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편지] 인류의 설정값이 평등이 아닐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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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5일 서울시열린광시민위원회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시청광장 사용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신체 과다 노출이나 청소년 보호법상 유해 음란물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요. 퀴어의 존재를 오직 성적으로만 다루는 성소수자 혐오적인 처사였습니다. 이 사회는 이렇게나 혐오적인데 우리의 사회는 그보다는 조금 더 평등합니다. 가령 제 정체성을 아는 친구들이나, 제가 하는 사회풍물패나, 이곳 서울인권영화제도 그렇고요. 소수자 혐오적인 사회와 제가 사는 작은 공동체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일지…

그러고보니 한달 전 쯤인가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반대로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바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는데요, “나는 여자랑도 연애할 수 있어.”라고 말해야 할 것을 “나는 남자랑도 연애할 수 있어.”라고 반대로 말해버린 겁니다. 제가 남자랑 연애하면 그건 헤테로 연애라 커밍아웃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 몇년간 레즈비언 친구들이랑 놀았더니 기본 설정값이 동성애가 되어버려서 생긴 작고 귀여운 헤프닝이었죠. 친구들이 알아서 찰떡같이 알아듣기는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약간 재밌더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은건지. 여자 좋아하는 거 티 났나. 

또 한번은 대학 동아리에서 풍물극 공연을 준비하는데 여성 캐릭터에 지정성별 남성인 친구가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여성인 캐릭터를 남성으로 바꿀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친구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공연에 올렸습니다. 친구는 정많고 유머러스한 주모(酒母) 역할을 아주 잘 해주었습니다. 공연연습을 하면서도, 그리고 공연 당일에도 누구도 주모의 캐릭터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각본과 연출, 그리고 무대 위에 모든 캐릭터들이 주모를 여성으로 여기니 관객도 자연스레 동화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을 설정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어떤 성별과 어떤 사랑을, 어떤 정체성과 어떤 욕망을 ‘정상’이라고 설정하고 있는걸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 설정값을 잘 알고 정상범주의 폭력성과 맞서고 있을겁니다. 누군가는 운동으로, 누군가는 생존으로, 누군가는 일상의 전선에서요. 우리는 타인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무리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나 모든 인간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일괄하는 것을 지양하려고 합니다. 모든 시도가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피드백과 공부를 하며 조금씩 시정하고 있지요. 이 움직임들은 분명 언젠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설정값을 더욱 평등에 가깝게 만들겁니다. 우리의 변화와 혁신은 평등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것이니까요.

사진1. 분수대 위로 무지개가 보인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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