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월성>

인권해설

“‘엄마 나 어떡해?’라고 묻는 딸아이한테 물 많이 마시면 괜찮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경주 월성 나아리에 사는 신용화 사무국장이 눈물을 훔친다. 아이의 몸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후쿠시마 오염수가 해양에 버려지면 수산물을 먹지 못한다며 걱정하는 나는 행복한 걸까.

나아리는 월성핵발전소 반경 1km 인근에 있는 마을이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30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월성 1호기가 준공식을 하던 당시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몰랐다. 오히려 가끔 버섯구름이 나올 때 멋지다고 생각했다는 나아리 주민들. 이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모여 상여를 끈다. 핵발전소 옆에서 삼중수소를 마시며 살아갈 수 없으니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낸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이곳에 정부는 또다시 핵쓰레기 저장을 위해 맥스터(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 시설)를 건설하려고 한다. 암과 싸우며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보다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엉터리 공론화의 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처절한 삶이 무시되는 것이 2020년을 사는 나아리 주민들의 현실이다.

10월 말, 부산에서 출발한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캠페인단이 모형 핵폐기물 드럼통을 끌고 청와대를 찾았다.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핵폐기물 ‘모형’ 앞에 견고한 경찰 벽을 쌓았다. 모형이지만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캠페인단은 “부산, 울산, 경주, 영광, 울진 등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은 벌써 수십 년째 핵폐기물을 끼고 사는데, 청와대는 모형 하나가 무서워 경찰 벽을 세우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청와대가 문제고 서울과 수도권이 문제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물었다. 태양광 발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으니 문제 아니냐고. 서울에 사는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태양광 발전의 폐기물은 걱정하면서 10만 년 동안 책임져야 할 핵폐기물은 걱정하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에서 나오는 빛 반사는 걱정하지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있는 줄도 모른다. 저 송전탑 너머의 문제일 뿐이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문제일 뿐이니.

“우리 가족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다시 힘을 내려고 해요.” 나아리 주민들은 얼마나 더 힘을 내야 하는 것일까. 나아리 농성장 앞에 새로 달린 현수막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거기 적힌 말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영경(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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