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감독의 언니는 35살의 젊은 나이로 돌연사했다. 사망원인은 불명이었다. 감독은 언니의 죽음이 의심스러워 그녀가 왜 죽었는지 10년에 걸쳐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제약산업의 이면을 보게 된다.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병과 그에 맞는 약을 만들어내고 승인되지 않은 효능으로 약을 홍보하는 오프 라벨 광고로 약을 유통한다. 또, 신약의 긍정적인 효과만 쓰여 있는 유령 논문을 출판한다. 그 후 제약회사는 수천 명의 판매원을 여러 병원으로 보내서 의사들이 자신들의 약을 처방하도록 한다. 이러한 마케팅에 현혹된 의사들은 부작용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신약을 처방하게 된다. 이렇게 제약산업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약들의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가기만 한다. 영화는 항정신질환 의약품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기록이자, 감독이 언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야자수
프로그램 노트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과 처방받는 약에 대해서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잘 알지는 못해도 사람의 몸과 건강을 가지고 쉽게 장난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이 세상이 아무리 자본의 논리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분명 의학과 제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니까.
그런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고 있다. 감독의 언니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도 의문을 해결해주지 않았기에 동생은 언니의 유품인 반지를 품은 채 10년 동안의 기록을 시작한다.
이상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포착된다. 항정신질환 의약품의 부작용엔 돌연사가 포함되어있고 그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너무나 많다. 놀랍게도 정신과 의사들조차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면엔 정신의학계의 성경과도 같은 DSM과 제약업계가 긴밀히 연결돼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판매하고자 하는 약품에 따라 정신병의 범위는 늘어만 간다. 이렇게 DSM을 등에 업고 만들어진 약은 의사의 눈을 가린 채 불티나게 팔린다.
이런 의심쩍은 상황을 파헤쳐보니 제약업계를 둘러싼 더욱더 촘촘한 자본의 톱니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독점판매권을 위한 로비, 불법마케팅 등 ‘생명’과는 거리가 먼일들이 제약회사, FDA, 학회 사이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 연쇄 과정 속에서 제약회사는 약을 최대한 많이 팔면 그만이고 환자들은 약을 구매할 ‘소비자’일 뿐이었다. 사람들을 살릴 줄로만 알았던 진단과 처방은 열심히 자본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자본의 톱니는 의료계라는 전문적인 영역 안에 은밀히 숨어버린다.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날이 갈수록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늘어만 간다. 그 정보의 간극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언니를 그저 떠나보낼 수 없었기에 시작한 움직임이었다. 언니의 반지를 빼지 않았던 건 죽음의 원인과 이 거대한 구조를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약속과도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것만 같던 적막을 하나둘 벗겨내고 있다.
감독
아니켄 홀
아니켄 홀은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감독이다. 2003년부터 중동, 인도, 미국 및 유럽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감독했다. 아니켄의 장편 데뷔작인 <사망원인: 불명>은 완성하는데 무려 11년이 걸렸다. 현재 트롬소(노르웨이)와 베를린(독일)에서 영화 제작사 매니페스토 필름을 운영한다.
인권해설
감독은 언니가 약의 부작용으로 급작스러운 ‘죽임’을 당한 것인지 알고자 촬영을 시작했다. 이 영화는 ‘의료사고(투약이나 오진처럼 의료인의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나 사망이 발생하는 것)’를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은 10년간 의약품이 개발되어 환자에게 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좇아야 했다.
제약산업은 군수산업, IT산업, 금융업보다도 수익률이 높은, 세상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산업이다. 2015년 제약산업 판매 수익은 7750억 달러(약 800조 원)로 추정된다. 이중 상위 25개 제약사의 판매 수익이 70%에 달할 정도로 독점경향이 크다. 2015년 상위 25개 제약사의 평균 수익률은 20.1%이다. 의약품은 건강에 직결되기 때문에 의약품 개발 및 유통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이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의약품 수요는 점점 더 증가할 수밖에 없고 수익률도 높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제약산업 로비의 가장 큰 성과물은 트립스협정(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그 부속협정인 트립스협정이 발효되어 전 세계적으로 특허제도가 통일되었다. 그 전까지 특허제도가 없는 곳도 있었고, 식량이나 의약품, 농산물 등 인간의 삶과 생명에 필수적인 것에는 특허를 허용하지 않는 곳도 있었고, 특허보호기간도 달랐다. 그러나 트립스협정 이후 동물, 인체 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특허의 대상이 되었고, 20년간 특허보호기간을 보장해야했다. 이 트립스협정의 초안을 화이자제약과 IBM이 만들었다.
제약산업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마케팅에 활용한다. 에이즈나 정신질환처럼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희귀난치성질환이나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치료 욕구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2003년부터 줄곧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은 그 사회·경제·문화적 원인을 떠나 제약회사에게는 ‘시장’이다. 대표적인 2세대 항정신질환제 ‘프로작’은 1987년 항우울제로 승인되었다. 제약회사 릴리는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감정조절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프로작을 복용하도록 마케팅전략을 펼쳤다. “전 세계 사람들이 코카콜라, 말보로, 프로작 이런 이름을 아는 데엔 이유가 있겠죠.”라는 릴리의 마케팅 자문위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프로작’은 2000년 기준 세상에서 네 번째로 많이 팔린 약이다. 릴리는 독점기간 동안 “오프라벨(off-label. 승인되지 않은 효능에 사용하는 것)” 전략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했다.
2001년, 프로작 특허가 만료되었지만 “에버그리닝 전략(기존 의약품을 약간 변형시키거나 약의 용도와 용법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특허를 받아 독점을 연장하는 것)”으로 독점기간을 연장한다. 2000년에 월경전불쾌장애에 효과가 있다고 미 FDA 승인을 받고, ‘세라팜’이라는 상품으로 출시됐다. 동일한 화합물이지만 새로운 치료 용도를 발견했기 때문에 ‘세라팜’은 2007년까지 특허가 연장되었다. 월경전불쾌장애는 ‘병’이 되었다. 또 2001년엔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되는 ‘프로작위클리’를 출시했고, 이에 대한 특허는 2017년에 만료되었다. 2001년 프로작 특허가 끝나던 해에, 릴리는 자사의 양대 베스트-셀링 의약품인 ‘프로작’과 ‘자이프렉사’를 병용하면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자이프렉사는 조울증, 조현병에 대한 효과를 승인받아 1996년에 출시된 약이다. 승인받은 효능이 다르지만 프로작을 먹던 환자들이 자이프렉사로 대체하도록 마케팅을 했다. “과부. 그녀는 매우 의심이 많고 쉽게 화를 낸다.”, “싱글맘. 생기 없는 옷을 입으며 아파 보인다.”, “최근 갑작스런 감정 기복이 생겼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자이프렉사를 처방하도록 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제약산업은 우리의 불안, 고통,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시스템은 글로벌(global) 수준이기 때문에 한 국가 수준에서의 변화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프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까, 항정신질환제를 먹지 말아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고, 항정신질환제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며, 항정신질환제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은 언니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고자 할수록 질문이 늘어났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은 충분히 이뤄졌는지,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약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릴 수 있었는지, 제약사의 마케팅으로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 허가를 내준 보건당국마저 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이 질문들을 이어 나가보자.
권미란(정보공유연대 IP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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