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를 거닐다> 프로그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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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함께 로힝야 난민 캠프를 거닌다. 세상에서 제일 큰, 60만 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난민캠프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밥을 짓고, 공을 차고, 빨래하고, 글을 배우며, 기억을 말하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2017년 8월 많은 로힝야족이 버마를 떠났다. 학살이 있었고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 실종된 사람이 많았다. 캠프에는 생존자들이 모였고 캠프에 오기 전, 학살이 있기 전의 기억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 기억들은 마치 유령처럼 사람들 사이를 배회한다. 칼람은 이 캠프에는 시공간이 없다고 말한다. 시공간이 사라진 곳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그 자리에 사람들의 기억을 채운다. 상실, 분노, 절망, 그리움, 비극의 기억이 스며든다.

이들의 존재는 이 기억을 끌어안고 구성된다. ‘고향을 잃은’, ‘학살 또는 전쟁을 경험한’ 혹은 ‘이전의 삶을 극복하는’의 수식만으로는 구성되지 않는 존재다. 칼람도, 캠프의 다른 로힝야 난민들도 ‘유령’ 같은 기억을 각자의 방식으로 꺼낸다. 이들이 이야기를 잇는 것은 기억을 꺼내는 작업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억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결국 관객들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구성해나가고 있음을 포착한다.

그 기억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칼람도, 다른 로힝야 난민들도 이 기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를 오롯이 끌어안고 담담하게 말을 건넨다. 총격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게 된 다리를 매만지기도, 꿈속에서 검은 유령이 길을 가로막기도, 밤이 되면 그저 눈물이 흐르기도, 계속 어떤 비극을 파고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밥을 먹고, 그러다가 날이 밝고, 그러다가 기도를 올린다.

어떤 사람의 존재는 지나온 삶의 기억으로 구성된다. 그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존재는 달라지기도 한다. <로힝야를 거닐다>의 이들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그로써 기억을 꺼낸다. 관객을 만나며 이는 기억을 만드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 나가는 스크린을 마주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영화별 상영 시간표

스틸컷2.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위에 여러 사람들이 서있고 그 너머로 노을이 보인다.
  • 2022년 09월 22일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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