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영국의 인권활동가 라바니가 체포된다. 기소 이유는 그가 핸드폰의 비밀번호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 라바니의 사건을 보도하던 기자 라이언은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의 비밀스러운 존재를 알게 된다. 코드명 ‘팬텀패럿’. 누구든 국경에서 검문 당할 수 있고, 신문 시에는 전자기기를 제출해야 하며, 기기의 비밀번호를 제출하지 않을 시엔 기소당할 수 있다. 목적은 ‘위험’한 인물의 테러를 방지하는 것. 위험한 인물이란 과연 누구인가. 국가가 우리의 핸드폰으로부터 찾으려는 정보는 무엇일까.
프로그램 노트
비행기에서 내린다. 입국 심사를 받고 나가는 중에 경찰이 당신을 멈춰 세운다. 검문이 필요하단다. 당신의 핸드폰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대테러방지법에 의해 당신은 따라야만 한다. 거부하면, 당신은 ‘죄인’이 될 것이다.
황당한 이야기일까? 영국에서 2000년 제정된 대테러방지법의 제7조는 국경에서의 불심 검문을 가능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검문 대상이 가진 기기와 그 안의 정보를 모두 다운로드 할 수 있게 한다. 이를 거부할 경우 체포도 가능하다. 영화의 제목인 ‘팬텀 패럿’은 이 시스템을 일컫는 이름이다.
<팬텀 패럿>에서 라바니는 실제로 핸드폰 비밀번호 제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 구금된다. 경찰과 정보기관은 라바니에 대한 검문이 ‘무작위’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는 반테러 정책, 무슬림 공동체 범죄화 등으로 내몰린 이들을 지원하는 인권단체의 활동가이다. 그의 핸드폰에는 도움을 청한 이들의 내밀한 정보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국가가 원하는 정보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다.
안전과 보안을 핑계로 우리의 데이터를 탐내는 권력들이 있다. 범죄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인의 모든 정보와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권한이다. 이미 우리의 스마트한 디지털 세계는 우리의 이동 거리, 계단을 오르내린 횟수, 연락과 그 기록 등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은 곧 반체제/반정부적 저항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겪어왔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감독
케이트 스톤힐은 권력, 정체성,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시민권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여러 상을 수상한 감독이자 촬영 감독이다. <팬텀 패럿>은 케이트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단편 영화로는 <패밀리 스테이트먼트>(2022)가 있으며, 이 작품은 필드 오브 비전(Field of Vision)에서 제작되어 햄프턴 국제 영화제와 DOC NYC에서 상영되었고, SIMA 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Grierson 상 후보에 오른 <마더>(BFI 런던 영화제 2020)와 RTS 및 Grierson 상을 수상한 <가짜 뉴스 동화 Fake News Fairytale>(BFI 런던 영화제 2018)가 있다. 촬영 감독으로서 케이트는 채널 4, 아마존 스튜디오, VICE 등의 작품에 참여했다. BFI Doc/Society, 트라이베카 영화 연구소, 그리고 Catapult Film Fund의 지원을 받았으며, Logan Nonfiction Fellow로 선정되었다.
인권해설
국가의 디지털 감시에 인권 원칙은 무슨 소용
2015년 4월 8일 세월호참사 추모집회에서 시민 1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경찰은 이 중 40명 이상에 대해 휴대전화를 압수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그날 밤 청구된 압수수색영장을 거의 다 내주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사진, 통화기록은 물론 페이스북 등 원격접속내용까지 깡그리 경찰에 제공해야 했다. 휴대전화 패턴을 풀라고 강요당한 사람도 있었다. 누가 집회를 주도하였느냐고 묻는 경찰 신문에서 진술을 거부하려던 어느 참가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추모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내 인생을 전부 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묵비권이 헌법상 권리라는 선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우리의 삶 거의 모든 면모에 관한 디지털 기록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휴대전화를 국가가 압수하는 것이 “과거에 집을 철저하게 수색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감한 정보를 노출시키며, 그 정보들은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집합되어 있다.”고 우려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기본권을 최소한으로만 침해해야 한다는 그간의 인권 원칙이 디지털 시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나의 모든 이동기록, 사회관계, 취향, 건강, 심지어 생각까지 한데 모으고 드러내고 심지어 추측을 하는 데 이르렀다. 국가는 이런 기술적 권력을 동원하여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쉽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문제의 본질이 기술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국가의 오래된 욕망을 실현시켰을 뿐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는 디지털 시대 국가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동시다발적이고 침입적으로, 표적적으로나 광범위하게 감시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경고한다.
이것은 테러방지법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대전화 만의 문제도 아니다. 집회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연행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코로나19 시기에 확진되었다가 휴대전화와 신용카드의 모든 정보가 제공된 환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애인 부정수급을 수사한다며 관내 거의 모든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6백 명의 정보를 저인망식으로 털어간 경찰의 문제이고, 코로나 시기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사람 1만 명의 휴대전화번호를 수집한 당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전수조사’에 대한 국가의 욕망을 갈수록 완벽하게 실현해 가고 있다. 모든 행동과 생각에 디지털 기록을 남기는 세상으로 빠르게 바뀐 마당에, 침해는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인권 규범이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술이 국가 권력을 뒷받침하는 데 굳이 이와 불화하는 인권 규범은 세상 그 자체와 맞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이 허용하는 최대한까지 국가의 침입을 허용한다면 개인은 늘 최소 침해가 아니라 최대 침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력 앞에 한없이 개인이 투명해지는 상황을 우리가 방치한다면 민주주의조차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관건은 국가 권력을 인권의 원칙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기본권 침해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도 꼭 관철되어야 한다.
장여경(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
정보인권연구소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갈수록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한 디지털 기술의 편의성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민들은 디지털 환경을 일구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정보와 지갑을 내주는 대상으로만 취급됩니다. 정보인권연구소는 디지털 환경에서 시민사회 관점에서 정보인권을 지지하는 대안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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