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독일 사람들

인권해설

분노는 어디를 향하는가?

<독일 사람들>은 2020년 2월 19일 독일 헤센 주 하나우 시에서 발생한 인종주의 총기 테러의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투쟁을 조명한다. 다큐멘터리는 세 종류의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연대, 추모, 분노. 그들은 계속해서 모이고 서로를 위로하며 불의에 맞서 함께 행동한다. 유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의 장소를 만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은 분노한다.

그들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는가? 생존자와 유가족의 분노는 가해자 토비아스 라트옌을 향하지 않는다. 그들의 분노는 답이 없는 국가를 향한다. 그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 기관들이 그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경찰을 찾아가 수차례 문의했지만, 답을 주지 않았다.”(00:24:51). 

“나는 답이 필요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왜? 왜? 왜?”(00:33:00). 

“매번, 매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언제나 같은 이야기가”(01:51:03).

희생자가 신분증을 갖고 있었음에도 가족들은 연락받지 못했다. 사건 현장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그 밤, 아버지는 아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현장에 27시간 방치됐고, 생존자는 혼자 3킬로미터를 걸어가 진술하라는 경찰의 안내를 받았다. 가해자를 막으려 했던 희생자(빌리 비오렐 퍼운)는 경찰에 네 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못한 채 희생당했다. 경찰은 잠긴 비상 출입구를 수사하지 않았고, 사전에 선언문을 발표한 가해자를 조사하지도 않았다.

“인종주의자의 손에 죽고, 그다음엔 또 다른 인종주의가 기다리고 있었다.”(00:27:53).

“당신들이 허용했고, 당신들이 보호했고, 당신들이 키워왔고, 외면했다.”(00:34:30).

그들의 분노가 말해주는 건 하나였다. 이것은 살인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그들의 분노는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그 죽음마저 침묵시키는 시스템을 향하고 있다.

이 분노는 낯설지 않다. 오는 6월 24일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2주기다. 불법 파견, 안전교육 부재, 정규직에만 열리는 문, 유일한 출입문 앞에 방치된 리튬전지. 참사 이틀 전 동일한 폭발 사고가 있었으나 아무 조치도 없었다. 지난 4월 항소심에서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징역 4년으로 대폭 감형받았다. 하나우의 유가족이 국가 기관에 던진 질문을 우리도 던져야 한다. 아리셀의 죽음 앞에서, 끊일 줄 모르는 이주노동자 폭행 사건들 앞에서 우리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분노는 응답받고 있는가.

– 김서현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운영위원)

프로그램 협력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이주민 인권 옹호와 이주 의제의 공론화를 도모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국민국가 틈새에서 부유하는 서발턴(Subaltern)으로서의 이주민·디아스포라의 ‘몫소리’를 듣고, 읽고, 전파합니다. 소수자를 향하는 차별과 배제에 맞서 평등과 환대의 장소를 상상하고, 선주민 이웃과의 공생을 위한 연대와 마주침의 자리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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