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폭력 Intimate Battles

작품 줄거리

빨래가 널린 집, 벽을 푸르게 칠한 집,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수많은 집. 그 안에 남성 파트너에 의한 가정폭력 피해생존자 여성들이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그녀들을 따라간다. 그녀들은 파트너의 “공격적인 표현”이 사랑이라 믿었다. 믿음과 달리 몸엔 흉터만 늘었고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살기 위해 파트너를 떠나자, 가해자는 되려 그녀들을 손가락질했다.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찾아와 상해를 입히고, 아이들 앞에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기억을 마주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무너질 듯 휘청거림에도, 이들 곁에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스페인, 인도, 핀란드, 멕시코, 미국. 서로가 살아가는 공간은 멀지만, 이야기는 만나고 연결된다. 삶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다희

프로그램 노트

<친밀한 폭력> 속 그녀들은 앉았다가, 등을 보이며 먼 곳을 응시하기도 하다가, 아마 오래 무겁게 닫혀있었을 입을 뗀다. 그녀들은 모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어딘가 겹친다.
‘친밀한 폭력’이 발생했다. ‘사랑’이라고 했다. 금세 폭력은 ‘없는 일’이 되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공간의 폭력을 증명하는 건 풀이 바위를 뚫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침묵을 뚫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가 증언을 시작하자 그곳의 공기는 바뀌었다. 우리는 친밀한 사람이 가한 폭력의 순간에 그녀와 함께 놓인다. 그녀의 이야기를 오롯이 듣는 것으로 그때에는 미처 닦아주지 못했던 눈물을 수십 번 닦아낸다. 세상의 입막음에 저항해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얼마나 캄캄한 침묵 안에 갇혀있었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위계가 드러난다. 피해생존자들의 말하기는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 저항이다.
그녀들은 폭력의 순간에 영원히 갇혀 있지 않는다. 계속해서 살아가고 나아가며, 자신의 삶을 가꾼다. 작은 이야기들로 시작했지만 그 이야기들은 연결된다. 이야기는 듣는 이들을 통해 침묵을 한 뼘씩 밝혀나간다. 그렇게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는 저항이 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루시아 가하 Lucía Gajá

루시아 가하

멕시코 시티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쿠바의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에서 공부했다. 내러티브에 대한 수업과정을 수료했으며,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단편 <Soy>로 실버아리엘 상을 탔다. 멕시코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심사위원 직을 맡았다. 감독은 멕시코영화예술아카데미(Mexican Film and Arts Academy)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구성원 중 하나다.

인권해설

여성폭력이 존재함은 상식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4대악”이라 칭했고, 인권감수성 있는 시민들에겐 이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다큐는 다시 묻는다. 여성폭력에 대해 알고 있냐고. 어찌 보면 그 ‘존재’를 알게 된 시점과, 자세하게 그 작동구조 속 이야기를 직면하게 되는 시점 사이에는 큰 지연이 있을지 모른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게도, 이 다큐는 어느 평범한 가정집의 창문과 대문, 바깥 벽을 주욱 따라간다. 다양한 나라의, 흔한 ‘가정’의 외벽이다. 거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다큐의 주인공들은 다양한 국가의 아내폭력 생존자들이다. 비슷하게 만나고 사귀고, 동거하고, 결혼한다. 그런데 왜 남편은 도청을 시작하고, 알코올을 담은 병에 불을 붙여 건네며, 강간하고 때리고, 길에서 총을 쏘는가? 그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생존하려는 투쟁을 시작하는 스페인, 인도, 미국, 핀란드의 그녀들.

전 세계 1/3의 여성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다. 한국에서는 두 집 중 한 집에 가정폭력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기소와 재판 과정도 없이 가정이라는 감옥에 수감되고, 생사를 오가는 고문을 겪는다. 한국은 가정폭력방지법을 ‘가정보호’를 목적으로 운용하며, 이혼할 때 섣부른 선택이 될까 봐 숙려기간을 의무화하고, 가임기여성지도를 그려가며 결혼과 임신이 무조건 늘어나야 한다고 한다. 여성폭력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연구, 대책도 없이 그렇게 결혼하라고, 또 결혼을 유지하라고 강요한 이후를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영화는 그녀들의 ‘반전’의 시점을 뚜렷하게 담아낸다. 죽으려고 가스밸브를 열어놓고 잠들려 하다가 그 집을 빠져나온 날, 알몸으로 무조건 내달린 날, 스포츠센터 가는 가방에 옷 두 벌만 넣고 나온 날. 거기엔 조력자가 있었다. ‘내 집’이라는 생각을 ‘그건 집이 아냐’로, ‘이게 어쩔 수 없는 내 삶’ 이라는 생각을 ‘그건 삶이 아냐’로 바꾸어 말하기, 그리고 그 말들을 듣기. 수잔 브라이슨은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에서 이런 사회적 타인과 자아의 관계를 말한다. “자아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자아는 타인의 폭력에 의해서 파괴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세워질 수도 있다.” 그녀들은 지지자, 상담자, 쉼터운동가, 다른 생존자와 합심하여 가정은 안온하다는 지식과 다른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폭력 아빠의 아이방문권이 허락받는 여전한 사회 속에서 다른 ‘삶’을 꾸려간다.

그녀들의 지금 삶을 멋지게 담아내는 후반부. 직장을 다니고, 어렸을 적 꿈을 찾아가고, 끽연을 하고, 연애를 한다. 또 이제는 ‘어디에나’ 간다. 일하다가 머리를 비우러 가는 공원의 바위턱, 수영장에서 유유한 글라이딩,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고속철도. 열차창에 빗방울은 스쳐가고, 수영장 바닥엔 뿌연 물속 기억이 여전하지만. 그래도 “웅덩이를 벗어나니 세상이 내 것이다.”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1122회 서울인권영화제혐오에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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