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마리아나의 생애를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되짚어 나갑니다. 그 시간 동안 마리아나의 몸은 많은 장소와 관계를 거쳐 나갑니다. 병원과 법원, 결혼과 연애, 직장, 어머니와 친구, 갑작스러운 질병과 그 이후까지. 영화는 어떤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에, 마리아나는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어떤 의미에서는 ‘전형적인 트랜스젠더’로 보일 것 같습니다. 네, 마리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고 의료적 조치와 법적 성별정정을 통해 ‘나의 몸’을 되찾아 나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마리아나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의사 앞에서, 법정에서, 질병과 마주하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마리아나는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바꿔내고 또 살아냅니다. 이는 마리아나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마리아나를 보여주는 동시에, 마리아나를 보는 관객 자신을 보여줄 것입니다.
마리아나를 만날 때 한 가지 지침이 있다면, 쉽게 분류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마리아나의 삶의 맥락을 풍부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마리아나는 의사와 상담하며, 새로 사귄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 장면을 마주했을 때 마리아나를 ‘이성애자’로 분류하거나, 마리아나가 ‘트랜스젠더는 이성애자일 것’이라는 편견을 재생산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만 판단할 수 없는 의문과 의미들이 끝없이 남습니다. 마리아나는 왜 갑자기 의사에게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냈을까. 마리아나가 이성애자라면, 여전히 지속되는 전 파트너 여성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이어지다 보면, 마리아나의 삶은 비-트랜스젠더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이성애자/동성애자의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와도 이어질 수 있고, 성적 지향과 젠더의 상호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점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혹은 진료실에서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대처하는 마리아나의 적극적인 말하기 전략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마리아나가 겪은 급작스러운 뇌졸중을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단정 지으며 트랜스젠더 의료적 조치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는 “50세 이상이며 이미 위험요소를 보유한 환자의 경우 에스트로겐 투여가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관리와 검진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뇌졸중 캠페인은 “남성 5명 중 1명, 여성 5명 중 1명 꼴로 뇌졸중이 발병한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뇌졸중은 생활 조건과 예방이 중요한 질병입니다.
이렇듯 몸과 질병과의 관계는 일대일의 인과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호르몬을 과다 투여한 트랜스젠더 개인을 책망하거나, 트랜스젠더를 질병화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처방보다 더 많은 호르몬을 투여하고자 하고, 뇌졸중 발병 이후에 그것을 자신만의 탓으로 돌리는 마리아나를 보며, 그 당시 마리아나가 느꼈을 감정들, 마리아나에게 가해진 사회적인 소외와 압박을 떠올렸습니다.
질문하고 생각하기를 멈추는 바로 그 순간,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은 마리아나>가 그녀의 생애가 품고 있는 풍부한 질문과 의미들을 마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수엉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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