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Left Behind: Persons with Disabilities from 3.11

작품 줄거리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피해를 입은 장애인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방사선 노출 위험으로 인한 정부의 “대피하라” 는 지시는 모두에게 똑같이 닿을 수 없었다. 몇십 년 동안 만들어 온, 자신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이 한순간에 위험지역이 되었다. 장애인은 자신의 공간에 남든, 대피소로 피난을 가든 결정을 해야 했다. 선택지만 뚜렷할 뿐 대책은 흐리다.

방사선 노출 위험으로 대피 명령이 떨어진 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피난소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등 장애를 이유로, 모두가 떠나고 있는 터전에 남겨졌다. 자택에 남아도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장애로 인해 구호물품을 받으러 가기 어렵고, 기름이나 전기, 가스가 모두 끊어질 불안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피소로 떠난 사람들도 있다. 휠체어에서 내려올 수 없어 앉아서 자야 하고, 화장실에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 경사로가 있는 곳도 있지만 너무 가파르거나 좁다. 사사키 루미 씨는 피난을 갔다가 ‘장애가 있으니 집이 있다면 돌아가 있으라’는 지역주민의 말을 듣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지진으로부터 1년, 감독은 그들의 삶을 다시 찾아간다. 사사키 루미 씨는 자신의 마음도, 상황도 ‘바뀐 것이 없다’고 말한다. 선택의 결과는 개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선택이 있었을까.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재난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프로그램 노트

2011년 일본 동부 지역을 휩쓸고 간 관동 대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까지.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선 물류도 의료시설도 멈추었다. 피난준비 구역으로 지정된 도시의 사람들은 몇 시간 만에 짐을 싸서 피난길에 올라야 했지만,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남아있었다. 이렇게 9년 전 일본에서 방사능 피폭 지역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2020년 한국에는 바이러스에 의해 고립된 사람들이 있다. ‘표준화’된 재난 대응 방식으로 인해 바깥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장애인이 그러하다. 때문에 장애인은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안전한 공간을 선택하고 생명과 건강을 담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는 더 이상 불편의 범주가 아닌 삶의 위협이 된다. 자연재해와 더불어 감염병 또한 모두에게 같은 무게의 위기로 경험되지 않았던 것이다.

재난은 장애인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애의 다양성만큼 여러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장애인을 위한 개별적인 ‘피난’ 계획은 마련되지 않아왔다. 다양한 요구를 일괄적 격리로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일상적으로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을 특히 취약한 상황에 노출시켰다. 코로나19 상황 초기, 정부는 장애인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될 경우 지정된 별도의 격리시설로 이동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장애인이 자신의 집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격리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활동지원이 필요한 자가격리 대상자가 늘어날 경우 어떻게 활동지원사를 안전하게 확보할지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대신 장애인을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일괄적으로 판단하여, ‘안전’과 ‘보호’를 이유로 시설에 모으기를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공간에 대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예방법, 재난상황에서의 지원대책은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기에 누구나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 초기 재난방송에서는 수어통역이 부재하거나, 있더라도 수어통역사를 제외하고 방송이 송출되기도 했다. 한편 온라인 개학이 시행되면서 장애 학생에게 충분한 온라인 교육장비나 보조인력이 배치되지 않아 교육 참여가 어려운 상황이 다수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들은 현재 교육 시스템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구조와 체계가 장애를 가진 사람의 구체적인 일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봄서비스가 중단되고 사회복지 시설이 잠시 문을 닫을 때에도 장애인이 평소처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라는 요구는 처음이 아니다. 2016년 메르스 당시, 장애인단체들은 정부를 상대로 장애인을 고려한 감염병 관리 매뉴얼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지만 정부는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송은 4년째 진행 중이다. 재난 상황 시에 대처할 기본 매뉴얼조차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위기도 이미 예견된 재난이었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장애를 가진 몸의 경험과 삶이 온전히 존중되어,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 우리는 그러한 공동체를 통해서만 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각종 감염병까지의 수많은 재난 아래에서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 이에 재난에서 장애인이 마주하는 고유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실질적 대응책을 세우는 것은 당장의 재난을 극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재난의 극복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완수되지 않는다. 모두가 피난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나 모두의 일상을 온전히 보전하는 사회적 인프라의 존재를 전제로 성립한다. 이에 우리는 재난상황에서의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논함과 동시에, 단순히 권리와 보장의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 연속적인 삶, 그 자체에 대한 실질적 존중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 불평등한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은 재난 이후 재편될 사회를 결정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현, 남선

감독

이이다 모토하루 Iida Motoharu

 

2009 <개랑 고양이랑 사람이랑 犬と猫と人間と>

2007 <오늘도 커피 볶는 날 今日も焙煎日和>

2002 <아시가라상 あしがらさん>

인권해설

나는 아직도 2011년 3월 11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TV를 보던 중 갑자기 하단에 일본 동부에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자막이 송출됐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붕괴됐다는 소식이 추가로 전해졌다. 전례 없는 강진과 방사능 누출의 재난 상황이 이어지자 ‘일본의 미래’를 분석하는 논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일본 장애 시민의 삶’을 다루는 소식은 따로 접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동일본 대지진 재난을 그저 일본의 위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마주하게 된 이 영화는 오랜 시간 ‘핵발전소 붕괴’, ‘강진’, ‘쓰나미’ 등 피상적인 단어로 기억하던 동일본 대지진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장애인의 생활 세계에서 조명한다.

특히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동일본 대지진 속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일본 장애인과 가족의 고군분투기가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지난 2월 청도대남병원 내 코로나19 집단 확진 사례를 시작으로 지속되는 장애인 차별과 건강 불평등의 문제와 유사했다. ‘재난 상황 시의 패닉, 활동지원인 없는 상황 속 고립된 장애인에게 예견된 참사, 비장애 시민에게 폐를 끼칠까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장애인의 모습, 대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물리적⋅정보 접근권의 박탈, 재난 시 매뉴얼의 부재, 중증장애인을 배제하는 행정, 미등록 장애인에 대한 무대책 등’ 영화 속에서 마주한 약 2011년 일본 재난의 모습은 2020년 한국 재난의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지진과 감염병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재난의 양상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재난은 우리 사회에서 은밀한 시혜와 동정의 모습으로 감추어졌던 장애인 차별과 배제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재난 시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는 나쁜 장애인’으로 비추어지고, 장애인 당사자는 ‘비장애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며’ 고립과 죽음을 택한다.

재난은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 다만 드러낼 뿐이다. 사회의 위선을 걷어낼 뿐이다. ‘나중에’로 적당히 미루어지던 장애인의 존엄성이 노골적으로 무시된다. 그 재난이 지진이건, 감염병이건, 그 국가가 한국이건, 일본이건 시공간과 관계없이 각자도생이라는 극단적인 원자적 상황 속에서 장애인은 지워진다.

누구라도 환영하지 않을 소수자의 고난과 죽음을 조명한 영화, 재난 앞에서 쓸려가는 사람들, 고립되는 사람들과 지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가볍지 않은 영화’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할까. 마주하기로부터 연대의 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난 속 배제된 이들의 삶을 마주하고, 고립되어 두려움을 느끼고 슬픔을 감내하는 얼굴을 외면하지 않을 책임의 무게를 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지진 재난 속에서 구체적인 아픔을 마주하는 것, 10년 전 일본의 재난을 목격하면서 현재 코로나19 재난 속 드러난 장애인의 억압을 연결해 상상하는 것. 전지구적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은밀하게 감추어졌던 차별이 노골적인 혐오와 배제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다 함께 ‘그만’을 외쳐야 한다.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단호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공존을 꿈꿔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실천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상을 추천한다. 연대는 생생한 아픔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변재원(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6코로나19 인권영화제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20회 서울인권영화제삶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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