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하는 거죠. 사람답게.” SK브로드밴드 케이블의 하청노동자 용호, 진환, 봉근, 준홍, 훈은 정규직 전환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참여한 파업을 알리기 위해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살아온 어제와 오늘, 그리고 파업이 끝난 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스튜디오는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다. 진상 고객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농성을 하다 핫팩 하나에 투덜대기도 하는 평범한 그들. 하지만 휴일에 가족과 함께 쉬는 ‘평범한’ 일상을 위해 그들은 싸워야만 한다. 전파를 타고 곧바로 실려 오는 목소리들은 그들의 투쟁이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남긴 자국들을 따라가 보면, 삶의 한 자락을 차지한 그들의 투쟁을 엿볼 수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지영
프로그램 노트
왜 힘들게 파업을 하냐는 질문에 <플레이온> 속 노동자들은 대답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그렇다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휴일도 없이 일하지만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다쳐도 산재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렇게 SK브로드밴드 하청 노동자들의 삶은 매일이 견딤의 연속이다. 이들의 삶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못한 것이 되어 수많은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공기 중에 퍼진 자본의 횡포는 노동자들의 당연한 외침을 잘못된 것처럼 틀에 가두어 버린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쯤이야’라고 치부하며 견뎌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사회 속 하나의 파편이 되어 단절된 투쟁만을, 조용한 투쟁만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팟캐스트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절되었던 벽을 깨고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들의 외침이 나에게 울림이 되고 그들의 삶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파편으로 존재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이 투쟁의 파동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 더 많은 이들과 닿을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변규리
연분홍치마의 활동가로서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장에서 함께 성장하며 영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
인권해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는데, 떠나기만 한다고 더 좋은 절이 나타날까.” 왜 노동조합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김용호 씨는 이렇게 말한다. 독립운동보다 힘들다는 노동운동. 독립운동은 잘 모르지만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기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인정받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다.
문제의식을 가진 노동자들 몇몇이 모인다고 해서 노동조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은 수의 조합원으로 노동조합을 시작하면 회사의 탄압에 버틸 수 없다. 노동자들은 일정 수가 모일 때까지 조심스럽게 동료들을 설득하고 조직한다.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관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사람들을 만난다.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도 걱정이다. 회사가 먼저 회사(어용)노조를 만들어 말 잘 듣는 노동자들을 가입시키면 고생해서 준비한 민주노조는 힘을 가질 수 없다. 노동조합 설립신고도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보안을 통해 내야 한다. 그렇게 노동조합 설립신고가 끝나면 이제 막 한 고비를 넘겼다. 이제부터는 회사의 탄압에 맞서 노조를 지켜야 한다.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기사들도 그랬다. 노조 설립을 세상에 알린 날이 2014년 4월 10일. 그로부터 1년을 싸운 후에야 회사와 조인식을 맺고, 노조의 요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관리자의 회유를 뿌리쳐야 했고, 어떤 날은 괴롭힘과 탄압을 견뎌야 했다. 비조합원들의 차가운 눈빛과 싸워야 했고, 가족들의 우려도 설득해야 했다. 언론의 무관심에 실망하기도 하고, ‘노조=빨갱이’라는 눈초리에도 시달렸다. 파업, 고공농성, 노숙농성, 본사점거, 오체투지…. 거리로 나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냈던 1년.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탄압받았을 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어야 했다. 이는 ‘노동조합’을 혐오하는 사회풍토와 ‘노조=장기투쟁’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든 고립이었다.
투쟁이 끝난 후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기사들은 “노조의 맛을 알았다”고 말한다. “이제 비노조(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상태)는 못할 것 같다”며, 노동조합 1년을 ‘자존감’을 확인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이는 노동자의 존엄을 지킨 시간이 되었고, 노조가 만든 일터의 변화는 “그나마 좋은 절을 짓고 있다는 자부심”이 되었다. 이 같은 30대 남성 설치수리기사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소감’은, 대형마트의 4~50대 여성노동자, 청소를 하는 5~60대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닮았다. 노동자들이 ‘절을 떠나는 중’이 되기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을 시작하는 순간, 이 순간은 자존감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시작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5월 22일, 자회사를 만들어 설치수리기사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진짜 사장이 나와라”라고 외쳤던 노동자들의 외침에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답했던 회사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이 몰고 온 새로운 바람이다. 지금도 비노조와의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번 기회에 ‘진짜 정규직’이라는 경유지에 착륙할 수 있을까. 독립운동보다 어려운 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노동조합의 길, 경유지도 노동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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