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권영화제 30주년 인터뷰 ①]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보고 얘기한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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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영의 시작을 함께한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를 만나다

2026년, 서울인권영화제가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맞아 그간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해 온 사람들을 찾아갔다. 과거 영화제는 어땠는지, 지금 영화제에 한 생각은 어떠한지, 앞으로 서인영은 어떤 영화제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떠올려보고자 하였다. 지금 서인영 활동가들은 서인영의 시작을 함께해 왔거나, 이에 대해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에 우리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처음을 함께 해온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를 찾아갔다.

마주: 안녕하세요. 은숙 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숙: 저는 1992년 8월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이름이 없을 때 새로운 인권 단체를 만드는 준비 모임으로 인권 운동을 시작했고, 1993년에 임시로 쓸 이름으로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임시가 그냥 굳어졌죠. 2006년 8월까지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했고, 그 후 독립하여 ‘인권연구소 창’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권연구소 창에서 ‘연구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즘 하고 있는 거는 인권에 대한 입문서를 다시 쓰고 있어요. 2017년도인가에 냈는데 그 사이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고, 인권에 대한 개념과 접근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걸 반영하여 새롭게 입문서를 쓰고 있어요. 제가 쓰고 있는 단행본의 가제는 ‘인권은 무엇을 하는가’예요.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주로 ‘인권은 뭐다’ 이런 개념 설명인데, 개념은 설명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우리 삶 속에서 인권이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우리가 힘든데도 계속 붙잡고 가야 되나?’ 그런 걸로 쓰려고 했어요.

마주: 은숙 님께 가장 궁금했던 건, 서울인권영화제의 시작에 관해서인데요. 어떻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권영화제라는 거를 시작하게 되셨을지 궁금합니다.

은숙: 영화를 모르기 때문에 한 거죠. 알았으면 못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때도 결정한 사람들을 되게 욕했어요.

마주: 진짜요?

은숙: 저는 결정 자리에 없었거든요. 1995년 당시에 저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영국 지부에 연수를 갔었어요. 그때는 팩스가 주요 소통 수단이어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팩스로 주 5일, A4 두 장씩 인권 뉴스를 담은 <인권하루소식>을 발행하고 있었어요. 당시 <인권하루소식> 300호를 기념해서 뭔가 특별한 행사를 하자고 했고, 사람들은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제가 어떨까라고 결정을 한 거죠.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많은 품이 들어가고, 관객을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했고, 제가 런던 앰네스티에 있으니까 거기서 영화를 골라 오라고 시킨 거예요. 저는 그래서 너무나 화를 냈어요.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모한 결정을 할 수가 있느냐. 근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앰네스티에 비디오테이프가 꽉 차 있는 시청각 자료실이 있거든요. 전 세계에서 인권 투쟁 같은 것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한 3천여 개 있는 자료실이 있는데요. 제가 틈날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서 비디오를 보는 거죠. 정말 완성된 작품들이 거의 없어서 어떤 거는 장례식 장면, 통곡하는 것만 나오고, <절규>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진짜 테이프를 꽂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절규예요. 그런 걸 한 달 내내 봤어요. 그중 하나 건진 게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창립 25주년인가를 기념하여 유명 감독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헌정한 작품이 있어요. 앰네스티가 전 세계에 갇힌 양심수들에게 편지쓰는 활동을 하는 단체라 배우들이 나와서 편지 한 통씩 양심수한테 읽어주는 영화였죠. 그때 그 영화 <잊지 말자>가 제1회 인권영화제 개막작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권영화제를 하게 된 거는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이 영화제라는 행사를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일을 벌인 것이고 일을 벌이니까 하게 된 것이고.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영화제를 열게 된 거죠.

마주: 국내 상영작들은 어떻게 수급하셨나요?

은숙: 다큐멘터리 하는 ‘푸른영상’ 같은 곳에 감독들이 찍어놓고 유통하지 못하는 작품들 많잖아요. 그래서 인권영화제에서 소위 데뷔하는 작품들이 많았죠. 국내 작품들은 그렇게 푸른영상 중심으로 구했고, 외국 작품들은 앰네스티에서 갖고 들어온 거랑 당시에 사랑방 대표였던 서준식 선생님이 뉴욕 인권영화제 가서 골라 온 거. 그런 걸로 1회 때는 채웠어요.

전문가들이 없으니까요. 프로그래머라는 개념도 몰라서 우리가 모든 걸 다 했어요. 포스터 디자인도 우리가 했지, 작품 섭외도 우리가 했지, 번역도 알음알음 부탁하고. 번역도 그냥 영어 좀 할 줄 아는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해주고. 어떤 부분에는 자막도 없고 그랬어요. 그때 대형 사고 난 작품이 있었는데요. 영화가 1시간 정도가 남아 있는데 자막이 없는 거요. 그래서 자막실에서 긴급 수배를 했어요. 재미동포가 영어로 영화를 보면서 영어로 써주면 내가 한글로 직독직해 해서 실시간으로 자막을 넣고 그랬어요. 그게 아침 첫 작품이라 10시 상영인데 아침 9시 반엔가 자막 작업이 끝났어요. 그 비디오를 갖고 뛰어가서 딱 상영한 그런 일이 있었죠. 

고운: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나시나요?

은숙: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 되게 긴 영화였어요. 100살 넘게 산 기자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언론인으로서 자기가 기업과 국가를 고발해 온 그런 이야기예요. 되게 재밌어요.

사진 1. 사무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류은숙 활동가와 마주. 은숙은 뒷모습, 마주는 앞모습이 보인다.

마주: 신기해요. 그렇게 우당탕탕 시작했는데, 30주년까지 온 게. 1회 인권영화제 현장은 어땠나요?

은숙: 인권영화제 1회 때는 안기부가 압력을 넣어서 어디서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를 통해서 학교를 간신히 빌렸어요.  퇴거장이 학교와 안기부에서 계속 날아왔는데, 그래도 그냥 가서 했어요. 당시 영화제에 어마무시하게 관객이 몰려왔어요.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어요. 이화여대 법과대학 강당이 700석 넘을 텐데 꽉 찼어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하는 인권영화제라고, 방송 인터뷰하느라고 일을 못 할 정도로 언론에 시달렸어요. 그러니까 언론의 관심, 관객들의 관심이 있으니까 경찰이 못 건드린 것 같아요. 진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가지고 줄이 안 보일 정도였어요.

마주: 다들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은숙: 그때 영화 잡지 <씨네21>이 생겼었는데, 특집을 인권영화제에 할애해 줬었고요. 하다못해 ‘출발 비디오 여행’에도 나왔어요. 오늘부터 인권영화제가 시작되니 한번 가보시라고.  방송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건데요. 우리도 그렇게 관심받을 줄 몰랐지. 

1회 인권영화제 히트작은 다큐멘터리 <하비 밀크의 시대>였어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시의원 하비 밀크의 이야기인데, 다른 백인 시의원이 하비 밀크를 총으로 쏴서 암살하잖아요. 그에 대한 추모식이 열리는 것까지를 다룬 영화였어요. 다큐멘터리인데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무대 인사에 우리가 감독을 부른 건 아니니까 올라갈 사람이 없잖아요. 근데 성소수자들이 엄청나게 그 영화를 보러 몰려왔어요. 당시에 성소수자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이제 막 시작될 때였거든요. 그때 정말 대단했던 게, 무대 인사에 그 관객들이 올라간 거예요. 성소수자 관련 인권 단체 관계자들이 무대에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도 무대에 막 올라가서 무대가 꽉 찼어요. 의상들은 또 얼마나 화려하게 입고 오셨는지 보라색, 분홍색. 관객석이 정말 울긋불긋한 거야. 그게 너무 좋았어요.

영화가 사실 재미없는데도 사람들이 안 나가고,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1회 효과였던 것 같아요. 거의 매일 밤을 샜지만 참 좋은 기억이에요. 부산국제영화제도 그해에 시작됐잖아요.

마주: 맞아요. 뭔가 올해가 30주년이거나 작년이 30주년인 단체나 영화제들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고운: 행성인(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도 내년에 30주년이잖아요.

은숙: 계속 군부 독재하다가 93년도에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문민 통치라 그러잖아요. 이제 군인 출신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가 불게 되고 외국에 대해서 꽉 막혀 있던 것이 세계화 분위기 속에서 풀렸던 거죠. 그래서 여러모로 검열당하거나 억눌렸던 것들이 막 터져 나오고 분출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마주: 사실 요즘엔 인권영화제를 하면 그렇게 사람들이 오지 않잖아요.

은숙: 왜냐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보는 방식도 달라졌고. 그러니까 지금은 지금의 맥락에 맞는 ‘같이 보기’를 추구해야  것 같아요. 우리 때는 그렇게 볼 게 없었고, 어쩌다 한 번 상영하는 데 가서 보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 봐야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달라진 맥락에서 달라진 관객 만나기를 시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우리 때 그런 열광적 분위기는 오랜 검열에 시달려서 볼 것이 제한돼 있었기에 생겨났던 거죠. 맨날 전경들한테 두들겨 맞고, 상영회 하면 맨날 폭력에 시달리면서 보다가 안심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같이 보고, 후일담도 당사자가 와서 같이 얘기하고, 감독과도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마주: 서울인권영화제가 이제 30주년이 됐고 앞으로도 이어 나갈 텐데요. 말씀하신 대로 정말 많은 영화제와 영상 플랫폼들이 생겨난 시점에, 인권영화제만이 갖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은숙: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보고 얘기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 시대의 맥락에 맞게끔 만들어야 될 과제가 있는 거고. 다 자기 방에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모여서, 무엇을, 보느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얘기할 자리를 만드는 게 의미겠죠? 그리고 변화한다고 할지라도 역사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역사성이라는 거는 오래됐으니까 지켜야 된다 이런 의미가 아니에요. 역사성에는 그 시대에 어떤 굴레나 억압에 매이지 않고 그 맥락에서 뭔가 새로운 걸 구축하려고 싸웠던 사람들의 열망이 모였던 자리가 있는 거잖아요. ‘지금 이 시대의 인권영화제의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적, 상황적 맥락과 과제는 무엇인가’는 누가 찾아주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만들고, 같이 보는 사람들이 해야지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것에서 소통의 길을 찾아야 하나’ 그냥 그걸 숙제로 갖고 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무리하게 큰 행사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꾸준한 상영회와 사람들을 만나는 거.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영화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마주: 은숙 님께서 인권영화제를 만들고 또 지켜보시면서 30주년이 된 서울 인권영화제의 명장면을 꼽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은숙: 저는 사실 초기 말고는 관여를 안 했기 때문에 솔직히 초기의 기억밖에 없어요. 2회 인권영화제 때, 홍익대에서 경찰이 실제로 영화제 현장을 막았잖아요. 그래서 하루인가 이틀 하고서 그 건물에서 내쫓겨서 마당에서 발전기 돌려서 상영을 했어요. 그런데 발전기 소리가 너무 심하고, 냄새가 심해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2회 때 영화들이 좋은 게 많았거든요. 대표적인 게 <쇼아>. 9시간 30분짜리. 그거 자막 넣느라고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쿠바를 배경으로 혁명 전 세대, 혁명 세대, 현대 이렇게 세 명의 루치아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그 시대와 어떻게 싸우는가를 다룬 영화 <루치아>도 상영햇어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보고 쫓겨나서 학생회관 바닥에선가 봤거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 그 영화 너무 좋았는데.

고운: 그때 그런 영화들은 그럼 어떻게 가져오신 거예요? 

은숙: 뉴욕 인권영화제 프로그램북 같은 거 보고서 팩스 보내가지고 비디오테이프 받고 이런 식으로 수소문해서 했어요.

마주: 마지막 질문입니다. 서른 살 생일을 맞아 서인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은숙: 제가 좀 더 젊었을 때는 서른이면 죽어야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희 세대 때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그렇고, 서른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이제 그걸 넘어서 60이 가까워지니까, 서른이 워밍업이더라고요. 서른 앞에 가기 전에 그렇게 무섭고 막 버티기도 힘들고 그러는데 넘고 나니까 준비 운동, 워밍업.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제1회 인권영화제 때 설문지 받았을 때 관객이 똑똑히 써놓고 갔어요. ‘살아남길 바란다’라고. 

아무튼 워밍업으로 생각하세요. 여기까지 왔다가 아니라 그걸 발판으로 새로 시작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준비 운동했으니까, 이제 본 운동하시면 되지. 개인의 역량이라면 그렇게 말 못 하는데, 이거는 시대의 역량이고 사회의 역량이잖아요. 처음 인권영화제라는 거 할 때 우리가 가졌던 역량은 진짜 보잘 것 없었거든요. 시대적, 기술적 한계 속에서 우리 역량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역량이라는 게 향상되고 넓고 깊어졌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회적 역량을 어떻게 잘 활용하면서 갈 것인가 그걸 잘 생각하면 좋겠어요.

인터뷰어: 마주, 고운

인터뷰이: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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