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춤추고 웃고 떠들고 사랑하길 좋아하는 엘라는 고관절이 없는 채로, 아주 짧은 대퇴골을 가지고 태어났다. 엘라는 문득 궁금하다. 왜 나와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나와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정말 있긴 있는 걸까? “이런 몸”을 찾는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고민과 질문이 터져나오는 중에 엘라는 임신과 출산을 겪는다. 잠시 주춤하던 프로젝트.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떤 몸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프로그램 노트
엘라는 춤춘다. 친구를 만난다. 운전한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연애를 한다. 자신과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덜 외롭기 위해 자신과 같은 몸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열심히 촬영하던 중 임신한 엘라. 낳기로 결정하고 출산한다. 아기에게 ‘리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잠깐! 나의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어! 엘라는 다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엘라의 삶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그냥 엘라의 삶이다. 하지만 엘라의 몸이 세상과 만날 때 엘라의 몸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된다. 누구는 수술을 권하고 누구는 엘라의 ‘그냥 사랑스러운 파트너’를 ‘히어로’라고 부른다.
인터뷰를 하며 관계 맺은 비슷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공감한다. 하지만 비슷한 몸을 가졌을 뿐,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다. 찰리의 엄마는 수술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한다. 큰 수술로 찰리의 어린 시절을 조금도 잃고 싶지 않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수술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면 수술을 통해서 교정해야 하는 걸까? 엘라는 ‘찰리는 지금 완벽하다고 말한다. 사회는 어떻게 하면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지, 혹은 비슷해 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 고민은 누구를 위한 고민인 걸까?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몸’은 다름을 이해하지 않는 비장애중심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엘라의 여정은 ‘이런 몸을 찾습니다’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세상에 ‘이런 몸’, ‘나와 완전히 같은 몸’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고 모든 몸이 고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모든 몸’ 의 몫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요다
감독
엘라 글렌다이닝은 장애인의 진짜 이야기를 전하려는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 모두에서 활동하며, Film4, BFI, Arts Council England, Screen South 및 National Paralympic Heritage Trust의 지원을 받아 단편 영화를 각본 및 연출했다. <이런 몸을 찾습니다>는 엘라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자신과 같은 희귀한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다룬다. 엘라는 현재 장애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역사 드라마 장편 영화를 기획 중이다. 현재 단편 코미디 드라마 을 연출 및 공동 각본을 하고 주연으로 출연했다. 엘라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BFI의 장애인 영화 자문 그룹의 회원이었다. 2020년 ‘Screen International’에서 내일의 스타로 선정되었다.
인권해설
우리에겐 이상한 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와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고 출연한 장애 여성 엘라가 자신과 같은 몸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영화의 주인공 엘라는 이제껏 비슷한 몸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장애에 대한 적절한 통계조차 찾기 어려운 현실에 분노하며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몸을 찾아 나서고 기록한다.
정상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이상한 몸과 정체성으로 규정된 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알고 삶을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해 왔다. 몸은 최대한 숨기거나 정상적으로 치료하고 재활해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억압받는다.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며 살기 어려우니 같은 얼굴과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궤적과 연결되기도 어려워진다. 낙인의 그림자는 불평등한 위치에 더 크게 짙어져 그들의 얼굴을 가린다. 그러나 배제와 차별로 인해 홀로 동떨어져 고립된 순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에 서로의 경험을 공명하며 함께 싸워줄 얼굴들을 찾게 된다. 나의 몸과 얼굴로, 나답게 살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동료의 삶은 더욱 간절해진다. 비슷한 몸들과 연결감과 어긋남을 동시에 느끼며, 상호적인 갈등과 역동을 타고 현재 나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로 갱신된다.
국가는 장애인 거주시설을 통해 빠르고 효율적인 몸, 표준적인 삶에 들어갈 수 있는 대상을 구분 지어왔다. 2019년 7월부터 폐지된 장애등급제는 의학적인 기준에 따라 장애인의 몸을 등급으로 나누어 복지서비스의 수혜자를 선별하는 차별적인 제도다. 등급제가 폐지됐다고 하지만 장애 정도를 개편하는 수준에 그치며 권리화되지 못한 제도는 여전히 장애를 시혜의 대상으로 묶어둔다. 보호주의로 시설을 정당화해 온 국가의 폭력에 맞서며 시설 밖으로 몸을 이동시킨 장애인들은 노동하고 관계 맺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렇게 2020년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최중증 장애인의 권익옹호, 문화예술, 인권교육 등의 노동을 국가가 인정하도록 요구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올해 1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장애인노동자 506명을 해고하여 해고 철회 및 원직복직투쟁중이다. 또한 서울시는 탈시설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도 모자라 지난 2월 장애인 자립지원절차 개선안을 발표했다. 탈시설을 할 수 있는 자립 역량 조사 이후에도 5년간 자립역량을 평가하며 퇴소 후 부적응 시 시설 재입소를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절차에서 퇴소를 결정하는 의료인, 전문가의 개입을 더욱 강화하면서 정책의 기반이 되는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 등 탈시설 권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제도와 정책이 이상한 몸으로 사회 속에서 노동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온, 살아갈 삶의 공간들을 황폐화시키며 시설사회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장애 여성 운동은 장애인권 운동과 연대하면서도 성과 재생산 문제야말로 몸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적 문제임을 제기해 왔다. 따라서 생산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생산과 재생산을 구분하고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여성에게 전가하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다뤄온 역사를 문제 삼는다. 따라서 몸과 섹슈얼리티가 시설화되는 경험에 주목하며 성교육, 반성폭력, 성평등, 돌봄 운동 현장에서 싸운다. 영화에서 엘라는 자신의 성적 욕망과 실천에서도 적극적이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을 따라가는 것은 아닐지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질문함과 동시에 결정권이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출산 방식을 꼼꼼히 따지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나의 퀴어성을 잃은 건 아니다. 어쩌다 남자와 있을 뿐이다”라고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말한다. 작년 9월, 여성가족부가 10년간 진행한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참여하는 ‘성인권교육’ 사업예산이 전액 삭감 계획을 규탄하며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 발달 장애 여성 활동가 조화영의 “자위 배워서 자위할래”란 발언이 겹쳐진다. 어떤 욕망을 원하는지 말하고, 필요한 사회적 자원과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하고, 성적 폭력에 반대하며 몸의 즐거움을 찾는 여정, 내 몸과 섹슈얼리티를 내가 정의할 수 있는 힘, 모두 성적 권리다. 그러나 최근 공공도서관의 성평등 도서를 유해 도서로 규정하고 성평등 도서가 열람 거부 및 폐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장애, 인종,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가족구성권 등 다양한 몸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삭제하며 성평등을 가로막으려 한다. 차별과 혐오를 앞세워 평등을 지연시키는 국가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투쟁은 이상한 몸들의 존엄을 지키는 투쟁이자 모두의 존엄과 연결된다. 엘라가 자신과 비슷한 몸을 찾아 나섰듯 공공도서관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몸의 경험들을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다리에는 뼈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동맥과 신경이 지나간다는 장면이 있다. 다리는 걷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일러주는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의 말처럼 “다르다는 건 힘들”지만 “우리는 다 다르게 걷고” “정상이란 건 통계적 개념”일 뿐이다. 그러니 몸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 차별을 고발하는 동시에 다른 삶의 전략과 관계가 누적된 상호적인 돌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몸과 정체성을 병리화시키며 손상으로만 몸의 상태를 설명할 때 어떻게 상호적으로 돌봄을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한지 묻는 관계는 사라질 수 있다. 모두가 다 걷는다고, 똑같이 걷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도울 방법 찾기를 게을리하기 쉽다. “스위치를 낮게 달면 해결될거라는 사회가 끔찍하다”고 엘라는 말하는데, 공감의 장애 여성 활동가 진은선이 말했던 “완벽하게 세팅된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관계를 맺고 싶어요”는 말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갈등이 있지만 관계의 넘나듦이 있는 세계가 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갈등이 가능하려면 관계 맺는 속에서 서로의 몸을 알아가야 한다. 서로를 살피고 만나고 지지하는 것은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기반 속에서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조례 폐지안을 통과시키며 서울시가 사회서비스원의 예산을 전액 삭감 이후 해산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공공 돌봄의 공백을 저임금, 단시간의 형태로 메우고, 돌봄의 책임을 또다시 가족에게 떠넘기며 돌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를 후퇴시키고 있다.
우리는 서로 잘 의존하고 돌보기 위하여, 이상한 몸들이 비슷하거나 다르게 살아온 방법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때론 처음 만난 순간 서로의 낯선 모습에 흠칫 당황할지라도, 나와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엘라의 말처럼 “휠체어는 우리의 자유”이기에 이상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들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권리를 찾아내고 재구성하면서, 더 많은 자유를 이야기하는 연대를 계속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장애인이 없는 세상은 더 별로”일 것이기에.
이진희(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1998년에 창립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장애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며,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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