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즈비언, 즉 ‘잘못된 존재’이기 때문에 전환치료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아나’. 아나는 때때로 현실로 돌아오지만 대개는 기억 속에 머문다. 전환치료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그 기억들과 싸우면서 새 기억들을 만들어간다. 아나가 보내는 그런 순간들에 언제나 함께하는 애인 ‘마티나’. 마티나는 아나를 재촉하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으로 덧붙인다. 아나의 증언은, 아나가 기억하는 시간들이 전해주는 서사에 따라 빨라졌다, 느려지기도 하고, 강해졌다, 약해지기도 한다. 그 시간들 속에서 아나가 느꼈던, 또 느끼는 여러 마음들은 색으로, 속도로 화면에 칠해진다.
감독은 계절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느낀다는 아나의 이야기에 부쳐 작품을 가을, 겨울, 봄, 여름의 맺음들로 구성한다. 그리하여 그 기억의 고리들을 묶을 수 있는 새로운 사계절을 아나에게 선사한다. 아나에게 사계절은 더 이상 이전의 계절들이 아니리라.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
감독
흐르보예 마비치
1974년 크로아티아 출생으로, 1997년 자그레브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02년, 크로아티아 컬트 다큐멘터리 시리즈 <Direct>의 공동창시자이다. 자그레브다큐멘터리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인권해설
동성애치유상담학교가 3월 10일 개교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은 노골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탈동성애포럼’과 같은 행사도 국회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기관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개최되곤 했다. 동성애치유상담의 목적은 상담을 통해 개인의 성정체성을 바꿀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탈동성애도 인권’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며, 동성애를 성적지향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행해진다.
진주 사랑의교회에서 20대 초반 트랜스젠더 연희에게 전환치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3월 9일 보도됐다. ‘정상적’인 정체성을 찾아주겠다는 명목으로 행해졌지만, 당사자인 연희는 “사실상 비과학적인 논리에 근거해 구타와 언어폭력들로 이루어진 고문과도 같은 행위였다”고 증언했다. 급소를 누르며 “귀신을 몰아내야 한다”고 하거나 “동성애자는 돌로 쳐 죽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있어야 했던 연희에게, 그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연희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부정해야 했고, 혼자서 폭력적인 상황을 견뎌야 했다. 연희에게 그 때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일것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속 한 장면도 아니다. 불과 2개월 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의 일부고, 우리 주변에서 또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다. 뉴스앤조이 기자는 직접 해당 교회를 찾아가 전환치료 경험을 하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전환치료는 감금되거나 신체적 폭력을 당해야 꼭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늘 ‘치유적’ 삶을 강요받는다. 총선 당시 기독자유당은 ‘동성애 척결’,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쳤고 몇몇 정치인들은 ‘동성애가 인륜을 배반하는 것’이라 떠들어댔다. 이를 보면서 성소수자들의 고통이 반복되고 있음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또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도 매일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성소수자들의 마음에 대한 치유는 외면 받는다.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마저 무력해질 때가 있다.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밝혀진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성애가 병인지 아닌지 설명해야 하는 원시적 논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동성애는 병”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폭력 앞에서,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고자 하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3월 22일 세계정신의학협회는 “‘전환치료’ 금지, 비범죄화·차별금지법 등의 지지,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한 정신건강적 불평등 제거를 위한 지원” 등을 강조한 성명서를 채택했다.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이 성명이 나올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꽤 위험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전환치료’, ‘동성애치유’와 같은 말은 아직 낯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르게 살고 싶었던 영화 속 ‘아나’는 한국의 연희와 닮았다. 한국은 앞으로 또 다른 아나와 연희를 만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끔찍하게 짓밟는 전환치료에 맞서 발견해야 할 인권의 언어는 ‘생존’과 ‘존엄’이다. 반복되는 악몽을 깰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치유’는,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나답게 사는 것, 존중 받는다는 기쁨,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다르게 살고 싶은 의지! 이 모든 것이 전환치료에 맞서 싸울 힘의 자원들이다. 이것을 기억하자.
정욜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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