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2차 송환>

인권해설

2013년 9월, 임진강을 통해 월북하려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1명이 남쪽 군인에 의해 사살되었다. 47살 남모 씨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사람. 군 초병의 통제에 응하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정황과 인상착의가 전해졌다. 당시 해당 군인에게 포상 휴가가 주어졌다는 설 정도를 제외하면, 몇 년이 지나 검색해봐도 이후 군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조사하고 처리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사람을 죽이면 범죄다. 제대로 진상규명 되지 않거나 포상받는 범죄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이토록 문제 제기나 후속 보도가 없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아니어서. 북쪽의 사람들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규정하는, 명문화된 법률의 폭력성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불순한 행위. 실질적인 위협을 수반하는 행위. 고인은 왜 강을 건너려고 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이어가다 보면 문득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갔을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는 바가 없지만, 죽어야 하는 상황에 그저 애도하게 되는 것이다.

2020년 9월, 이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며 기시감이 들었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1명이 북쪽 해상을 표류하던 중 북측 군인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을 때다. 당시 국내 여론과 언론 보도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알고 보니 채무가 많았다는 등북쪽으로 가게 된 원인과 관련된 가십거리, 그리고 월북의 자발성 유무. 월북이라면 국가는 보호의 의무가 없고, 월북이 아니라면 잔혹한 북한군의 총격으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중대 사고라는 것이다.

대립적 경계선에 있는 사람의 의도와 행동을 해석하는 스펙트럼은 매우 협소해서, 월북 여부는 2년이 지나 또다시 정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치적 상황에 모두가 흡수되다 보니, 고인은 어쩌다 북쪽으로 가게 되었을지 궁금해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거의 들리지 못했다.

경계를 넘는 사람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죽임을 당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70여 년 동안 반복된 폭력 앞에서, 죽인 사람을 탓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명령과 지시대로만 행동해야 하는 군의 조직 문화, 존재의 의도를 단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재빨리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는 환경, 민주적 감시와 견제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국가안보의 특수성’과 그를 정당화하는 분단 상황, 남북 간 일상적·정례적 대화와 교류의 부재… 구조상의 거대한 공백 속에 사람들이 죽어갔다. 안보 아니면 종말, 우리 편 아니면 빨갱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는 더 이상 사유하지 않도록 만든다. 자발적으로 긋지 않았으나 너무도 내면화된 남북 사이의 선이 관계되면, 우리는 유독 사람의 죽음에 둔감하고 무책임하다.

2022년 9월,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러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권리가 총체적으로 박탈된 이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분단된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김영식 선생님을 비롯한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에게서 빈 공간을 채우는 무지개를 본다. 경계를 건너면 된다-안된다, 고향으로 갈 수 있다-없다의 세계에서, 애초에 건너지 못하게 할 수 없다, 그럴 수 있을 리 없다는 감각의 가능성을 찾는다. 죽거나 죽임당하는 것만으로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세계에서, 또 어떤 질문과 서사들을 채워갈 수 있을까.

영철(피스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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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는 평화와 배움, 평화와 일상을 연결함으로써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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