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시민 사관학교 America's Little Soldiers

작품 줄거리

매년 11월 11일, 뉴욕에서는 ‘국민을 수호하고 국방을 지키는’ 군인을 위한 퍼레이드가 열린다. 그 퍼레이드 행렬에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14~17세의 군인들이 있다. 주니어 ROTC 생도들이다. 미 국방부인 펜타곤에 의해 조직된 JROTC는 청소년들이 ‘국가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 일찍부터 경험하게 한다. 학생들은 총기 사용법, 국가에 대한 충성과 헌신, 시민으로서의 봉사 정신을 배운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는 국가가 무엇을 빌미로, 무엇 때문에 청소년들을 군인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빈곤을 피하고자, 미국 사회에서 진정한 애국자로 인정받고자 군인이 된 학생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소수인종이다. 국가는 왜 애국시민을 길러내려고 하는 걸까? ‘애국시민’은 무엇으로 될 수 있는 걸까?

프로그램 노트

미국의 주니어 ROTC(JROTC) 훈련생의 대부분은 소수인종, 그리고 빈민이다. 시카고 내 JROTC 훈련생의 54%가 라틴계, 37%가 아프리카계이고, 백인은 5%에 불과하다. 또한 JROTC가 많이 운영되는 곳은 쇠퇴한 공업 도시 러스트벨트의 빈민가와 미국 남부이다. 인종적, 경제적 소수자성은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위협한다.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더 ‘미국 시민’다워지고, 법적인 자격을 쌓아야 하는 자는 사회적 소수자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국가가 인정하는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보장받기 위해 이들은 ‘애국’을 해야 한다. 이를 이용해 JROTC는 사회적 소수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에 빽빽이 들어선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대의 어둡고 추악한 실상은 감추어진다. JROTC 모병관은 “이라크는 멋진 곳이야.”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멋지지 않다. 전쟁의 추악한 민낯은 단지 “이라크는 멋진 곳이야.”라는 한 마디로 감추어진다.
JROTC 프로그램은 모두 미 국방부의 예산으로 진행되며, 이 예산은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다. 국가는 ‘애국자 되기’를 시민의 덕목으로 선전하며, 군대라는 애국시민행 급행열차를 통해 더 안전하고 보장받는 ‘진짜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이러한 선전을 믿는 자들을 이용하여 국방부는 군을 유지한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멋진 것으로 미화되는 ‘애국시민’은 단지 국방부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이름이다.
이 미화와 시민다움의 강요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퇴역 군인인 로리 패닝은 청소년 모병을 막기 위한 활동에 헌신하고, 17살 앨리슨은 많은 사람 앞에서 JROTC의 군 미화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다. 19살의 코빈 산체스는 소수인종에게 군대가 시민성을 얻기 위한 역할을 수행함을 폭로한다. 우리는 지금 동원된 많은 사람들의 애국으로 이룬 억지 평화의 ‘적막’ 속에서 살아간다. 이제는 이 적막이 잘못되었다고, 애국의 이면에는 시민성 획득을 위한 사회적 소수자의 몸부림이 있다고 ‘소란’을 피울 때다.

감독

마졸렌 그하프 Marjolaine Grappe

마졸렌 그하프

마졸렌 그하프는 언론인이자 감독이다. 프랑스 TV에서 6년 간 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했다. 중국의 아동 정책에 대한 영화 3부작을 만들었다.

인권해설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 일부터 다음 각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

대한민국 현 병역법에 따르면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근거해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역을 이행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아, 매년 300명에서 500명의 청년은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년 6월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징집대상에서 제외된다. 다시 말해, 이들은 2등 국민이 되면서 병역의무를 상실한다.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고서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영화는 교련과목으로 주니어 ROTC 프로그램을 선택한 또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4세에서 17세 청소년들을 조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 훈련생들에게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고 이와 동시에 자기 계발 역량을 향상할 수 있는 것으로,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미국 국방성 펜타콘과 지방정부, 학교는 서로 연결되어 이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력한다. 주니어 ROTC 프로그램은 애국심이 풍성한 일등 시민이 되고, 군복을 입는 것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입대하는 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길임을 알리는 모습이 마치 대한민국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애국시민’이 되기 위해 ‘일등시민’이 국가에 봉사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전쟁터에 나가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국방부가 교육의 공간을 장악해 청소년들에게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주입하는 미국은, 결국 국가안보 강화를 위해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선택받은 국민을 가려내고 그렇지 못한 국민을 배제한다. 한국은 병역을 거부하는 청년을 감옥에 가두고 전과자로 낙인을 찍으며 사회에서 배제한다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배제당한 사람들에게 군대가 유일한 탈출구임을 피력한다. 소위 ‘정상적이고 남성적인’인 국가안보가 당연시되고 이에 저항하는 개인들과 반군사주의 문화를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주체로 규정한다. 적대감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이런 움직임은 더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한국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군사안보가 강화되고 있으며, 무기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또한, 국가와 결탁해 배를 불리는 군수산업체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그 규모는 점점 더 비대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혐오와 적대감을 먹고 자라는 이런 군사문화는 개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소수자를 색출하고 배제하며 차별하는데 그 기반을 형성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며, 이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병역거부를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한 사회 또는 국가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개별의 존재와 공동체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며, 그 사회가 얼마나 군사화되어 있는지 그 척도를 제시한다. 또한 강력한 국가안보에 기생하며 자본과 결탁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군수산업체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니어 ROTC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국가와 국가안보, 군수산업체, 군사화 사이에서 학교는 어떤 배움의 현장이며 과연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늬(전쟁없는세상)

1923회 서울인권영화제시민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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