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네이션 Host Nation

작품 줄거리

<호스트 네이션>은 기지촌 내에 자리 잡은 이주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지촌 안에는 러시아인, 필리핀인, 한국인 등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호스트 네이션>은 그중에서도 필리핀 이주 여성들에 집중한다.
필리핀 자국에서 빈곤 문제에 당면해 있는 여성들은 우연한 기회로, 혹은 알음알음으로, 혹은 스카우터에 의해 한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연예 기획사를 경영하고 있는 매니저가 먼저 면접을 보고 다음으로 브로커가 간단한 보컬 테스트를 치르고 나면 데모 테이프 작업이 시작된다. E6비자(연예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자본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어디에 고이는지, 그 흐름에 궤를 같이하는 이들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미군이 주둔한 나라(Host Nation)라면 결코 자유롭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실

프로그램 노트

군산 미군 기지촌에 마련된 클럽에는 노래를 하고 주스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중 일부가 자국에서 빈곤 문제에 당면한 여성들로 연예비자인 E6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이주해 온 경우이다.
여성의 빈곤 문제가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구성된 기지촌과 만날 때, 이들의 서사는 쉽게 인신매매라는 이름으로 상상된다. 주한 미군과 한국 정부를 동력 삼아 작동하는 자본의 톱니가 빈곤 여성을 기지촌 내의 주요 역할자로 대우하다가도 불시에 피해자 위치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여성은 인신매매의 공포를 느끼고, 또 어떤 여성은 기지촌에서 나오기 위해 시설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자기의 편리를 위해 어떤 존재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배치시키도록 둔다면 우리는 <호스트네이션>의 마리아를 어떤 시선으로‘밖에는’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지금 이대로의 생활로는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마리아가 매니저 욜리의 기숙 트레이닝 센터를 찾아가는 행위와, 연예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이주해 기지촌에서 생활하며 “후회 없다”고 말하는 그 발화를,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시스템이 배치한 틀을 깨고 바라볼 수는 없을까.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이고운 Lee Ko-woon

이고운

이고운은 1997년부터 방송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기획/연출하였다. 현재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사 R&R 필름을 설립하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며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및 실험영화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경험하며 한국이 아시아의 최대 가해 국가가 된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시아 여성의 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한국인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작업들을 하고 있다.

인권해설

이고운 감독의 <호스트 네이션>은 필리핀의 싱글맘 마리아를 쫓아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의 미군기지촌에서 엔터테이너로 일할 수 있는 비자(E-6-2)를 취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정부가 허가한 합법적 이주여성 성착취 시스템을 드러낸다.

E-6-2 비자로 한국에 일하러 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필리핀에서 실직 상태에 있거나,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나갈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여성들이다. 미군들을 상대로 얼마나 술을 많이 파는가에 따라(실제로는 미군들에게 주스를 사달라고 해서 드링크백을 받는 시스템) 매달 받는 돈의 차이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 이 여성들이 버는 돈은 필리핀에서 자신들이 벌었던 수입의 10배에서 30배 정도(한국 돈으로 70~90만 원 가량)이기 때문에, 이들은 하는 일의 종류, 강도 등을 따질 겨를도 없이 한국행을 결정하곤 한다.

<호스트 네이션>은 다양한 착취자를 포함하고 있는 E-6-2 예술흥행비자 매매 네트워크와 이 시스템에 협력하는 한국 정부를 세심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스카우터, 매니저, 브로커, 프로모터, 그리고 클럽 업주라는 이 네트워크의 주요 인물들, 그들의 역할, 소개비에 대해 소개를 받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조력자들, 여성들이 인천공항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컨택”, 필리핀 여성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면서 뇌물을 받는 출입국 직원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한국 클럽에 필리핀 여성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착취의 사슬 없이는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필리핀 정부가 E-6-2 비자를 지닌 필리핀 사람들의 출국을 허락하지 않고 그로 인해 필리핀 출입국에서 출국이 여의치 않게 되면 인천공항으로의 여정이 매우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국, 외교부 산하 마닐라 대사관은 E-6-2 비자를 승인하고 제공함으로써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영화는 명백히 보여준다.

기존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 성매매 사슬의 행위자들을 다양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호스트 네이션>의 미덕은 돋보인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군사주의, 가부장제가 촘촘히 얽혀있는 이 문제에서 기본적으로는 시스템과 제도의 책임이 일차적이겠으나, 그 속의 다양한 행위자인 개인을 지워버려서는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성매매가 유독 군대 근처에서는 왜 허용되어 왔는지, 특히 미군의 경우 한미동맹과 안보(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는 위안부의 존재로 그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다!)라는 명목으로 한국, 미국 정부가 심지어 기지촌을 조성, 관리, 권장해왔다는 사실, 이 제도와 관리체계의 허점을 활용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약자(여성)를 착취하는 개인 및 범죄조직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영화는 다시 한 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조이스, 오리 (두레방)

1322회 서울인권영화제자본의 톱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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