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존재 Being

작품 줄거리

김도현에게는 오랫동안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여자’일 거라 생각했다. 김도현에게 자신의 존재는 계속 의문이었다. 자신을 설명하는 말을 찾기 위한 오랜 헤맴 끝에 그는 FTM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만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완전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웠다. 스스로를 숨기고 여성성을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것은 편하기는커녕 고통스러웠다.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고자 한다. “자신이 먼저 밀어낸 세상”이었지만 이제 다시 다가가려 한다.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숨기고 싶지 않아서, 내가 당신 옆에 존재함을 당신이 알았으면 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닌 당신이 불편해하고, 생각해보고, 변했으면 해서. 나는 ‘없는 존재’가 아니기에.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유영

프로그램 노트

‘예전의 나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예전의 나도 나였음을 받아들였다.’나 김도현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은 후에 가능한 일이었다. FTM 트랜스젠더. 나의 존재를 규명하는 단어를 찾고 나서야 마침내 김도현은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분명 나를 사랑하고, 믿고, 지원해줄 거라 믿었던 이들이 나의 존재를 못 본 체한다.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내 존재를 더욱 드러내고, 알려야 했다. 알리고 싶다. 더 이상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싫다.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존재를 명백한 단어로 정의했고 여기에 서서 호흡하지만, 아직도 나의 존재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을 향해 더 당당히 외친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의하는 나는 무엇이냐고. 내가 나를 정의했으니, 여기 나를 보라고.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박시우 Park Si-woo

박시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고 있다. 여성주의와 퀴어인권운동에 관심이 많다.

인권해설

“직장 동료, 친한 친구, 지인 중에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혹은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있습니까?”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4%만이 이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말 한국에 성소수자가 그렇게 적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아니다. 성소수자는 교실에, 사무실에, 동네와 거리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보지 못했다는 답변은 자기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길 바라는 믿음에 가깝다. 성별은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뉘어 있다는 믿음, 여성과 남성이 만나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믿음, 모두가 ‘평범한’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살아야 한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들이 가득한 세계에 성소수자는 없다.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는 답변이 무색하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넘쳐난다.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의 80%가 교사로부터 혐오 표현을 들은 적이 있고, 92%가 학우로부터 혐오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성적지향이나 성별표현으로 인해 괴롭힘을 겪은 성소수자는 반절이 넘는다. 커밍아웃 이후 가족에게 냉대 받고 폭력을 당할 수 있으며 친구와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 트랜스젠더들은 충분히 여자답지 못해서, 혹은 남자답지 못해서 취직을 못 하거나 직장에서 잘린다. 군대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침해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대선을 거치며 대통령 후보들은 서슴없이 차별 발언을 내뱉었다. 사회 전체가 성소수자를 부정하고 삭제하는 데에 동참하고 있다.

도현은 이 세계에서 FTM 트랜스젠더인 자신을 드러내고 내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한 외침을 듣고도 모른 체하거나 그를 떠나간 사람도 있다. 반면 도현의 곁에 남아 그와 더 가까워진 사람도 있을 테다. 어떤 관계가 됐든 도현의 목소리를 들은 모든 이는 자신이 가지던 믿음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말 그들의 믿음처럼 이 세상은 단일한 ‘정상성’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의 말하기는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 균열을 낸다. 도현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며 누구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도현의 커밍아웃은 자기답게 살기 위한 본능이자 투쟁이다. 그가 이 투쟁을 계속해나갔으면 좋겠다. 그 곁엔 수많은 성소수자 존재가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있는 존재”였다.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없던 게 아니라 당신들이 우리를 보지 않았던 것임을, 또한 이 땅은 당신들만의 것이 아님을.

 

보통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922회 서울인권영화제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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