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대신 뜨개질 The Knitting Club

작품 줄거리

그냥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로 시작된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첫 코를 뜨듯 시작했다. 때로는 세월호 광장에서, 밀양에서 그리고 일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하면서. 겉뜨기와 안뜨기로 매듭지어지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로는 겉으로 삐져나오기도 하고, 살에 닿는 그 느낌들이, 몇 가닥의 실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그 과정에서 무언가 오류가 생기면, 털실을 모두 풀어내기도 하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 친구는, 뜨개질로 자신들의 삶을 세상과 잇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냥 그렇게, 세상에 닿아 있는 쪽, 우리의 살에 가까운 쪽을 풀어내어 다시 시작하고 그 결과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직접’ 만든 무언가를 입는다. 실타래 풀 듯 자신의 삶을 세상에 풀고 소통하는 것. 세 친구의 뜨개질은 그렇게 그들의 세상을 덮는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든 옷을 입는 다는 것. 자신이 손수 만든 것을 입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사랑으로 에워싸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대의 힘을 만드는 것. 댓글과 ‘좋아요’만 있는 세상에서 뜨개질은 연결과 꼬임, 매듭을 지어가며 ‘소통과 공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모두’임이 실타래처럼 풀어 들어가는 그 삶들. 좀 엉키면 어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횸

감독

박소현

박소현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2007년 개봉한 일본의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우리학교>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연이어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이후로도 10대들과 여행을 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기도 하며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작업을 경험했다. 2013년에는 그동안 가려졌던 임신중절 당사자의 목소리를 드러낸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을 공동제작했다. 2015 장편다큐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 연출/촬영/편집 2013 장편다큐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공동제작/조감독/구성/편집 2012 장편다큐영화 <대한민국 1%미만> 프로듀서 2008 장편다큐영화 <바람이 불어오는 곳> 조감독 2006 장편다큐영화 <우리학교> 조감독/구성/편집 2004 단편극영화 <네 몸에 꼭 맞는 비닐봉지> 연출/편집 외 다수

인권해설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경주마가 될 수 있으면 남아라. 회사는 가리개를 할 것이고 가리개 밖을 궁금해 하면 함께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이가 사회적 기업의 리더다. 그리고는 회사의 입장을 존중해 달라고 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회사가 사회적 기업으로 어떤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기업의 진출분야는 대부분 사회서비스 부분이다. 애초에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서비스를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태로 외주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서비스는 시장 경쟁에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국가의 지원이나 크라우드 펀딩 같은 ‘착한 소비자’의 지원이 끊길 경우 심각한 재정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2007년 정부는 공익적인 목적의 기업형태를 만들고 일자리 창출을 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기업을 제안했다. 정부 차원에서 인건비와 일정 부분의 운영비를 지원해왔으며, 지원 기간은 3년이다. 지원이 적용되는 기간 회사는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지원이 정지되는 시점에서부터 독립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은 현재 소멸하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익의 목적은 사라지고 기업의 형태만 남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국가의 사회서비스를 외주 받은 기업으로서 사회적 기업은, 정부 지원 기간이 3년인 3년짜리 외주 하청기업에 불과하다. 현재 사회적 기업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계약이 끝난 일반적인 외주 하청 기업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매우 유사하다. 자금줄이 끊겨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고 새로운 시장경쟁에 내몰려 노동자를 해고하며, 노동자를 쥐어 짜내면서 위기를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서비스가 갖는 ‘공익’이라는 이름이 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고 있다는 것뿐이다.

사회적 기업 안에서 노동조합을 꿈꾸는 사람들은 왜 눈치를 봐야 하는가. 이들은 ‘노동조합’이라는 말을 꺼낼 때부터 문제 제기를 받는다. 공익이라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일에 왜 초를 치냐는 시선들이 이들에게 어려움을 준다. 노동조합은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교섭권을 가지고 회사와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다. 사회적 기업이 ‘기업’인 한, 고용주와 노동자의 고용관계가 본질에서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사회적 기업이 어려움에 빠질수록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은 일’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라고 강요하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기업에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자를 핍박하는 기업이야말로 반(反)사회적 기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유아 (문화연대)

1521회 서울인권영화제맞서다: 마주하다 저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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