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찰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 중, 3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치안을 위한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1994년 4월 27일, 최초 흑인 투표가 시작되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당선된 지 20년 만의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정부였는지 검색을 해보니, 당시 대통령이었던 제이콥 주마는 2018년 비선 실세 의혹과 정경유착으로 사임했다고 한다. 임기 동안 수차례 탄핵 시도가 되었다고 하니 한국의 지난 몇 년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영화 ‘바위처럼’의 시작은 광업회사 론민 CEO의 전하는 말로 시작한다.
“광업회사들은 주주, 투자자, 정부와 함께 호황기가 온다면 수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전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호황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노동을 착취당하고, 목숨을 빼앗기고, 살아남은 마리카나 여성들의 시간을 담고 있다. 살아남은 여성, 투메카는 말한다. “공동체의 치유가 목표다” 삶의 터를 빼앗기고, 가족과 친구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살아남은 이들에게 치유는 무엇일까.
여성들은 단결하며 단체를 만든다. 단체의 이름은 ‘우리는 함께 눈물 흘린다’는 뜻을 지닌 ‘시칼라 손케’다. 여성들은 함께 모여 서로의 아픔을 듣고, 묻고, 서로를 돌본다. 노래하며 춤춘다. 단체의 리더인 프림로즈의 ‘울지 말고 강해져’라는 말은 ‘함께 흘리는 눈물’이 좌절이나 절망이 아닌, 현재를 버티고 미래를 바꿔가기 위한 힘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함께 아픔을 나누는 것이 치유다’
프림로즈는 의원이 되어 국회로 향하고 마리카나는 시칼라 손케의 리더를 맡는다. ‘울지 않고 강해지는’ 길을 택한다. 프림로즈는 정치권에서 마리카나의 상황을 알리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마리카나는 공동체를 보듬으며 책임자들에게 목소리를 낸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두 리더는 더는 아픔을 함께 나누고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각자의 역할을 ‘울지 않고 강하게’ 해내고 있지만, 서로에게 더는 ‘함께 눈물 흘리는’ 이가 되어주지 못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이 공동체의 치유다’
강하게, 강하게 버티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버티던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눈물 흘리며’ 강함의 약함을 서로 알아봐 준다. ‘함께 싸우는 이들만이 나눌 수 있는 치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투메카는 바다 앞에서 영국을 상상한다.
그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론민의 사장들이 있을 것이고, 론민에서 채취한 백금을 팔고 사는 이들이 있을 테고, 그런 물건들을 수입하는 한국이 있을 것이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핸드폰 어딘가에, 자동차 어딘가에 그녀들이 채취한 백금이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폭력을 알아가는 과정이 치유다’
지난주 인터넷 기사에는 영국의 고위 관료, 베이츠 부장관의 사임 이유가 화제였다. 국회 출석을 3분 지각한 그는 “아주 중요한 질의의 첫 부분에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결례를 범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나는 항상 입법부의 합법적인 질의에 응할 때는 최대한의 예의범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품격이 다른 영국 의회의 분위기에 많은 이들이 찬사와 부러움을 보였다. 투메카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나의 품격이 누구를 발판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것이 치유다’
그녀들의 삶을 내 삶으로 느끼는 과정, 그녀들의 삶이 내 삶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있어야 투메카가 목표했던 ‘공동체의 치유’가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우선, 그들의 아픔에 귀를 열고, 아픔의 원인의 원인까지 함께 알아가는 과정에서 변하는 세상이 ‘공동체의 치유’가 아닐까. 그녀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는 인류가 나가야 할 방향이 있으니까.
김미성(와락치유단 치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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