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팅 아이스크림> 프로그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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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뭉뚱그려져 젖고 녹아내린 기록을 다시 보존하고 끄집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지난했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사람들이다. 독재정권 시기에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자 사진운동이 그 공백을 메웠다. 사진운동은 투쟁의 현장을 여실히 전달했던 소식통이었고 사진기록운동가는 대한민국 근현대의 민주화투쟁과 노동운동을 겪어온 당사자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들의 회고가 시작된다.

분파에 따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느냐와 작가주의를 추구하느냐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사진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다. 뉴스와 신문이 전달하지 않는 역사의 증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이들은 혁명가들과 함께 격랑의 한복판에서 민주화를 꿈꿨다.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이 보편의제로 자리 잡는 과정부터 87년 6월과 노동자대투쟁, 6・29민주화 선언까지 굵직한 사건들을 기록하며 여성노동해방과 비정규직철폐, 액팅워킹비자를 외치는 청년노동운동가들의 목소리도 빠짐없이 담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절의 민주화 테제가 추상적이었고 안일했음을 고백한다. 걸출했던 노동운동가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투신하자 싸움을 이끌고 계획하던 모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민주주의 정부를 열망했으나 그 이후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고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김영삼은 삼당합당을 했고 김대중은 JP와 손잡았다. 노무현 정권에서조차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노동의 유연화는 악화되고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는 지독하게 같은 방식으로 무시당했다.

역사 속 영웅과 황홀경은 사그라들었다.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잊힌 역사를, 물에 젖고 녹아내린 시절을 끄집어낸다. 회고하고 비판하며 현실의 역사와 마주한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곧 그다음을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그다음을 생각하겠다는 것은 역사를 이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회의보다 역동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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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09월 24일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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