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우리에게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합니다

소식

“나는 사실 이 자리가 궁금해 참여했다. 애도와 기억은 좋고 유의미한데, 우리에게 왜 이 자리가 필요한 걸까. 포스터로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향했다. 그리고 ‘감염자 수’, ‘사망자 수’로 치환된 우리의 많은 존재와 함께 가려진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침묵 행진을 했을 때 횡단 보도로 이어진 광화문 사거리를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오며, 떠난 자리를 마주한 나는 질문했다. 저 자리에서 무얼 했냐고.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님의 말씀처럼 나는 뒤돌아 질문했다. 그렇게 반성의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외자

그림1.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인한 죽음, 애도와 기억의 장 추모문화제 “우리에게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합니다” 안내 포스터.

지금 우리에게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6월 17일 금요일, 다시 한번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가족과 위중증환자 보호자, 공적 추모를 요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준비하는 이들, 음악을 통해 연대하는 문화노동자와 이 자리를 기록하는 미디어활동가들, 그리고 마음을 함께 모은 시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사진1. 애도와 기억의 장 현수막 앞에서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기타를 매고 있다. 왼편에 가사를 통역하는 수어통역사가 있다.

지금은 아직 코로나19 감염병의 시대입니다. 이제 섣불리 언젠가 “끝난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럼에도 올해 초 치솟던 확진자, 사망자, 위·중증 환자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상 회복, 경제 성장’을 앞세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감염병의 위기를, 감염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료 시민의 얼굴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 뒤로 인간의 존엄을 미루던 것도 모자라,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는 우리의 동료 시민이 있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이 일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늦은 밤까지 2차를 가고 3차를 가는 것만이 일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망각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새롭게 일구고 나누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떠나보낸 이들, 숨죽여온 이들이 함께하는 일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기침 소리만 나도 날카롭게 돌아보던 날을, 매일 아침 확진자 숫자를 확인하며 한숨쉬던 날을, 우리 동네 확진자의 동선을 꼼꼼하게 추적하며 평가하던 날을, 의료공백의 소용돌이 속에서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앓아야 했던 날을, 거리두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어가며 일해야 했던 날을, 자가격리를 할 수 없는 단칸방에서 숨죽여야 했던 날을, 쿠팡에서 온 택배를 손도 안 댄 채 무료 반품 시킨 날을, 마스크를 사는 긴 줄 사이에서 주민등록증이 없어 작아져야 했던 날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사진2. 애도와 기억의 장 현수막 앞에서 발언하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김영옥 활동가. 왼편에 수어통역사의 통역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애도하기 때문입니다. 혐오와 낙인 속에서 온전한 추모의 마음을 전할 새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을, 차별과 배제 속에서 통증을 홀로 견뎌내야 했던 이들을, 공포와 감시 아래 죄인이 되어야 했던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을, 우리의 이웃과 친구와 동료와 가족을 애도하기 때문입니다.

감염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며, 감염병의 종식을 이야기할수록 감염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가려집니다. 바이러스가 언젠가 이땅에서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가려져온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일상의 회복을, 무언가의 성장을 말할 수 없습니다.

회복은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고 경제만의 것이 될 수 없으며 국가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비탄의 세월이 드러낸 고통을 직시하고, 기억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리를 떠올리고 애도할 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을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회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픔을 겪어낸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어낸 책임을 묻고, 애도와 기억을 모아, 더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향해 서로를 돌보며 새로운 길을 닦아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지금에는, 내일에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애도와 기억의 장에 함께 모인 모든 분들께, 코로나19로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던 모든 분들과 그 가족, 친구, 이웃, 동료 시민들께 연대의 인사를 보냅니다.

사진3. 파이낸스센터 앞 계단에 추모의 메시지가 담긴 색색깔의 손피켓과 LED 촛불이 늘어서있다. ‘빈 자리를 바라보며 기억합니다, 당신의 삶을’, ‘애도할 권리 기억할 권리’, ‘토닥토닥 맘 튼튼’, ‘애도, 추모하는 마음이 존중받는 세상’,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기억하겠습니다’, ‘애도는 우리를 연결시킵니다. 망자와 산자를 서로 다른 남은 이들을’ 등의 메시지.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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