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Soseongri

작품 줄거리

무더운 오뉴월, 할머니들은 아스팔트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논의 풀을 베다가도 더우면 논둑에 앉아 수박을 나눠 먹고 무더위쉼터에 모여 깻잎을 다듬던 소성리 주민들의 일상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기습 배치되었다. 2017년 4월 26일 새벽, 군용 헬기와 대형 트럭들이 무기를 싣고 도둑놈들 마냥 몰래 소성리에 들어왔다. 할머니들은 ‘사드 가면 전쟁 온다’는 현수막 앞에서, 겪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전쟁의 두려움을 되뇐다.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끌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빨갱이라는 이유로 끌려나가 총 맞아 죽었던 이웃들을 떠올린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든 자들은 여전히 소성리에서 빨갱이를 찾는다. 할머니들은 오늘도 흙 묻은 손을 맞잡고 사드를 바라보며 외친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프로그램 노트

할머니들에게 소성리는 단순한 마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옥한 토지와 깨끗한 공기가 있는 하늘, 팔부녀회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살아온 역사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가 기습 배치되며 모든 게 달라진다. 지금이 “꼭 6.25 긑다”고 하는 할머니들에게 사드는 전쟁과 다름이 없다. 평화를 위해 무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고, 무기를 설치해서 이 땅을 떠나야 한다는 말도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긴 세월 동안 논농사를 주로 지어온 소성리 할머니들에게 사드가 군병력, 인구 밀집 지역, 핵심시설 등을 방어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설치한다는 사드야말로 애써 지켜온 삶의 흐름을 깨는 ‘무기’이다. 군병력도 없는 소성리는 그렇게 무기가 설치되어 전쟁터가 되었다. 정작 사드가 지킨다고 하는 핵심시설 지역 거주민들은 ‘위험한 무기’를 원하지 않았다. 누구도 전쟁을 겪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외면한다. 결국 사드는 ‘할머니’,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는 소성리로 밀려나 배치되었다. 할머니들은 “우리 사드병 다 들었다!”하며 밭을 매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소성리를 지키기 위해 달려간다.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일상이자 투쟁이다. 이웃과 잠시 수다를 떨다가도 눈 돌리면 곳곳에 사드 현수막이 걸려있다. 호미를 쥔 손으로 농사를 짓기도, 저항하기도 한다. 누군가 도둑처럼 소성리에 사드를 배치했고, 할머니들은 그곳을 지키고 있다. 무궁화 꽃 앞에서 활짝 웃으며 만세를 부르는 동안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소성리로 계속 뻗치고 있다. 심지어 사드철폐를 약속했던 정부는 종전 선언을 예고한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사드 부지공사를 강행한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구호와 함께 할머니들은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진밭교를 꿋꿋이 막아선다. 푸른 하늘 밑에서 이웃들과 오순도순 참외를 까먹던 소성리를, 마을 곳곳마다 기억이 담겨있는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감독

박배일 PARK Bae-il

박배일

현재 오지필름에서 활동 중이다. 옆집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를 만들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여성,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 꾸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인권해설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묻힌 목소리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왔다고들 했다. 올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간의 대화와 화해의 몸짓은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짓눌러 왔던 대결과 전쟁의 위기를 걷어내는 중요한 계기였고 많은 사람들은 평화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분명 우리의 한 부분인 성주 소성리에서는 수천여 명의 경찰에 에워싸인 채 계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주민들의 의사는 배제된 채 강행되는 사드기지 공사를 막기 위해 그곳의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묶어야 했고 무차별적인 공권력에 의해 끌려 나와야 했다. 소성리 사람들의 삶과 평화는 그렇게 질식되고 있다. 같은 일이 10여 년 전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벌어졌다. 2007년 국민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정부에서 주민의 의사는 배제된 채 강행된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그곳 사람들을 갈가리 찢어놓았고, 이들의삶은 불안해졌다. 지금의 소성리와 같은 모습으로 시작된 저항을 지속하였고 4000일을 넘긴 저항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군사기지, 군사훈련장 등의 건설 사업에서 해당 지역 사람들의 삶은 그리고 인권은 아주 쉽게 무시된다.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저항을 님비 혹은 이기주의라는 말로 치환한다. 분단이라는 조건과 이로 인해 뿌리 깊게 형성된 ‘증오’는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는 주장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삼키는 것을 용인한다. 우리는 국가가 추진하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국민의 삶을 더 불안하게 해 온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더 많은 군사기지와 더 강력한 무기가 우리를 더 안전하게 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지금 이 땅에 번지는 평화의 기운은 무기를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안보가 아닌, 그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과 평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영화 ‘소성리’는 부당한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보장받아야 할 일상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소소하고 심지어 조금은 심심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박석진(군대를 보는 시민의 눈 상임활동가)

1723회 서울인권영화제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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