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공장에서 일하는 린은 더 좋은 기회를 찾아온 한국에서 잦은 야간근무에 시달리지만 동료 연희가 있어 외롭지 않다. 어느날 린은 연희와 주말에 바다에 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공장장은 이주노동자인 린에게 주말 휴가를 내어줄 생각이 없다. “그럼 연희는요?” “한국 사람들은요?”라고 되묻는 린의 시선에서, 한국은 연희에게 기회가 많은 땅이다. 그렇지만 연희는 또다른 꿈을 품고 호주행 워홀을 떠나려고 하는데… 서운한 린은 연희의 마음을 선뜻 이해할 수 없고, 급기야 둘 사이의 감정은 상하고 만다. 그들은 다시 어깨를 기댈 수 있을까?
프로그램 노트
매년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상황은, “이방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코로나19라는 ‘적’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는 ‘우리’에, 한국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포함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우한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곳곳에 붙었고, 이주민들은 초기에 공적 마스크를 살 수조차 없었다.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에는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많은 이주민들이 모국어로 된 보건 및 방역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무엇을 특별히 ‘바꾼’ 것은 아니다. 어느 이주노동자들은 원래부터도 거주지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비닐하우스에 살았고,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강도 높은 노동을 일상적으로 요구받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채로 살아왔다. 코로나19 위기는 그 모든 차별에 또다시 새롭고도 서러운 차별들을 덧대었을 뿐이다.
그러한 와중에 ‘지금’, ‘이곳’을 떠나야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세계 속에서 ‘나’의 장소는 어디일까?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 혹은 서구에 대한 선망은 어떤 식의 응답을 받아왔나? <야간근무>에서 공장장은 한국인 노동자 연희와 이주노동자 린을 나란히 두고 “열심히 하면 연희에게는 관리자 직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옆에서 ‘남의 떡’일 뿐인 기회에 관해 듣고만 있어야 하는 린은 마치 투명인간 같다. 하지만 연희는 린처럼 한국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할 수 없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려 한다.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캐나다로, 프랑스로의 이주를 꿈꾸는 여느 한국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호주에서도, ‘이방인’으로서 연희의 삶은 녹록지 않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감할 수 있다. ‘호주 괴담’을 우려스럽게 전하는 연희 어머니의 표정은 심상찮다.
코로나19를 통해 유럽 각국에서 더욱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아시아인에 대한 적대와 테러를 보라. 어느 사회에나 ‘우리’라는 관념이 존재하고, 바깥의 존재들은 ‘우리의 몫’을 빼앗거나 위협하는 존재로 쉽게 간주되면서 그 입구를 뚫지 못한다. 헌데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매일매일의 상호작용이다. 개별의 삶이 구체적으로 상상되지 못하고 이방인(Stranger)이라는 납작한 이름만이 남을 때, 그들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주민들이 가족과 고향에 대해 품는 그리움, 교육에 대해 갖는 열망, 우정에의 희망, 그 모든 ‘서사’가 뒤로 밀려날 때, 이주민은 그저 투명인간으로 남겨진다.
분명 ‘우리’의 원을 더 넓혀가려는 시도들은 존재한다. 가령 포르투갈 정부는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이주자와 난민에게 일괄적으로 임시 시민권의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모두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방역이라는 목표를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이주자와 난민들에게 ‘지금-여기에 속해있다’는 안전한 느낌에 대한 경험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공동체의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 어쩌면 누적되는 피로와 불안이 ‘치안’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그들은 영리하게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시 당신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 ‘조건부 환대’로, 아직은 옆의 존재에게 완전한 곁을 내준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들은 손을 내밀었고, 그로부터 우정과 연대의 가능성이 피어오르게 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볼까? 아직도 공적 마스크조차 살 수 없는, ‘미등록’된, ‘불법’의 존재들은 그렇게 ‘이기적인 조건부 환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
감독
김정은 KIM Jung-eun
2012 <주말의 집 Home on Weekend>
2013 <은혜의 밤 The Night of Grace>
2015 <우리가 택한 이 별 In This Town>
2017 <야간근무 Night Working>
2018 <막달레나 기도 Magdalena>
인권해설
지난 5월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이 눌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Black Lives Matter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과 전 세계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응은 다양했다. 이번 사건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함께 분노하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사건을 한국과는 아직 거리가 먼 일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에서 온 백인 이주민에게는 다양한 한국 문화에 대한 반응을 묻고 토론하는 컨텐츠가 각종 방송과 유튜브에 넘쳐나는 반면, 여전히 아시아 지역에서 온 이주민은 ‘불법체류자’이거나 ‘불쌍한 사람’으로만 이야기되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이 사건과 얼마나 멀리 있을까.
이주민을 이렇게 우리 안의 철저한 타자로만 대하는 인식 자체가 인종 차별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한국 사회에서는 더 많이 이야기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야간근무>는 한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인 이주노동자 린과 한국인 노동자 연희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이런 생각들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한국에서 호주로, 자신처럼 이주민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연희와, 떠나는 연희에게 린이 건네는 말들이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린과 연희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다.
나영(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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