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No Lullaby

작품 줄거리

“아무 일도 없었어.” 살다보면 이 한마디 말로 모든 것들이 괜찮아지길 바라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부터 어떤 문제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밤새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주인공 티나는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부정하며 살았다. 그녀는 9살, 10살 이후의 기억은 마치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녀가 과거의 기억을 애써 부정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티나의 아버지는 그녀가 13살 때, 처음 그녀를 성추행했고 점차 성폭력은 당연해져 갔다. 그녀가 불안함에 울면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며 그녀를 달랬고, 어머니조차 “크면 이 모든 기억은 사라질 거야.”라는 말로 모든 것을 다 묻어버렸다. 티나 역시 ‘가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므로, 그 시절을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입 밖에 내는 순간, 가족은 파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티나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만 입 다물면 우리 가족은 괜찮아.’

하지만 가족 모두가 못 본 걸로 했던 아버지의 손은 그녀의 딸, 플로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저편에 묻어두고 남편을 만나 플로를 낳은 티나는 의심 없이 친정에 아이를 자주 맡겼고, 할아버지의 성추행은 플로가 5살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직접 자신을 깨우러 방에 오게 하고 단둘이 사진을 현상하는 밀실에 문을 잠그고 있도록 했다. 티나가 불길한 예감에 달려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아버지가 남긴 말은 오직, “아무 일도 없었다.” 플로는 할아버지의 협박 속에서 자신의 엄마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결국 플로는 집을 나간다. 이후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했지만 플로는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를 고소했다. 법원의 판결은 부당했고, 그들이 두려워하던 신고의 여파는 “일어나지 않았다.” 티나는 그동안 무력했던 자신과 먼저 떠나간 딸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움에 편히 잠들지 못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혜성

감독

헬렌 시몬

헬렌 시몬

뉴욕 출신의 헬렌 시몬은 독일의 보훔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어와 철학을 공부하였고, 이후에 뮌헨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였다. 2008년부터 뮌헨 텔레비전 및 영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잠들지 못하는>은 감독의 대학 졸업 작품이다.

인권해설

1992년 의붓아버지로부터 12여 년 동안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고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친족성폭력’을 명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 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람인 경우는 81%이고, 이 중 친족을 포함한 친인척으로부터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13.9%에 달한다. 그리고 같은 해 대검찰청이 발표한 ‘친족성폭력 사범 접수 및 처리 현황’에 의하면 2003년 184건이었던 친족성폭력 피해 신고 건수는 2013년 502건으로 10년 동안 2.6배 증가했다. 피해를 경험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암수(暗數)율이 높은 성폭력 피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실제 친족성폭력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친족성폭력은 개인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족’이 폭력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해자는 끊임없이 ‘우리둘만의 비밀이다’, ‘너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 사실을 다른 가족이 알면 무척 힘들어할 것이다’라며 피해자 개인에게 피해의 책임을 감당하도록 강요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메시지는 피해자에게 가족이 해체되거나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다른 비가해 가족이 겪게 될 심리적 충격을 확신하게 만들고, 피해 사실은 더욱 은폐된다. 성폭력을 낯선 사람으로부터 겪는 ‘특별한 경험’으로 호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더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친족성폭력 피해는 친족성폭력의 실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성폭력피해 생존자의 ‘말하기’는 우리 사회가 듣지 않으려 하는 성폭력 피해를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으면서 우리 눈에 보이도록 한다. 동시에 성폭력 피해 경험이 씻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고 그렇기에 피해자는 위축되어 있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고, 피해를 재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survivor)로 재위치한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경험을 묻어두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꺼내어 들여다보는 과정은 ‘기억’함으로써 성폭력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거대한 침묵’에 맞서도록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것은 그래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란 (한국성폭력상담소)

1120회 서울인권영화제기억,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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