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간사이레미콘 사건’과 우리들 Start here

작품 줄거리

마쓰오 세이코는 여성 레미콘 운전기사이자 전일본건설운수노동조합(이하 연대노조)의 조합원이다. 세이코가 속한 간사이 지구 레미콘 지부는 1965년에 노조를 결성한 뒤 사측과 국가로부터 오랜기간 탄압받는다. 간사이 레미콘 지부는 노조 와해 위기까지 겪지만 꾸준한 투쟁은 이어진다.

프로그램 노트

쓰오 세이코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마쓰오 세이코는 이혼 후 세 아이를 키우기위해 일을 찾던 중 지인의 소개로 레미콘 운전기사 일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건설업 노동 현장은, 몇 없는 여성 노동자에게 특히 열악했다. 세이코는 전일본건설운수노동조합(이하 연대노조)에 가입해 여성 화장실을 만들고 생리 휴가를 쟁취했다. 뿐만 아니라 연대 노조의 동료들과 평등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위해 건설사와 싸우며 투쟁의 힘을 깨닫고 노동자이자 노조의 조합원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이제 세이코는 아이가 아플때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고, 4대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었고, 합리적인 임금을  받게 되었다. 노조는 마쓰오 세이코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자긍심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의 전대미문 노동조합 탄압 사건인 ‘간사이 레미콘 사건’이 터진다. 간사이 레미콘 사건은 노조를 분쇄하기 위해 사측에서 먼저 노사 협정을 파기하고 단체 교섭을 거부하며 시작되었다. 경찰도 사측의 편을 들어주었다. 저항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서슴치 않았고, 벌금을 부과했으며, 조합원을 부당하게 체포, 기소했다. 이에 많은 노조원들이 떠나갔지만 마쓰오 세이코는 떠나지 않았다. 

간사이 레미콘 지부를 보면서 한국의 노조가 겹쳐보인다. 정부, 언론, 사측에 의한 민주노총 때려잡기는 유규한 역사를 가진다. 정부에서는 무리한 기소, 압수수색, 체포를 일삼는다. 언론에서는 노조를 비아냥 거리거나 범죄자처럼 몰고 간다. 사측에서는 노조에 대한 협박과 탈퇴 회유를 서슴치 않는다. 이로인해 노조원들이 고립된다. 그럼에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건 바로 연대의 힘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끝까지 투쟁할 수 있게 혼자두지 않는 것이다.

마쓰오 세이코와 동지들도 탄압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럴수 있었던 이유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투쟁의 파동을 이어나간다.

감독

쓰치야 토카치

1971년 교토 부 마이즈루 시 출생. 1999년부터 영상 제작을 시작했다. 2006년 사무소・영상그룹 로우포지션을 이다 모토하루 飯田基晴, 도키타 다카시 常田高志와 함께 설립하였다.

인권해설

2001년 6월 여의도에 1,500명의 경찰이 투입되었다. 경찰은 도끼, 쇠망치, 쇠파이프, 소화기 등을 동원해 건설운송노조의 농성장을 침탈하여 레미콘 차량을 파손하고 강제진압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말에 민주노총을 찾아 노동조합을 세웠던 레미콘 운송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권의 거센 탄압을 마주해야 했다. 노동조합의 투쟁을 업무방해, 폭행 등으로 몰아 수십 건의 고소고발을 하고, 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지만, 정작 무자비한 폭력을 행한 주범은 그들이었다. 각 현장에서의 격렬한 투쟁의 와중에 건설운송노조를 설립한 최초 13인 중의 한 명이었던 안동근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갔지만, ‘특수고용’으로 전환된 레미콘 노동자들에 대해 ‘노동자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면서 노동조합은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산별노조가 세워지고 건설기계업종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활발해지기까지 수년간 레미콘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한 움직임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건설노조는 산별노조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아우르며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활동을 한다. 또한 건설현장이 자본의 이윤논리가 만연한 공간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벌인다. 이 같은 활동이 결실을 보려면 다단계하도급으로 이루어진 건설업에서 원청 건설사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한 투쟁은 일용직 노동형태가 만연하던 현장을 조직하는 과정과 함께 진행되었다. 스스로 ‘모래알’같다고 말하던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노동조합은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청을 상대로 한 노동조합 활동에 ‘공갈협박’이라는 죄명을 붙였다. 현장의 산업안전법규 위반을 신고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활동이 ‘공갈협박’, ‘금품갈취’이고, ‘업무방해’라는 논리로 많은 활동가들이 구속되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2004년 명동성당에서 71일간의 농성을 전개했고, 2006년 다시 몰아친 탄압에 맞서 88미터 높이의 올림픽대교에 올라 탄압의 부당함을 외쳐야 했다.

노동조합은 끈질기게 일어섰다. 건설노조는 다시 조직력을 키우며, 현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건설산업과 관련한 제도개선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갔다. 그리고 지금, 윤석열 정부하에서 세 번째 대규모 탄압을 겪고 있다. 또다시 ‘공갈협박’, ‘갈취’와 같은 오명을 노동자들에게 씌웠다. 이번에는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일부 업종이 아닌 건설노조 전체에 대한 전방위적인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불안정한 삶과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권을 쟁취하고 안정된 삶을 일구어 온 노동조합은 폭력집단으로 매도되고, 삶을 지켜준 노동조합이 매도되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던 노동자 양회동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그럼에도 아직 어둠은 걷히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 건설노조의 활동이 있었지만, 단기간에 강력하게 몰아친 탄압은 현장의 권리 기준을 대부분 무너트렸다. 조합원은 일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임금은 큰 폭으로 후퇴했고, 노동조합이 밀려난 현장에서는 부실공사가 만연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한다. 

터한 나라는 다르지만 자본의 탄압은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모습을 보인다. 90년대 정규직이었던 레미콘 노동자를 특수고용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일본에서 들여왔다 하고,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벌어진 공안탄압은 간사이 레미콘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노동조합이 사라진 일터는 우리의 삶과 노동을 돌보지 않는다. 2023년 건설노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발주한 현장조차 휴게실, 화장실, 샤워실, 탈의실 등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현장은 상대적으로 약한 처지의 이들에게 더욱 위협적이라서, 여성을, 이주노동자를, 그리고 노동조합의 손이 닿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더 크게 해칠 수밖에 없다. 곧 다시 폭염의 시기가 다가온다. 공공기관이 발주한 현장이 이러한데 민간 사업장은 어떨까. 소규모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의 처지는 또 어떨까. 오래전 집으로 돌아가던 늦은 시간, 일을 마치고 공사 현장 한편에서 수도꼭지 하나에 의지해 발을 씻던 건설노동자의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이들의 삶을 빼앗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는 누구인가. 답은 너무 명백하다.

엄진령(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workright@jinbo.net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불안정 노동 철폐’를 자기 과제로 하는 활동가, 노동자, 법률가, 연구자 등이 모여 2002년 설립되었습니다. 누구나 건강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권리가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권리를 빼앗고 노동과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맞서 싸우며,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3826회 서울인권영화제투쟁의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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