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시장 Oryu Market

작품 줄거리

이른 아침. 오류시장의 어두운 골목을 이곳에서 40년 넘게 떡을 만들고 팔아온 이가 걸어간다.

56년의 역사를 지닌 오류시장은 지하 5층, 지상 21층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정비’될 예정이다. 곳곳이 비어있고, 철거라는 빨간 글씨가 여기저기 쓰여 있는 시장엔 여전히 사람들이 있다. 매일 아침 가게 셔터를 열고, 따뜻한 떡을 지어 내놓는 사람. 떡을 사러 오는 사람. 혹여 어두울까 거울을 여럿 달고, 쓰레기를 쓸고 청소를 하는 사람. 라디오를 통해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오류시장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떡집을 하던 영동과 효숙은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다. 효숙은 “생전처음 난생처음” 마이크를 잡고 서명해 달라 외친다. 구청과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나와는 다른듯 비슷한 이야기를 외치는 또다른 사람을 만난다.

2024년 현재 오류시장에는 16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프로그램 노트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또 도시 공간의 삭제와 생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류시장>은 당연한 듯 반복되는 일방적 개발이 지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외치고 일상을 이어나가는 이들을 담는다.

50여 년 전부터 시장으로 불리었던 땅에 ‘오류시장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상복합아파트가 세워질 예정이다. 오류시장이 사라진다는 건 그저 물리적 공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에 쌓인 시간, 오가는 사람들, 서로 인사하던 이름들, 물건을 사고 팔며 안부를 묻는 순간들, 서로 나눠 먹던 밥과 떡 냄새가 사라진다는 거다. 거기 머물던 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바뀌는 것이며, 저 높디 높아진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다.

공간에 투자한 사람들은 오류시장을 ‘정비’하기 위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내쫓고 가게들을 철거하고 순대를 팔던 3평 땅을 9명이 쪼개고, 시장을 노후화시킨다. 돈으로, 혹은 돈을 위해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을 뺏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누가 이 땅에 돈을 매기는가.

이 공간에서 40년 동안 떡을 만들고 팔며 뿌리를 내린 영동과 효숙은 개발이 당연한 수순이라 말하는 사회에 맞서 오류시장을 지킨다. 그리고 이들은 난생 처음 목소리를 내고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또다른 목소리와 연결되고, 그 싸움은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는 이와 마주하게 한다. 지난한 싸움이 흐를수록 효숙과 영동의 외침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진다. 오류시장에서 아직 사람이 살아간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감독

최종호

대학 시절 방송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학교의 일방적 통보로 퇴실 당하는 동아리들을 기록한 다큐 <자리>(2015)를 연출하며, 이를 계기로 사람과 공 간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2016년부터 서울 구로에서 활동하며 오류시장을 기록하고 있다.

인권해설

“구로구 오류시장, 5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최고 26층 주상복합으로 재정비” 올해 8월 경향신문 기사 제목이다. 하지만 기사에는 오류시장 사장님들의 투쟁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으며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경향신문뿐 아니라 다른 신문들도 여기가 어떤 시장이었고,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언급하는 내용은 없다. 그렇게 우리 도시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쫓겨나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기록하는 도시 다큐는 예술작품이자, 중요한 도시 역사 사료라고 생각한다.

<오류시장> 다큐멘터리는 오류시장의 재개발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이다. 도시 공간을 오로지 부동산 가치로 보는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이 자기 삶의 공간을 지키려는 이야기이다. 도시 개발 투쟁 이야기가 다 비슷한 것이 아니냐고 일반화할 수 있겠지만 떡집 사장님 부부가 시장을 아끼는 모습은 마음을 울린다.

영화를 보고 첫 장면부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리슨투더시티가 2015년 을지로에 이사 온 뒤 2018년부터 철공소가 가장 많은 동네인 입정동에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3-1-4, 5구역에서만 2018년 4월과 12월 사이 7개월 만에 440개의 점포가 퇴거당했다. 60~70대 된 아저씨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짐을 싸고 30년 넘은 일터에서 쫓겨났다. 영화에서는 우리가 당했던 일들이 그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시행사 한호건설은 법적으로 퇴거해야 하는 시기인 관리처분인가 이전에 상인들에게 각각 2억에서 8억 사이의 손해배상청구를 하면서 상인들을 쫓아냈다. 평생 남 앞에서 울 일이 없었을 그들은 추운 길바닥에서 가게 문을 닫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유명한 을지로 3가의 을지면옥은 100평 넘는 토지의 토지주이지만 시행사 한호건설에 의해 강제 수용당하고, 결국 강제집행까지 당했다. 그 후 리슨투더시티와 여러 연구자와 함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를 조직해 지역 상인들과 함께 청계천을지로를 지키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오류시장>에는 청계천 사장님들과 똑같은 평생 일만 했을 상인들이 나온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손과 눈에서 짐작할 수 있다. 50년 된 시장에서 50년 넘게 장사하신 여성, 자기가 삶을 일궈낸 터전인 오류시장을 지키려는 떡집 사장님 부부, 오류시장을 기억하고 아끼는 구로FM 사람들은 을지OB베어를 지키려는 우리들과, 청계천 사람들을 지키려는 우리들과 거울과 같이 닮았다. 이들의 존재와 싸움이 도시의 역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역사일까? 특히 떡집 사장님의 수첩은 너무나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재개발 절차는 비민주적이다. 세입자만 재개발 절차에서 소외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사의 뜻에 거스르는 토지주들에게는 정보를 주지 않는다. 도시정비법상 75%만 동의한다면 나머지 25%는 공시지가로 수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란 점은 시장개발의 경우 겨우 60%의 동의만 해도 강제 수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지분 쪼개기를 계속하면서 집주인이 늘어나는 과정도 영화에 잘 담겼는데 을지로의 경우에도 1평 남짓한 땅의 주인이 6~9명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행사들이 수익성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분쪼개기 작업을 들어가 편법으로 땅 주인을 늘린다. 하지만 법원에서 세입자들인 재개발에 반대하는 지주들이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나 공유하고 싶은 기쁜 소식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경우 2018년 말부터 해온 투쟁의 결실로 수표동 공구상가의 경우 200호의 임대상가를 짓고 있으며, 산림동에는 2023년 6월 58호의 지식산업센터를 건립해 쫓겨나는 기술자들을 재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은 험난했다. 공무원들을 설득하고, 사장님들을 설득하고, 시민들에게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재개발 시 앞으로 짓기로 되어있던 메이커스파크나, 지식산업센터도 백지화되면서 우리는 또 밤낮없이 싸우고 있다. 현재 을지OB오비베어 공대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리슨투더시티에서는 상가 재개발 시에도 반드시 세입자들을 다시 수용하는 방향으로 도시정비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오류시장이 결국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시장 건물이 물리적으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오류시장이 어떤 식으로든 기억되게끔 오류시장 박물관이 새 건물에 건립되었으면 좋겠고 이 영화도 주기적으로 상영했으면 좋겠다. 사장님들이 새로 지은 건물에 분양권을 받을 수 있고 세입자로 들어갈 시에 주변시세 80% 이하의 임대료로 임차를 할 수 있게 여러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상상한 만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류시장을 지키고 사랑해 온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당신의 노력과 눈물 때문에 그나마 우리 도시의 공공성이 지켜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주신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여러 장소에서 함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

 

*2023년 28회 인천인권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재수록하였습니다.

 

리슨투더시티 

인스타 listentothecity

리슨투더시티는 2009년 시작되었으며, 미술, 디자인, 건축, 도시계획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콜렉티브이다. 리슨투더시티의 활동 자체의 시작점은 한국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적 사회적 무책임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의문점을 가지고 시작했다. 현재 내성천의 친구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을지OB베어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폭력에 대한 침묵은 강력한 동조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함께 즐겁게 연대했으면 좋겠다.

1926회 서울인권영화제삶의 공간

리뷰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도 좋습니다.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