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뜨개질 Queen’s Crochet

작품 줄거리

한나는 뜨개질을 한다. 기억과 생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시간과 역경이 모여 만든 인형극은 ‘정상성’ 사회가 무심히 던지는 차별의 언어를 전복한다. 한나가 창조한 세계를 보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세계가 방 하나를 촘촘히 채운다. 우리는 날뛰고 반항하고 긍정하는 젠더 교란자다.

프로그램 노트

한나는 ‘춘자’에게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해 15년간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나에게 뜨개질은 삶의 일부다. 뜨개질로 위로 받고 뜨개질로 세상을 만나며 어른이 되었다. 거기에 ‘여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건만 세상은 뜨개질을 하는 한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알고 보니 되게 여성스럽다?” 

처음 춘자가 뜨개질을 알려준 이유가 ‘신부수업’의 일종이기는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 서라고 할 때마다 위화감을 느끼던 어린 시절의 한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한나는, 코바늘계 끝판왕인 ‘만다라 매드니스’를 뜨겠다 다짐하는 어른이 된 한나는 할머니가 가르쳐 준 뜨개질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창조적인 힘을 탄생시켰다.

한나는 춘자가 선물해준 ‘뜨개질’이라는 자산을 소중히 여기되 여자와 남자의 경계의 둘레를 넘나들며 방 한가득 뜨개 세상을 창조한다. 과거의 기억이 실에 엮어 되살아 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도, 전복하는 마음도, 소심한 마음도, 젠더를 교란하며 다시금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도 되살아 난다. 뜨개질을 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처럼 한나의 세상도 순탄치만은 않고, 뜨개질에 형형색색의 여러 실이 필요한 것처럼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병립한다. 그러나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나의 정체성을, 교차하고 겹쳐지는 수많은 ‘나’를 우리는 긍정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감독

조한나

1997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를 졸업했다.

인권해설

영화의 첫 장면은 감독이자 주인공인 한나의 네 호흡 말과 두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말: “화장품 너무 오랜만에 써 가지고 안 나와.” “어머 어떡해 안 나오는 거 아니야?” “눈매를 어떻게 하면 남자답게 그릴까?” “너무 싫어 너무 느끼한 남자 같애.” 행위: 그는 화장을 한다. 즉, 여자되기 도구의 상징인 화장품으로 그는 느끼한 남자를 창작한다. 그는 회색빛 얇은 실로 촘촘하게 뜬, 마스크처럼 그 양 끝을 귀에 걸어 얼굴 일부를 가리지만 입은 뚫린, 턱과 인중만을 가리는 무언가를 쓴다. 즉, 여자들의 손기술이자 예술방식의 대표 격인 뜨개질로 그는 남자의 턱수염을 뜬다. 이렇게나 친절한 감독의 안내와 함께 나는 뜨개질로 자신의 젠더-세계를 한 코 한 코 떠나가는 영화의 여정에 기꺼이 동참한다.

이 세계가 실과 바늘로 만든 어떤 결과물이라고 상상해 본다. 인간뿐 아니라 온갖 인간 아닌 동물, 식물, 흙을 원료이자 수단으로 삼아, 즉 착취해, 뜨개질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광범위하게 짜인 세계를 상상해 본다. 다른 차원에서 그 세계는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의 실로 짜인 복합적인 세계다(권인숙 등이 2021년 발의한 ‘평등 및 차별금지법’ 법률안의 일부). 이 영화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이 세계는 모든 행동, 말투, 취미, 기술, 삶과 죽음의 방식을 이성애자 남자 아니면 여자의 의미망으로 짜 내려가는 세계다.

영화는 말한다. “나는 내 방을 뜨개질의 세계로 만들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내 방에서 뜨개질로 세계를 만들었다.” 영화는 이 거대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 만다라 매드니스, 미친 원을 떠나간다. 한나가 능숙한 코바느질로 만다라를 짜는 시간은 그가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젠더-세계에 개입하는 활동이다. 그 시간 동안 기억, 관계, 흔적, 악몽이 떠오른다. 그가 좋은 신부가 되길 바라며 그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준 할머니 춘자 역시 따라온다. 이 세계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남자가 되고 싶었다던 어린 한나처럼, 한 사람이 여자의 의미망에서 남자의 의미망으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에 대해 영화는 뜨개질로 답한다. 한나의 방에서 만다라는 한 점에서 출발해 중심에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이 만다라는 한나가 촘촘하고 단단하게 짜내는 또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에) 다른 이를 초대한다. 영화가 진행되고 만다라가 점점 커지는 동안 한나의 친구들이 점점 영화 안으로 들어와 한나의 창작활동에 동참한다. 한나에게 신부수업을 강요하던 젠더규범 집행자처럼 느껴지던 춘자 또한 이 세계를 통해서야 자신만의 뜨개질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 온 여자가 된다. 만다라가 완성돼서야 한나는 말한다. “할머니의 뜨개질은 어떤 것이었을까. (…) 난 할머니의 뜨개질을 잘 모르는 것 같애.” 한나는 무언가를 창작하며 이미 알던 것을 모르게 된다. 권력자에게 무지는 권력의 수단이자 결과라지만, 창작자는 굳게 짜인 이 세계의 코를 풀고 또 다시 뜨며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만들며 세계에 개입한다. 젠더규범을 포함해, 한 인간에게 위치를 부여하고 다른 위치로 이동하지 못하게 결박하는 세계에서 어떤 이동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끔 인간은 그 세계 안에서 다른 세계를 창작한다.

수엉(트랜스 연구자,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여성학 전공 대학원생, 이-무-기 멤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입니다.

 

*2023년 28회 인천인권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일부 수정하여 재수록하였습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https://www.instagram.com/scarlet_chacha/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주홀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차근 없애나가는 당사자 중심 모임, 성노동자 인권 운동 단체다. 모든 성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 용주골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와 함께 파주시의 강압적인 성매매 집결지 폐쇄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726회 서울인권영화제존재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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