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보수의 성지’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서로 알던 사람 몇 명이 눈가면을 쓰고 시작한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너도 나도 퀴어라는 말 자체가 무엇인지 몰랐던 처음. 나와 같은 퀴어들이 축제 안에서 함께 정체성을 드러내던 순간. 혐오를 마주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로 맞서던 거리. 자긍심 넘치는 퀴어의 삶을 함께 선택할 수 있게 한 소중한 순간들은 ‘보수의 성지’ 대구를 넘어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
프로그램 노트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옆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축제를 열 수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던 처음을 더듬는 사람들. “결사항쟁”이라는 무서운 구호가 써 있는 봉고차를 빌려 첫 행진을 했던 사람들은 눈가면을 써도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알던 우리’끼리’였다. 그때의 나와 당신들은 퀴어라는 단어조차 몰랐다. 한 해 한 해 지나며 퀴어인 서로를 확인하였고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퀴어들이 되어 거리에 나왔고 당신들은 우리를 막아섰다. 드디어 우리는 세상에 문제를 던진 것이다.
거리에 없는 줄 알았던 ‘우리’는 이미 거리에서 만나고 있었다. 여성, 장애인, 노동자와 다른 지역의 퀴어들은 이제 막 거리에 나온 우리를 환대하며 서로의 행진에 초대했다. 행렬 밖에서 손가락질하던 사람도 이젠 우리의 행진에 함께하게 됐다. 우리의 행진은 국가기관을 향하기도, 어리석은 혐오세력을 향하기도 했다.
거리를 가득 메우는 연대는 무엇보다 소중했고 그렇게 100명도 채 되지 않던 우리는 서로 다른 ‘나’를 연결하며 1000여 명의 “흩어지고 연결된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연대를 통과하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경험했다. 변화된 삶은 또 다른 ‘우리들’을 만드는 불씨가 된다. 서로 다른 모양의 우리들이 다시 거리를 함께 만든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2013년 가족의 역이민을 다룬 사적 다큐멘터리 <마이 플레이스>를 완성했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북미 최대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캐나다 핫닥스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성주 사드배치 반대투쟁에 참여했던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파란나비효과>를 연출하였고, 전주국제영화제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사회 속의 개인, 개인의 삶 속에 깃든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인권해설
대구에서 16년을 살아온 내가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알게 된 지 벌써 4년째다. 2017년 그때 나는 수도권의 학교에 다니고 있던 와중에 결혼식 참석차, 잠시 대구에 들렀다가 시내에 축제가 한창이라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 순간 그대로 동성로로 발걸음을 향했던 것이 전국의 퀴어문화축제들을 통틀어서 퀴어퍼레이드 행렬에 참여했던 첫 경험이었다.
시간이 흘러 11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던 날, 나는 수도권의 다른 인권활동가와 축제 참가자들과 함께 ‘무지개 버스’를 타고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관광버스 한 대 규모의 참가자들이었지만, 같은 시간에 수많은 청년, 비청년, 소수자, 앨라이들도 대구 동성로로 결집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을 하면서 서울과 지역에서 혐오 세력들의 수차례에 걸친 축제 ‘훼방 놓기’와 지자체, 그리고 공공기관의 찬물 끼얹기, 퀴어문화축제 불허가를 지켜본 결과, 어떻게 ‘보수의 성지’라고 불리는 대구에서 10년 넘게 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처음 참가했던 2017년 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때에도 참가자들의 행렬이 수천 명 규모였었는데 그 많은 사람은 그동안 어디서 나타나 그렇게 모이게 된 것이었을까?
십여 년간 대구퀴어문화축제를 꾸려왔던 사람들의 고민도 나의 궁금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축제를 알리고 사람들을 모을까. 어떻게 이 행사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들까. 그런 사람들의 고민과 그동안의 고충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053>에 녹아있었다.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대구퀴어문화축제는 1회 때부터 ‘연대’의 힘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0년 전, 지금과 변함없이 다른 지역에서 활동가들이 대구로 모여들고, 지역의 다른 인권단체들이 축제 준비과정에 결합하고, 곳곳에 숨어있던 은둔 퀴어들을 가면을 쓰고서라도 동성로에 모이게 했던 힘이, 바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불온한 존재로서 서로 연결되어있다’라는 연대 의식이었다고.
모여있기 때문에 혐오에 맞설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 대구 중구청에 의해 축제가 불허되었을 때 시민권 침해와 차별행정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항의하며 결국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지역 운동에서의 동료애, 그리고 우리가 같은 퀴어 문화를 누리면서 불평등한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프라이드. 그것들이 차례대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지금의 모습으로 견인해 온 힘이고 나는 그것이 축제 초창기부터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던 연대 의식의 제각기 다른 모습이라고 믿는다.
배진교 전 축제 준비위원장님의 말씀처럼, 대구퀴어문화축제 그 자체라고 함 수 있는 연대의 흐름은 흐르는 물과 닮았다. 잠시 멈춰 고여있기도 하고, 장애물에 부딪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에둘러 피해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바위를 부수고 땅을 깎아내는 힘.
축제가 알려지고 나서야 부산스럽게 모여드는 혐오 세력들도, 우리 성소수자 운동과 퀴어문화축제의 연대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지역 단체, 지역 대학모임,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동성로에서 쭉 자리를 지켜온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엄연한 대구의 지역축제로서 아직은 모난 대구 지역사회를 둥글게 다듬고, 지역 퀴어 커뮤니티의 욕구를 가뭄의 단비처럼 채우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을 꾸준히 향상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작년 대구퀴어문화축제 때는 한여름의 열을 식혀 줄 시원한 비가 왔었다. 혐오 세력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축제를 방해하려고 비를 내리는 거라고 외쳤다나 뭐라나. 형형색색의 우산과 우의, 그리고 무지개 깃발 아래에서 행진하면서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길고 강인한 연대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그들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퀴어문화축제가 온라인 공간에서 개최되었지만, 전염병 덕분에라도 우리는 결국 모두 각기 분절된 개체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연결된 존재임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영화 <퀴어053>이 성소수자 개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퀴어 커뮤니티, 그리고 퀴어문화축제와 성소수자 운동의 관계에 던지는 질문 또한 그러하다. 하 수상한 시절인 지금, <퀴어 053>을 통해 우리 안에 숨어있는 연대의 힘을 다시금 일궈내 보자.
박기진(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깃발들고 가는 그 한 사람. 꿈 꾸는 사람이 만든 변화의 물결 잘 보았습니다. 대구 퀴어 축제 꼭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