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나들이] ‘용접공 김진숙의 37년 투쟁 이야기’

소식

“동지들”이라고 불리는 게 낯설었다. 마지막 질문 시간에 누군가 진숙님께 투쟁의 전문 용어라 할 만한 것을 어디서 배우고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로 받아들이셨는지 물었던 게 공감이 될 정도였다. 나는 “동지들”이라고 불리는 게 싫다는 생각도 했다. 나에겐 외자(별명)라는 이름이 있는데, 모든 것이 지워지고 “동지”라는 것만 남은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대중적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도 하였다. 나 역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에 놓여 있었다. 결국 받아들였지만 나의 다름이 지워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되고, “동지”라는 단어는 왜 안 됐을까.

 

“동지”라 우리를 부른 사회자는 또 다른 ‘김진숙들’을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저렇게 언급되는 걸 김진숙님은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다. 어렴풋이 불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생이라는 게 있는데 저렇게 한 꼭지만 뽑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김진숙’이라 이름 붙이는 거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차이’에 대해 생각한 것 같다. 사실 난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과 나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옛날에 잠시 사회문제와 거리를 두는 동안 삶의 고유한 이야기에 주목했기 때문에 더 그러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고민하는 것 같다. 결국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는 게 아닐까.

 

목적이나 뜻이 같은 사람, 이것이 ‘동지’의 뜻이라고 한다. 나의 친구는 혐오나 차별 없애기를 목적으로 투쟁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스스로 ‘동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함께 싸운다’는 의미를 가리킨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모두가 채식을 할 때도 그 이유는 동물해방, 기후 위기, 건강 등 이유가 다양하고 모두 포함될 때도 각각의 정도가 다르지 않냐고. 과연 우리가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같은 목적이나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데 얼마큼의 가능성이 있을까. 

 

김진숙님의 이야기 현장으로 돌아온다. ‘용접공 김진숙의 37년 투쟁 이야기’를 듣겠다고 구글 폼에 신청하고 모이는 장소에 착석한 나는 앞으로 2시간 동안 어떻게 이야기를 들을지 막막했다. 집중력과 체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쌀쌀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정신이 멍했는데, 우려와 다르게 사실 진숙님은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잊지 말아야 할 지점들을 분명히 가리켰고, 웃음을 빼놓지 않았다. 배우 김희애님이 “놓치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했던가. 웃음 포인트에는 대조, 그러니까 삶의 격변이 담겼고 아주 화끈했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라며 웃어넘길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다 함께 웃으며 그것이 잘못된 말과 행동이라는 걸 우리 사이에서 공유하는 것 같았다. 

 

내 방에서 뒹굴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집어 읽고 있다. 1장의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을 이제 막 읽은 참이다. 그러나 그 짧은 내용 속에서도 “흔히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라는 문장이 크게 와 닿았다. 언젠가 ‘이야기’와 ‘경청하는 태도’의 중요성에 대해 매료된 적이 있다. 앞의 문장과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경청하는 사람 또는 경청하는 태도 없이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말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간에. 진숙님은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의 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나는 플랫폼씨가 만든 이 자리에 더하여 김진숙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자 하는 우리가 있었기에 김진숙님의 이야기가 2022년 5월 28일 오후 3시에서부터 5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역사의 증인을 마주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의 포스터에 가장 크게 적힌 말은 “끝까지, 웃으며, 함께”였다. 어쩜, 김진숙님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잘 담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경험 속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쌓아온 진숙님이 조금 부럽기도 한데, 나에게도 “끝까지, 웃으며, 함께”할 수 있는 밑바탕이 생길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한 줌의 생각을 아직은 흩어지는 모래알로나마 이곳에 남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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