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페미 Candlewave Feminists

작품 줄거리

수백만의 촛불이 모였던 광장. 하나의 승리라는 기억 뒤에는 혐오에 맞서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과 권력자에게 ‘미스 박’, ‘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부패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은 “기특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기로 했다. 여자로 살아도 안전하고, 페미니스트임을 밝혀도 당당할 수 있도록. 살기 위해 만든 페미존에는 어디서도 자리를 찾을 수 없던 여성들이 모였다. 그 안에서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은 변화를 일으켰고,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 움직임을 지지하며 더 이상 여성 혐오 발언을 묵인하지 않았다. 대의를 위해서 “떠나거나 참거나” 하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함께 외친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프로그램 노트

수백만의 촛불이 모였던 광장을, 그 시국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들이 말하는 ‘우리’에 내 자리는 없었다.”
광장에 ‘시민’으로서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은 ‘시민’이 아니었다. 불편한 세상을 바꾸자는 그 속에서도 편안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의 광장에 내 자리는 없어도, 여성 혐오는 있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과 권력자를 ‘미스 박’, ‘~년’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야 했다. 그들은 광장에 나온 나를 “기특하다”고 했다. 동등한 위치의 시민이 아닌, ‘젊은 여자’로 나를 대했다. 혐오는 이렇게 나의 외침을 틀어막았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는 누구랑 싸우는 거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건 없었다. 우리에겐 이 혐오에 저항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함께 변화를 외쳐도 늘 배제되었던 경험이 모여, 서로를 지키겠다는 바람을 일으켰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뒤로 미뤄졌던 이야기들이 여기 모여, 이 혐오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부르짖었다. 이런 외침들이 하나, 둘 모여 ‘페미존’을 만들었다. 광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광장에 설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다시 말하려 한다. 또 다른 변화가 움트던 그날의 광장에, 페미니스트로서 모인 우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로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에만 남겨둔 이들이 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배제한 여성은 없는가. 이 물음을 던지고자 여기, 그날의 광장을 다시 불러온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감독

강유가람 Kangyu Garam

강유가람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 창립을 함께하며, 여성국극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의 조연출, 배급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와 부동산 문제를 다룬 중편 다큐멘터리 <모래>(2011)를 연출,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한국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다. 여성의 임신중절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2013)을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공동제작하고, 프로듀싱했다.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공간의 변화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이태원>(2016)을 연출했다.

인권해설

그 광장에는 ‘페미니즘 정치’의 요구가 있었다.

2016년 10월 29일 오후 2시, 보신각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첫 번째 검은시위가 열렸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까지 마치고 다소 고무된 마음으로 청계광장에 갔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인파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자에 대한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레와 같은 환호성. 무대에 선 이는 이재명 성남시장이었다. 그날 저녁 광장에는 ‘~년’을 “정신병원에 보내라”는 구호가 난무했다. 이후 두 번의 범국민행동이 진행되는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단지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런 놈도 있었던 것’으로만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효과였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병신년’으로, 최순실을 ‘저잣거리 아녀자’로 표현하는 광장의 언어와 정동은 광장에 모인 이들이 ‘혼내줘야 할 나쁜 권력’을 곧 ‘여성’이라는 상징으로 치환하는 정치적 의도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박근혜, 최순실 주변의 인물들과 새누리당을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이들을 강간하여 혼내주는 이미지가 넘쳐났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유독 성추행을 많이 겪었다는 사실은 그저 우발적인 일이 아닌 것이다.
‘페미존’이 시작된 것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세 번째 범국민행동이 있었던 날, 사전대회로 진행된 여성대회에 참석한 이후이다. 여성대회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한 명의 남성이 난입하여 한 차례 소동을 치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던 거리에서, ‘페미존’의 참가자들은 용기를 내어 “민주주의는 여성혐오와 함께 갈 수 없다!”고 외치고 다녔다. 우리와 함께하는 참가자는 어느새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여자들이 대다수인 행렬을 향해 누군가는 박수를, 누군가는 “기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중년 남성 무리는 “학생들이 대단하네. 그런데 학생들은 가서 공부를 해야지”하며 지나갔다. 그를 향해 우리는 외쳤다.

“공부는 아저씨나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그렇게 몇 차례의 집회와 ‘페미존’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집회 무대에서의 발언과 분위기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고, DJ DOC의 공연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여성혐오 하지 마세요!”라는 외침은 광장에서 어떤 의미로 전달되었나. 이 구호가 단지 여성을 지칭하는 욕이나 비하 발언을 하지 말라는 예민한 외침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소리로, 정치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페미니즘 정치의 요구로 환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페미존’ 이상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그해 11월 26일 진행되었던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은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페미존’에 참여한 모임, 단체, 개인들이 각기 ‘페미니즘 정치’를 의미화하고 선언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그로부터 1년 반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 정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수십 년을 이어온 가부장적 정치권력 카르텔의 정점이었던 박근혜 국정농단의 실체가 밝혀지고 그간의 역사가 전환되는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우리는 그 권력을 ‘여성’으로 치환하려 했던 광장의 정치적 역동을 그저 보아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페미니즘 정치가 ‘다른 정치’의 방향으로 전면화되지는 못했던 그 겨울을 지난 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던 대통령의 행보는 우리가 선언했던 페미니즘 정치의 방향에서 여전히 한참 후퇴해 있고, 우리는 연일 곳곳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과 싸우는 중이다. 이전까지의 정치 권력이 폭력적인 가부장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현 정부의 정치권력은 좀 더 부드러운 가부장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 정치가 정치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뤄내야 할 시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국가의 가부장적 ‘보호’를 넘어 모든 이들이 정치의 주체로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낼 때, 그것이 바로 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통제로서 작동하는 혐오를 넘어서는 순간이고, 그곳이 바로 페미니즘 정치의 현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페미존’의 외침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1523회 서울인권영화제혐오에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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