 A가 입소시 들여온 여성용 속옷이 낡아 속옷 구입 신청을 하자 교도관은 앞에 성경책을 펴놓고 “마귀가 붙었다”, “미친 과부년 같다”고 조롱했다고 한다. A는 호르몬 투여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 또 교도관이 상담 내용을 다른 수용자에게 누설해, A는 다른 수용자들에게 폭언을 듣고 놀림을 받아야 했다고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수용실 도배를 하겠다며 교도관으로부터 가위를 빌린 후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 A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300만 원의 위자료 판결을 받자, 항소심에서 안양교도소 측은 A의 치료비로 569만 원이 들었다며 상계를 주장했다. 2012년 편의점에서 현금 50만 원을 훔쳐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트랜스여성 B는, 2014년 광주교도소 교도관의 이발 지시를 거부했다(지시 불이행)는 이유로 21일간 징벌방에 감금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감옥에 수감된 트랜스젠더는 몇 명이나 될까? 2007년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수용자 4만6천여 명 가운데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1명을 포함해 3명이었다. 과연 정말 그게 다일까? 국가에게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없는 존재, 없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A 씨가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에 격분해 우발적으로 이 사건을 저지른 것.

_대구지방법원 2010고합281

 

소수자의 정체성은 개인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조절하는 데에 취사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위의 사건처럼 누군가는 애인을 살해하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를 붙여 자신의 살해를 정당화하고자 하였고, 씨씨의 정당한 방어행위는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지우고 유색인종이라는 정체성만 채택하여 ‘한 흑인 남성의 잔혹한 살해’로 변모시켰지요.

<씨씨에게 자유를!>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각각 따로 놓고 보면 소수자 입장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온 차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다수에게 피해를 입는 소수자, 충돌 후 시스젠더 내국인(백인) 집단에 의해 사건의 경위가 왜곡되어 제대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 외국인(유색인종), 성별정체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칭호인 “그”, 보호라는 미명 하에 사회로부터 씨씨를 격리하는 교도소, 저항을 하기에는 그에 따르는 대가가 너무나 크기에 결국 협상과 포기로 타협하는 개인의 모습, 분노하기도 하며 체념하기도 해온 일상의 집합입니다.

그러나 작중 씨씨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차별은 그녀가 혐오와 차별행위의 위협을 적극적으로 막은 것을 계기로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다수에 대한 저항에 벌을 내리는 듯이 말이지요. 씨씨를 석방하기 위한 운동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인권의 기본 중의 기본인 생명을 지키는 행위조차 보장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분노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가위를 들고 상대를 찌르세요!” 이 외침은 더 이상 무력하게 다수에 의한 혐오범죄에 희생 당하지 말고 인간 주체로서 살아남자는 다짐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은 그 인종 구성상 관객들이 인종을 근거로 한 폭력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모병제 체계 속에서 트랜스여성이 군대에서 느끼는 고통은 씨씨가 교도소에서 느낀 고통과 질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살인행위를 비롯한 혐오범죄를 트랜스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언론에 의해 여과 없이 공개되지요. 그 언론에 동조하는 다수 속에서 한국의 트랜스여성이 겪는 고통은, 결코 씨씨가 겪은 차별과 다르거나 그보다 덜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혐오범죄에 희생된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를 위로하는 제단이 나옵니다. 제단에 올라가 있는 몇 장의 사진은 보는 순간 절로 가슴이 미어지지요. 그러나 제단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가야 하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몇 명의 희생자가 침묵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몇 명의 씨씨가 “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을까요?

 

희정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2011년 6월 5일 미니애폴리스의 밤, 백인 남녀 무리가 전원 흑인이었던 씨씨 일행에게 시비를 건다. 인종차별, 여성혐오, 트랜스젠더 비하가 뒤섞인 혐오 발언과 물리적 공격이 이어졌다. 씨씨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속수무책 쓰러지지 않았다. 맞서 싸웠다. 스스로를 지켰다. 목숨을 건졌다.

몸싸움 가운데 씨씨가 꺼내든 가위에 상대측 남성 한 명이 찔렸다. 죽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사건의 발단과 경과를 파악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얼굴이 찢기는 부상을 입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씨씨의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씨씨는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되었다. 이후 2급 살인으로 기소된 씨씨는 2급 과실치사로 형량을 조정하는 데 동의하고 41개월 형을 선고받는다. 남성 전용 수감시설에 갇힌다. 독방에 고립되거나 다른 남성 수감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 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씨씨는 애초에 단지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공격받았고, 정당방위로 살아남았을 뿐인데 처벌당했고,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지정성별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수감자보다 잠재적으로 훨씬 위험한 환경에서 형을 살았다. 거리, 법정, 감옥, 그 어디에서도 씨씨의 안전과 생명은 마땅히 존중받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는 이성애주의 가부장제의 이원적 성별 규범과 인종주의가 교차하는 질곡의 미국 사회가 있다. 트랜스여성을 희화화하고 흑인을 범죄화하는 해묵은 배제와 폭력의 구조가 있다. 특정 존재 자체를 무질서 요소나 범법 주체로 보고 단속과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 치안 국가와 감옥 산업체의 결탁이 있다. 유색인종 트랜스여성 살해가 만연하고, 공권력의 비무장 흑인 과잉진압과 살해가 끊이지 않으며, 높은 흑인 수감율이 이어지는 비통한 죽음정치의 흐름이 씨씨 사건에서 합류한 것이다(2016년 센텐싱 프로젝트The Sentencing Project 발간 자료 기준 주립교도소 수감자 중 흑인 대 백인 비율 약 5:1). 구조적 인종주의와 트랜스여성혐오가 빚어낸 폭력의 생존자가 도리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현실은 “흑인의 생명은/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고 목놓아 외치도록 하는 처절한 조건을 증명한다.

그래서 씨씨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더 귀하다. 거리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씨씨는 사실상 형사사법 부정의(criminal injustice) 현장이나 다름없는 형사사법 정의(criminal justice) 체계도 버텨냈다. 무사히 출소한 뒤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흑인 트랜스여성의 존엄과 빈곤층 유색인종 성소수자의 사회적 권리와 감옥 폐지를 위해 뜨겁게 활동해나간다. 희생된 자매들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리되 무너지지 않고 결의를 다진다. 비극적인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겠다고 다짐한다. 씨씨의 생존과 증언과 활동은 그 자체로 죽음정치에 균열을 낸다.

씨씨는 2012년 5월 11일자 옥중 서한에서 지지자들에게 당부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단지 그래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때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란 너는 틀렸다고 주입하는 세상에 맞서는 싸움이다. 너는 욕먹고 맞아도 되는 하찮은 존재라는 메시지에 저항하는 노력이다. 나는 지킬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작업이다. 쉽지 않을지라도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씨씨는 여러 서한에서 투쟁은 사랑이어야 하고 사랑은 투쟁일 수밖에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서로를 비춰주며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씨씨의 옥중 서한은 다음 주소로 접속하면 열람할 수 있다: https://supportcece.wordpress.com/category/ceces-blog/)

씨씨의 호소는 다큐멘터리에서 <유색인종트랜스여성연합TransWomen of Color Collective> 활동가들이 모여 외치는 구호와 공명한다. 다 같이 복창하는 이 구호는 흑인 여성 혁명가 아사타 샤쿠어Assata Shakur가 1973년 발표한 글의 마지막 대목을 살짝 변형한 것이다.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X2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X2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줘야 한다X2

우리는 사슬밖에 잃을 게 없다X2

 

살고자 사랑하는 씨씨의 혁명을 응원한다. 씨씨의 소식을 오래오래 듣고 싶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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