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소식: 애도와 기억의 장을 열다

소식

코로나19로 투병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해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신 적이 있나요? 사망자로 집계되어 숫자로 남은 이들, 근거 없는 감염 확산을 이유로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유족들이 있습니다. 더이상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모인 이들이 있습니다.

사진.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 애도와 기억의 장 출범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2월 22일,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인한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애도와 기억의 장>을 열었습니다. 서울시청 앞에서 재난 상황에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떠난 이들을 충분히 애도할 수 있어야 함을, 누구도 홀로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연대가 필요함을 말했습니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애도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이트도 개설했습니다. www.remember2022.net에 기억과 애도를 남겨주세요.

 

쉽게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 애도와 기억의 장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애도와 기억의 장> 기자회견문]

 

지금 우리에게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어떤 순간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2020년 2월 19일,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한국사회 첫 부고를 접한 이후 2022년 2월 22일 현재 7500여명의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감염뿐 아니라 의료공백, 백신부작용 그리고 더욱 어려워진 삶의 조건과 차별·배제로 목숨을 잃은 이들까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도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는 사회구성원의 생명과 존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존엄한 죽음, 애도와 기억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사회와 국가의 의무이다. 

 

평등한 삶이 존엄을 실현한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극대화된 감염에 대한 공포와 위기의식은 인간을 존엄에 앞서 감염원으로 여기게 한다. 과도하게 자유를 제한하고, 감염병으로 인해 위험해진 환경 속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일상과 노동을 당연하게 감내하는 잔인한 시간을 지나오고 있다. 쾌유를 바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건네거나 감염 사유에 대한 사회적 원인을 살피지 못한다. 이에 앞서 감염의 이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낙인을 찍으며 혐오를 비추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돌아보아야 한다. 소중한 생명들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왜 이들을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고 있는지, 감염의  공포는 어떻게 극대화되고 어떤 식으로 우리의 인권을 유보하고 있는지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애도와 기억의 연대가 상실의 슬픔을 안고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그동안 소중한 사람을 잃은 가족 구성원과 공동체는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를 갖추거나 말하지 못했다. 죽음에 이른 원인조차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감염인의 동선을 탓하느라 사회적 책임은 묻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공감과 연민이 사라진 지금, 인간의 존엄과 평등 그리고 자유를 지킬 수 없었던 과정을 성찰해야 한다. 애도하는 마음과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나누어야 한다. 감염병 상황에서 우리는 연결되어있음을 뼈아프게 확인했기에 더 이상 연대를 미룰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도 인권의 원칙을 지키고 책임을 다해야 국가이다.

 

감염병 상황에서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비통하게 떠나보낸 사람들이 국가에 묻는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은 왜 반복되는가. 위기가 닥치면 위험에 가장 먼저 내몰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인간의 안전과 생명은 후순위로 밀리는가. 왜 존엄보다 이윤과 국적과 고용형태를 더 중요하게 말하는가. 죽음의 순간에마저 존엄이 우선되지 않았던 이유를 묻는다. 왜 불통과 통제를 우선했는가. 왜 비극의 반복을 책임지지 않는가. 

 

국가는 모든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며 인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재난의 시기라면 더더욱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고인과 고인의 공동체에게 존엄과 평등에 입각한 추모와 애도의 권리를 보장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와 지원 그리고 정보를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마련하고 공유해야 한다.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사회적으로 밝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백신접종과 같은 주요한 정책은 투명한 정보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지원은 개개인의 책임과 입증을 떠나 조건 없이 펼쳐져야한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상황일수록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권리의 주체를 확대하여 소통하고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애도와 기억의 장>은 추모의 공간을 열고 지금 우리 사회에 애도와 성찰을 제안한다.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밝힌다. 변화가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제안한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민선언으로 2022년을 마무리 할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은 질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먼저 떠난 이들의 죽음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역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감염병 대확산과 같은 재난의 시기에 더욱 어려워지는 삶의 조건들을 실감하고 사회의 변화를 준비하게 되었다면, 그건 우리의 존엄과 평등이 더욱 중요하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사람들 덕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내일로 이끈다는 것을 잊지 말자. 

 

2022.2.22.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애도와 기억의 장> 기자회견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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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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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주변의 나이드신 분들이 지난 2년여 동안 예상보다 더 일찍 세상을 등지시는 걸 보고 들으며 뭔가 개운치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소위 기저질환자, 고위험군, 고령자라는 뭉뜽그려진 묶음으로 치부되어 명확한 사인을 알아보려는 시도도 “그만하면 많이 살았는데 뭘~” 혹은 “멀쩡한 젊은 사람들도 가는 판에 차암~ 욕심도!”라는 비난 앞에 무안해지는 이런 상황이 옳은가요?
    다수에게 선이라는 판단으로 특별한 건강상의 이유때문에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소수는 비난 받는게 마땅한가요?
    하물며 육친의 죽음에 제대로 된 장례로 마음을 추스리지도 못하고 근거없는 화장을 강요받은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가요?
    마땅히 추모하고 애도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추모의 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 사망자가 100인에 달하게 된 오늘, 더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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