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 수어가 언어인 농인들의 이야기로 ‘소란’하다. 바바라는 아이에게 수술로 얻어지는 소리가 아닌, 자신의 언어를 온전하게 전하고 싶다. 국회의원 야머는, 농인들이 모여 맞서 싸우고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해야 함을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농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모으고 또 나눈다. 어떤 이는 더 이상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수어만을 사용하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아이샤는 직장에서 마주하게 될 상황들이 걱정되지만,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언어인 수어를 세상에 내보인다. 세상은 소리가 아닌 손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없애려 들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크고 요란하게 존재를 알리고 살아가는 삶들이 여기에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혜지
프로그램 노트
사람은 저마다의 언어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한다. 언어는 사람의 세계관을 구성하며 동시에 어떤 세계를 만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수어가 자신의 언어인 농인은 수어로 세상을 만나고, 세상을 만든다. 하지만 농인이 마주하는 세상은 들리지 않는 것을 기능의 상실로 여겨 ‘치료’를 통한 기능의 회복을 요구하며, 소리언어를 가르쳐 청인과 유사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려’ 한다. 이렇게 청인 중심의 세계와 소리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농인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시끄럽게’ 부딪친다.
수어를 사용하지 말라며 이들의 문화와 세계를 빼앗으려는 세상을 향해 농인들은 ‘손으로’ 그 누구보다 시끄럽게 투쟁한다. 농인 부모는 청각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이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에게 “우리는 수술 없이도 수어를 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말한다. 농인 국회의원은 농인들의 연대를 강조하며, 지금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함께 말해야 청인 중심적인 정책이 바뀐다고 말한다. 농인 공동체는 수어 사용에 대한 자신감을 서로 임파워링 한다. 이렇게 농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끈끈한 연대로 청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낸다.
농인은 ‘장애를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농인 정체성을 가진 주체이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되는 대신 소란한 저항으로 맞서 싸워 이길 것이라 말한다. 농인으로서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위한 저항의 흔적들은 이들의 일상 모든 곳에 완연하다. 그렇게 농인으로서, 농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항의 움직임을 적막으로 덮으려는 세상을 향해 균열의 파장을 그려내는 손이 있다. 손으로 말하기까지 그 누구보다 ‘소란스럽게’ 손을 사용한 사람들이 있다. 손으로 말하는 존재의 방식은 겹겹의 파동이 되어 세상을 부술 것이다.
감독
다리우쉬 코발스키
감독은 1963년에 태어난 폴란드 배우이자 감독이다. 1992년 영화 <Daens>로 데뷔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시리즈도 제작한다.
인권해설
농영화를 만드는 이유
우리는 인간의 진심으로 표현한다. 농인독립영상제작단 데프미디어다. “대화나 정보 전달은 수어나 활자를 통하면 됩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소리가 아닌 ‘눈으로 보이는 시각’입니다.” 소리 없는 영화란 농인의 정체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위한 자연스럽고 당당한 표현방식이자, 그들에게 높은 담장을 둘러친 이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음악이라도 있었으면 감상이 훨씬 편했을 텐데 영화에서 모든 소리를 빼버렸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근사한 사운드와 음악으로 영화를 즐길 때, 우리는 단지 눈으로 보기만 하니 즐거움을 느끼기는커녕 내용 파악도 힘들고, 그럴 때마다 “나도 대한민국 사람인가?” 하는 분노가 치민다. 그 분노가 수어로 만든 영화, 즉 소리 없는 영화를 탄생시킨 계기다.
-2016 함께걸음-
현재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 영상처리, 음향 효과를 결합한 구조체로서 관객들에게 흥미를 제공하는 매체다. 그러나 100년 전까지만 해도, 영사기 발명 이후 등장한 영화엔 소리가 없었다. 그 때 수어가 무성영화에 등장하는 사례가 많았다. 예컨대 나운규 감독의 <벙어리 삼룡이>라는 무성영화엔 수어의 일종인 홈사인(home sign)이 채택된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의 경우, 찰리 채플린이 출연한 무성영화에 농인 배우가 등장하였다. 찰리 채플린은 농인 배우로부터 수어를 동반한 연기 지도를 받아서 훌륭한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는 과도기에는 무성영화를 생계 수단으로 삼던 많은 농인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마지막 포옹>, <만종>, <아다다>, <고래사냥> 등, 외국에서는 <홀랜드 오퍼스>, <시크릿 러브>, <비욘드 사일런스>, <블랙>, <청설> 등, 농인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었다. 농인이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은 2005년 4월부터이다. 농인은 영화 분야에 관심이 있어 관련 교육을 받거나 영화 제작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려 해도, 의사소통의 문제로 종종 어려움에 부딪혀 영화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 고심하다가 농인끼리 자조 모임으로 시작한 농인영상동호회 ‘데프미디어’를 꾸렸다.
농인은 ‘보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에 담아 알리고 싶었다. 예술 분야에서 농인이 차별 없이 문화를 향유할 뿐만 아니라 직접 창작하기 위해서는 교육적인 제반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수어통역 바우처 등과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호소하곤 한다. 데프미디어는 지금도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농인에 대한 차별들을 개선하고자 영화를 구상하면서 <한국농역사>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박재현(데프미디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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