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2019년 5월, 대만은 아시아 최초의 동성혼 법제화 국가가 된다. 딸 알리를 함께 키우는 조비와 민디, 35년이 넘도록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밍과 샹, 대만으로 이주하여 앞으로의 날을 꾸려나가는 구와 치우는 드디어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등록소를 찾아간다. 이 날이 찾아오기까지 이들은 어떤 생을 함께해왔을까. 이 날을 가져오기까지 어떤 좌절과 패배, 그리고 승리가 있었을까.
프로그램 노트
영화는 2019년 5월, 대만의 동성혼을 가능하게 하는 민법 개정안 표결을 1분 앞둔 순간에서 시작된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무지개를 두른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영화는 2016년 11월로 돌아가서, 혼인평등을 향한 3년의 싸움과 함께 세 부부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어린 딸 알리를 함께 키우는 조비와 민디, 30년을 넘게 함께한 노부부 티엔밍과 샹, 마카오에서 대만으로 이주하여 삶을 꾸리는 구와 그의 파트너 신이치. 이들은 사랑하고, 노동하며, 서로를 돌본다. 다가올 혼인평등의 순간을 기대하며 행동한다.
한편 이들은 위험하고 절박한 상황을 보다 자주 상상하고 맞닥뜨린다. “내가 죽는 날,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가야 한다면, 그런데 법은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비의 말처럼, 국가가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불안한 일상은 문득문득 떠오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혼인을 바라는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는 혼인이 가능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을 때, 혼인을 한 이성부부에게만 법적 보호자, 양육자, 상속자의 자격이 주어질 때, 그것은 차별이다.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있다.
법안이 통과된 순간,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구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신이치와의 혼인신고를 진행할 수 없었듯, 남은 숙제는 많다. 시민의 자격이,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누군가에게만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른다. 나 자신으로 존엄하게, 동료시민으로 평등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차별에 맞서고 ‘나중’을 거부한다. 영화처럼, 비는 곧 그칠 테니까.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인권해설
“동성혼 법제화로 무너지는 나라는 없습니다. 불행해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행복해지는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행복을 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함께해주세요.”
2024년 5월 31일에 있었던 ‘혼인평등법(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민법 개정안)’을 포함한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의 당사자인 김용민 씨가 한 발언의 일부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은 동성혼이 법제화되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2024년 6월 현재, 영화에 등장하는 대만을 포함해 전 세계 39개 나라에서 동성 간에 결혼이 가능하지만, 이에 따라 어떤 나라가 무너졌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동성혼 법제화가 ‘성별이 같은 사람 둘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상으로 사회를 뒤흔드는 변화인 것은 맞다. 동성혼 법제화 이후 대만 시민들은 학교에서의 성소수자 교육을 더 강하게 지지하게 되었고, 가족과 친구, 직장과 학교의 동료에서 정치인과 선출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성소수자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중 성소수자인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변화다. 평등이 확장된 사회에서는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될 테니. 동성혼 법제화가 무너뜨리는 것은 비규범적인 섹슈얼리티와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뿌리 깊은 낙인과 편견임을 우리는 이미 혼인평등을 실현한 다양한 나라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성동본인 사람들, 그러니까 성과 본이 같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있게 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선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1997년,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6만여 쌍의 동성동본 부부들은 서로 사랑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 살고 있더라도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을 수 없었고, 부부라는 관계에 기반한 권리와 의무를 누릴 수 없었다. 2024년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성과 본이 같다는 사실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 황당할 뿐이지만, 이 제도로 인해 누군가는 오랜 세월 불합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지금 한국의 동성 부부들이 경험하는 제도적 차별은 30여 년 전 동성동본 부부들이 경험했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 실제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1997년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지금 그대로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다시 써도 될 정도다. 그 일부를 아래에 옮겨본다.
“국민은 스스로 혼인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고 혼인함에 있어서도 그 시기는 물론 상대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결정에 따라 혼인과 가족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 헌법재판소 1997. 7. 16. 선고 95헌가6내지13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성별이 같은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현재 우리가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존재했던 시절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생경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작년 이맘때 성소수자 운동은 ‘모두의 결혼, 사랑이 이길 때까지’라는 슬로건으로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운동 기구를 만들었다. 한국의 가족제도를 보다 성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라는 기본권을 성소수자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소
수자가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두의 결혼’이 만들어 갈 여정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이호림(모두의결혼)
모두의결혼
“모두의결혼은 한국사회에 혼인평등을 요구하는 캠페인입니다.
혼인평등이란 국가의 제도이자 개인의 권리인 혼인을 이성 간에만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성별에 따른 제한 없이 동성 간에도 평등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2023년 6월 시작한 캠페인은 이제 여러분들과 혼인평등이 가져올 가족의 다양성과 성평등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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