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그라운드 Home Ground

작품 줄거리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를 운영하고 있는 명우. 넘치는 정으로 손님을 대접하며 시원하게 웃는다. “어서와. 명우 형이야.”

오랜 기간 동안 ‘레스보스’를 지켜왔던 명우와 그와의 관계를 따라가면서 한국 레즈비언 문화 공간의 역사를 훑는다. 퀴어는 이들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만나며 긴 세월의 혐오에 맞선다.

프로그램 노트

퀴어로 숨을 쉬기 위해선 틈을 만들어내는 저항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는 숨 쉴 틈을 내어주는 균열이 되어왔다.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만나야 하고, 가끔은 함께 밥과 술을 나누고, 웃고 울어야 한다. 그렇기에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나의 자리가 있는 공간.

이태원의 ‘레스보스’는 그저 관념적인 공간은 아니다. 그 안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람들을 반기는 ‘섬지기’ 명우형이 있다. 그는 매일 가게문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고 테이블을 닦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춤을 추고 가게를 치우고 홀로 집에 들어간다. 공간엔 매일 같이 노동과 시간, 돈이 들어가지만 퀴어로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은 다행히도 ‘레스보스’의 전과 후로 이어지고 있다. 명동의 샤넬다방부터 퀴어 페미니스트 댄스 공간 루땐까지.

명우형은 ‘레스보스’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이 들어간다. 버티고 버틴 발바닥은 아파오고, 가끔은 다 놓고 쉬고 싶어도 ‘레스보스’에 오는 얼굴들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와 있다고 한다.

명우형의 친구가 묻는다. 

“너 아직도 그 생활하니?”

명우형이 답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나의 공간을 지키는 일은 그리고 살아가는 것은 때로 외롭고 지난하기에, 우리는 저항의 공간에서 웃고 떠들어야 한다. 그곳이 우리의 ‘홈그라운드’가 될 수 있도록.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감독

학부에서는 철학을, 대학원에서는 다큐멘터리를 공부했다. 2013년에 <2의 증명>을 공동 연출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2018년에 연출한 단편 <퀴어의 방>과 <463 포엠 오브 더 로스트>는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를 중심으로 퀴어공간에 대한 기억들을 엮어낸 <홈그라운드>(2023)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신진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인권해설

‘홈그라운드’라는 공간과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연결의 감각

 

우리에게는 왜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까? 이 영화에서는 집 밖의 또 다른 홈그라운드를 찾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홈그라운드’라는 말은 팀이 소속된 경기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활동의 근거로 삼는 중요한 터전이나 기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레즈비언, 퀴어에게 ‘홈그라운드’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의미인가?

한국 레즈비언 인권운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1970년대부터 현대의 커뮤니티가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여성 이반 커뮤니티라 할 수 있었던 ‘여자택시운전사회’, 명동의 ‘샤넬’ 다방 등에서 각종 레즈비언 커뮤니티, 모임 문화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한국 최초 동성애자 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고, 초동회에서 갈라져 나온 5명의 회원이 조직한 레즈비언 독자 조직 ‘끼리끼리’가 1994년 11월에 발족하게 된다. 레즈비언 독자 조직을 만들만한 기반이나 문화적 토대가 조성돼 있지 않았던 시절에 결성된 ‘끼리끼리’는 현재 3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이름으로 여성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레즈비언 문화 공간의 시작에는 1996년 5월 문을 연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가 있다. 초기 레즈비언 바는 커뮤니티에 입문하는 장으로 활용되기도, 레즈비언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 후 신촌과 홍대를 중심으로 여러 레즈비언 바가 생겨났고, 서울이 아닌 여러 지역에서도 많은 바가 생겨났다. 또한 인천의 ‘한우리’, 부산의 ‘안전지대’, 대구의 ‘와이낫’ 등의 모임들이 만들어졌으며, 현재에도 여러 모임과 업소들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레즈비언 바와 모임, 커뮤니티들은 그동안 단순히 친목 모임이나 공간을 넘어선 레즈비언 문화와 담론을 만들어내며 인권운동의 역할을 해왔다. 레즈비언 단체와 바를 기반으로 모인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1990년대~2000년대를 거치며 사이버 기반의 커뮤니티로,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끼리끼리를 비롯한 레즈비언 단체들은 회원들 간의 친목을 기반으로 형성돼 인권 활동을 해왔다. 레즈비언이나 퀴어 모임, 커뮤니티들은 취미, 문화, 학술, 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정체성이나 활동을 친목 활동이나 인권 운동 둘 중 하나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레즈비언 단체들 내부에서 친목과 운동을 양립시키려는 노력과 운동단체와 친목 모임 간 연대를 꾀하는 시도'(끼리끼리, 2004)는 과거부터 계속되고 있다. 영화 속 윤김명우 사장님은 레스보스를 운영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에 나서 아이다호빗 투쟁대회에 나선다. 다양한 레즈비언 모임이 생긴 초창기에는 레즈비언들이 모임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레즈비언 인권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다양한 방식의 수많은 온/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생기고 사라지는 2024년 현재, 레즈비언이나 퀴어들이 모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레즈비언과 퀴어 모임 공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간, 커뮤니티, ‘홈그라운드’는 무엇인가? 레스보스가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모여 문화 공간의 역할을 했다면, 루땐은 다름의 역사를 중심으로 모여 함께 춤추며 저항하는 공간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루땐과 레스보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고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너머의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실물적인 공동체가 인권의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영화 속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지난 30년 동안 여성 성소수자, 퀴어의 삶이 나아진 점도 있지만 여전히 척박한 부분도 있다. 여성과 퀴어라는 정체성이 교차된 부분에서 아직 많은 것들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퀴어로서, 여성으로서 가시화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커뮤니티는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퀴어들에게 홈그라운드는 여전히 유효한, 연결의 감각을 제공하는 곳이다. ‘나랑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우리는 이렇게 맞닿아 있구나’하는 연결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홈그라운드는 거리의 퀴어문화축제가 될 수도, 이태원의 레스보스 바가 될 수도, 망원의 루플(루땐의 스튜디오)이 될 수도,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될 수도 있다. 전국 곳곳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수많은 온오프라인의 공간들은 살다 보면 누구나 필요하기 마련이다. 특히 퀴어로서 나이듦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이는 더 뚜렷해지기도 한다. 윤김명우 사장님과 수많은 ‘섬지기’분들 덕분에 이어져 오고 있는 퀴어들의 비빌 언덕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기를,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기억하며 바라본다. 우리는 수많은 ‘레스보스’에서 만나서 함께 마주하고 살아가며, 저항하는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레즈비언, 퀴어 문화 공간이 살아있음을 안다. 이제 우리의 ‘홈그라운드’에 모여서 함께 춤추고, 연대하며 저항하자.

 

*본 글은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의 ‘한국 레즈비언 인권운동 10년

사’(2004)를 참고하여 일부 작성되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홈그라운드’에 대한 많은 질문, 생각

을 나누어주신 루때너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레인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레즈비언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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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레즈비언상담소’(전 ‘끼리끼리’)는 레즈비언들의 다채로운 삶과 고민으로부터 구체적인 실천들을 만들어 나가는 여성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입니다. 여성 억압에 저항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된 이분법에 반대하며, 여성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긍심을 키우는 길을 함께 찾아 나갑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한국사회 첫 레즈비언 독자조직으로서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를 맞이하여 아카이빙 사업과 가족구성권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상담소는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길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626회 서울인권영화제저항하다: 마주하며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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