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너머 Beyond the Blues

작품 줄거리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인 닐은 혼자가 아니다. 애인과 친구들이 그의 곁에서 지지하고 연대한다. 닐은 페미니스트이자 활동가다.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시민등록법, 가부장제에도 저항한다.

프로그램 노트

저항하다.

트랜스젠더는 존재 그 자체로 성별이분법,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사회에 저항해야한다. 닐은 행동하는 트랜스젠더다. 시민 등록제 반대, 성별 이분법 반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위해 맞선다. 닐은 페미니스트다. 전통적인 남성성을 거부한다. 가부장제에 저항한다.

마주하다.

트랜스젠더는 트랜지션 중에 가족과의 갈등에 놓이기 쉽다. 신체의 변화가 눈에 띄기 때문에 숨길 수 없는 탓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트랜지션을 부정하려고 한다. 자식이 정상성에서 벗어났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연민한다. 

닐 역시 어머니와 갈등을 겪지만, 소통을 포기하지 않고 마주한다.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다.

트랜스젠더는 시스젠더가 되고싶은 사람들이 아니다. 젠더를 횡단하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트랜스젠더여서 시스젠더가 보지 못했던 것,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이것이 트랜스젠더 프라이드의 자양분이 된다.

닐은 시스젠더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자신이 트랜스젠더로 태어났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간다.

트랜스젠더는 수많은 정체성이 교차하는 존재다. 정체성의 교차 지점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닐은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자신을 찾아간다. 닐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지지하고 연대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퀴어페미니스트로서의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닐은 당당하게 자신을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내가 트랜스남성이라서 축복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소하

감독

데발리나 마줌더

데발리나 마줌더는 여러 상을 수상한 독립 영화 제작자, 촬영 감독, 미디어 프로듀서이다. 주로 벵골어로 작업하는 데발리나의 작품은 커뮤니티 및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한 영화들로, 레즈비언 자살 및 여아 낙태 이슈, 개인사에서 지역사, 그리고 활동가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데발리나의 영화는 인도와 해외의 유수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실과 커뮤니티 공간에서도 상영되었으며, 그녀의 다큐멘터리는 대안적 성(sexuality)과 다양한 관련 주제를 포용한다. 성소수자의 삶과 그들이 처한 어려운 시기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데발리나의 영화는 다양한 스타일, 장르, 기법, 미학을 혼합하여 중요한 논쟁적 목적지에 도달한다. 스틸 사진작가로서 데발리나는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산문적인 것, 때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표현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것을 즐긴다. 그녀의 성, 젠더, 평등, 환경에 관한 글은 여러 잡지와 주요 일간지에 게재되었다.

인권해설

태어났더니 성별 이분법 주민등록세계

2020년 10월,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난수화 하는 체계를 시행했다. 그러나 오직 성별 정보만이 남았다. 신분에 성별이 꼭 필요한가? 한국 사회는 태연스럽게 사람들을 남녀로 구분 지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고, 결론적으로 우리 트랜스젠더를 너무나 못살게 군다.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악순환의 삼각형에 빠져있다. 지금 한국에는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변경하기 위한 법률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오직 대법원 내규에 따라 절차가 진행되며 이는 강제도 아니어서 ‘관대한 판사님’이 통과시켜 주기를 기도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대법원 내규에서 성기수술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성별을 정정하고자 하는 트랜스젠더는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져야만 한다. 노동, 의료, 교육, 금융 등 그 어느 현장에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주민등록 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고.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트랜지션 비용이 감당되지 않고, 성기수술을 하지 못하면 주민등록번호는 변경할 수 없다.

많은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성별이분법적인 사회, 그리고 모든 국민을 간편히 등록해 관리하며 신분에 성별을 강제하는 국가가 있다. 영화에서 도입 반대 시위를 한 그 시스템은 한국에선 이미 수십 년째 이어오는 전통이 되었다. 또한 어떤 부분에선 더 악랄하고 지독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하게 지니고 태어나 환경이 되어버린 주민등록번호는 인권적 측면에서 볼 때 그 단점이 지대하다. 제도가 생겨나게 된 태생적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불필요하게 많이 쓰이며 다수의 개인정보가 포함돼있다.

사람의 신분에 성별이 그렇게도 중요한 걸까? 누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트랜스인지, 외형이나 신분증에 표기된 번호 따위로는 판단할 수 없다. 세속적인 한국사회에서는 신분증에 종교가 들어가있지 않지만, 사회 분위기에 따라 종교란이 기입된 국가도 있다. 만약 지금 당장 주민등록번호에 종교번호가 들어간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종교가 신분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는 국가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 성별 또한 인식을 조금만 바꿔본다면 꼭 있어야만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선택지라도 다양해 원하는 정체성을 기입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남녀 두 가지로만 구분 짓는 제도는 이미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또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과도한 수행만 추구하게 될 뿐이다. 남성 혹은 여성밖에는 없는 번호체계 안에서 그 사이 혹은 바깥의 많은 스펙트럼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생겨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도가 바뀌어야 사회도 바뀐다. 사회가 점차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공고히 해나갈수록 트랜스젠더는 가족에게 수용 받기 어려워진다. 가정에서 고통 받는다면 사회라도 보듬어야 할 텐데 이들을 보호해야할 사회는 마땅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는 고통 받는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일상 속 모든 순간이 나를 끝없이 해명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변모한다. 나는 나일 뿐인데 신분이 불일치하다며 멋대로 판단 지을 권리를 주민등록번호가 쥐어준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중 받아야 하지 해명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어떤 투쟁을 하며 살아야 할지 선택해야 할 만큼 투쟁할 일이 너무나 많은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밥이라도 벌어먹을 수 있게 주민등록번호에 성별만은 제발 빼줬으면 좋겠다.

겨울 (트랜스해방전선)

 

트랜스해방전선

https://twitter.com/freetransright 

2017년 12월 창립한 트랜스해방전선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인권 증진을 위해 제도개선,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트랜스젠더퀴어를 가시화하고 행동하는 단체입니다. 2018년도부터 지난해까지 6년째 이태원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 및 행진을 이어왔으며, 성별정정특별법 등 입법운동, 트랜스젠더 가시화 등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26회 서울인권영화제저항하다: 마주하며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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