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쥔 땅 Land Grabbing

작품 줄거리

유럽에 설탕을 공급하기 위해, 거대한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땅을 빼앗기고 원주민과 아이들에 대한 노동착취까지 행해진다. 이렇듯 파괴와 종속의 절차를 밟고 있는 캄보디아. 외국인 자본의 급격한 유입과 민영화로 인해 위협받는 루마니아의 농촌. 식량부족의 현실 속에서도 품질 좋은 식량은 생산되고, 부가 축적된 계층과 나라들을 위한 모든 국민의 노예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에라리온.

땅은 어떤 식으로 쓰이는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땅은 어떻게 소진되어 가는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포즈를 취해도, 여전히 그 안에서는 왜 사람다울 수 없는 견고한 벽만 존재할 뿐일까. 삶의 권리를 빼앗는 그 무엇들과 겹겹이 쌓여있는 욕망은 무엇이며, 왜 타인들의 삶은 과소평가 되며 은폐될까.

자본에 의해 빼앗긴 땅에서, 생산품은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곳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변해 가는지, 그곳이 착취 구조에 어떻게 편입되는지, 그리고 그 땅을 거대 자본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권리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

대량생산의 생산 도구로 전락한, 더 이상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땅과 ‘사람다움’을 조금도 누릴 수 없는 삶을 되돌리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적인 상황이 왜 비참한지, 침울함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왜 비판받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고 행동하는. 그들은 결코 그 끈을 놓지 않는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횸

감독

쿠르트 랑바인

쿠르트 랑바인

1953년 출생으로 빈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위를 취득했다. 1979~1989년, 오스트리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기자로 일했다. 1989~1992년, 시사지 <Profil>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1992년부터는 <Langbein & Partner Media>의 CEO이자 다큐멘터리와 방송 제작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픽션 저서들을 썼고, 2011년에 티비 다큐멘터리 <The Sense of Endowing>으로 레오폴드웅가르상을 받았다.

인권해설

<Good is not Good>

10년 뒤면 초콜릿을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카카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죽는다. 나이가 들어 죽는다. 카카오 나무도 그렇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카카오 농사를 짓지 않고, 나무를 새로 심지도 않는다. 카카오는 더 이상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카카오의 60% 이상은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단 두 나라의 소농들이 생산하는데, 이들의 평균소득은 하루 1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카카오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왜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아마 그 이유의 열쇠는 카길과 베리칼리보와 같은 초국적기업들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카카오빈 거래량 400만 톤 중 80%를 단 8개 회사가 거래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작년에 5개 회사로 줄어들었다.

카카오와 같은 주요 교역 농산물들은 식민지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왜 카카오의 원산지인 남미보다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카카오가 재배되고, 커피의 원산지 아프리카보다 남미와 베트남에서 커피를 더 많이 생산하는지. 그 경로를 살펴보면 먹을거리를 둘러싼 피와 땀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어떻게 더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도 볼 수 있다.

교역 작물인 향신료, 카카오, 커피는 북반구에서 생산되지 않아서 남반구로 ‘아웃소싱’되어 재배된다. 축산이나 원예처럼 북반구에서 생산 가능한 것들도, 이제 열대지역의 온실에서 대규모로 아웃소싱 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농민들은 자기 땅을 잃고 북반구 소비자들을 위한 토마토를 생산하는 농업 노동자가 되었다. 소농들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생산하지 못하고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들 역시, 공급사슬의 끝에서는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 번째로 석유를 대체하는 바이오 에너지로 각광받는 팜유가 있다. 팜유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은 1초에 축구장 2개 크기만큼 불태워진다. 이렇게 그곳의 생명체들이 갈 곳을 잃어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두 번째로는 지속가능성 인증제도다. 여기서 인증은 단지 최저기준일 뿐으로, 초국적 기업들과 대규모 농장에 보다 유리하게 작용된다. 소비자들은 윤리적으로 올바르거나 좀 더 좋은 것을 소비하려 하기 때문에 생산자보다는 소비자를 위한 기준이 우선시된다. 결국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이 인증제도가 운영되는 것이다.

물론 공정무역은 소농을 위한 여러 가지 기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지속가능성 인증과는 차별성이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생산자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정도에 이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1헥타르 남짓한 농사를 짓는 소농들은 인증 시스템의 근처에도 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인증 자체보다는 실제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나 마크에 현혹되지 않고, 포장의 이면을 바라보는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착취의 사슬 끝에서 의도치 않게 ‘피 묻은 초콜릿’을 먹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암울하다 하여 이도저도 똑같다며 선택을 포기한다면, 우리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이들은 무너진다. 거대한 푸드시스템이 세계의 농부들을 무너뜨리고 있을 때 우리의 식탁은 과연 안전하다 할 수 있을까.

 

이하연 (전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사무국장/현재는 전북 순창에 귀농하여 텃밭을 가꾸고 있다.)

1121회 서울인권영화제삶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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