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매일 밤 법의학자인 크리스티나의 부검실로 이름 없는 시신들이 도착한다. 그녀는 이들을 ‘pure unknown'(단지 우리가 알지 못 할 뿐인, 이름을 알 수 없을 뿐인 사람들)이라 부른다. 퓨어 언노운은 많은 경우, 홈리스, 성노동자, 탈가정 청소년 등 사회의 가장자리에 속하게 되는 이들이다. 최근에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해안으로 밀려온 이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권리가 산 자만의 것으로 죽은 이에게는 어떤 몫도 없다면 신원을 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이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존엄에 대한 권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하다. 크리스티나 그녀 외에는.
– 28회 인천인권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영화 <신원미상자의 이름>의 신원 확인 시범 프로젝트 팀은 시신의 갈비뼈에서, 머리카락에서, 문신에서, 작은 흔적 하나 놓치지 않고 망자의 삶을 돌이킨다. 실종자 목록의 이름, 사진, 수술 기록, 건강 정보 등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찾아 시신과 맞추어본다.
한편으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들과 찾을 엄두조차 못 내는 이들이 있다. 또는 애타게 찾아 헤매도, 오래 전 끊어진 관계의 끈을 다시 잇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이주로, 빈곤으로, 성노동으로, 탈가정으로 안정적인 관계망을 구축하기 어려웠거나, 법률과 제도로 증명되는 흔적을 남기기 어려웠을 이들. 누군가는 더 쉽게 ‘무연고자’가, ‘신원미상자’가 된다.
크리스티나는 “특히 유럽 공동묘지에 무명으로 묻힌 수천 구의 이주민”을 언급하며, “사망자와 그 가족의 존엄성 존중은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라고 말한다. 망자와 유가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유럽의 책임이지만, 구조적 차원의 개입은 없어왔다고 짚는다.
존엄한 삶은 죽음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충분한 애도로, 남은 이들의 기억으로 완성된다. 그렇기에 애도와 기억은 어떤 추상의 개념이 아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와 존중이 비어있는 자리에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대화하며, 행동해야 하는, 살아 움직이는 가치다. 이는 망자만의 일도, 유족만의 일도 아니다. 누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영화의 말미에서 말하듯, “이는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인권해설
인권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로 정의된다. 인간이 타자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조건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보이고 들리는 존재로서 존엄을 인정받으며 ‘삶’을 ‘살기’ 위한 권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에게는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특히 생과 사의 자연적 질서에서 벗어나 폭력적인 죽음, 사회적인 죽음을 당한 반인권적인 사건에서 인권은 무용한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애도의 권리’가 발명된다. 애도의 권리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애도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 ‘사자’에게 속한 애도받을 권리는 사자가 다른 세계(저승)에서 안존한 사후 거처를 마련할 ‘최후’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때 안존한 사후 거처란 인간의 신체와 영혼이 머물 장소에 대한 권리이며, 공동체 혹은 그를 사랑했던 이들 안에서의 소속감을 부여받는 기억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시신을 수습하고, 이름을 찾고, 매장할 거처를 찾는 것은 양도하거나 빼앗길 수 없는 인간의 신체와 영혼의 거처를 찾는 행위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을 때 사자는 죽었으나 기억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 ‘사이’에 온전히 속할 수 있는데, 이는 동시에 사자의 이름을 빌려 삶의 세계(이승)의 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고인이 합당한 애도를 받지 못한다는 건 지금-여기서 그의 존재가 “삶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것이고 주목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는 탈실재화(derealization)된 폭력의 반증이자, 사회의 부정의와 공동체의 균열을 폭로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애도할 권리는 산자에게 속한다. 이는 상실과 이별을 마주하며 고인을 떠나보내고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다. 산자의 애도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면 “자아가 빈곤해지고 망상적인 자기비하와 비난이 심해지면서 본능적 욕구마저 억누르게 되는 심리적 피폐화, 즉 우울증적 상태로 이행될 가능성이 높다.” “살아 있으되 죽은 자처럼 되는 것이다.” 애도의 실패가 실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애도의 권리는 산자가 온전히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사자의 권리를 보존해 산자의 인권을, 삶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울하게도 현실에서 원통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권리는 존중되지 못한다. 다수의 경우 목숨은 싸고 죽음은 비싸기에 시신 수습과 이름 찾기, 매장은 시도조차 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집요하게 되물어야 한다.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에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냐고. 인간으로서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겠냐고.
유해정(인권기록센터 사이 기록활동가)
*2023년 28회 인천인권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재수록하였습니다.
인권기록센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역사와 현재 ‘사이’에서 세상은 만들어진다 믿는다. 차별받는 자, 저항하는 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잇는 인권기록활동을 지향하며 2019년 만들었다. 연구와 교육, 네트워킹을 통해 다양한 기록활동과 접점을 찾기를 희망한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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