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파는 건강 Health For Sale

작품 줄거리

약 공급을 제약회사에 맡겨두는 시스템에서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세계무역기구의 트립스(TRIPS,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는 제약회사에 20년의 특허를 주어 시장에서 독점적으로 약을 공급할 기회를 부여한다. 시장의 유일한 공급자가 된 제약회사는 자신들의 이윤에 따라 가격을 인상하거나 약 공급을 중단하고, 이로 인해 소비자가 되지 못한 환자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앞으로도 전세계 제약시장을 지배한다면, 건강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건강을 사고 파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모두를 위한 건강은 실현될 수 없다.

프로그램 노트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이 있었어도 사람들은 이토록 코로나19를 두려워했을까? 약이 없는 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람들은 의약품 개발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약의 개발이 코로나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약이 없는 병과 약이 있는 병뿐만 아니라, 약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아있는 한, 감염병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고 파는 건강>은 의약품 공급에 대한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역시나 가난하고 힘없는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에게 의약품 공급은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의약품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결코 개발도상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는 현재 의약품 접근에 제한을 겪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따라 약품의 가격을 인상하기도, 그 공급을 중단하기도 한다. 의약품 특허 독점을 위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경쟁에 환자의 건강권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닌 것이다. 매력적인 소비자가 없는 곳에 약은 없다. 과연 “00을 살 돈이 없다”라는 말 앞에 ‘약’과 ‘건강’이 들어갈 수 있을까.

불평등한 의약품 접근권 문제의 중심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트립스(TRIPS,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협정이 있다. 이 협정은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에 20년의 특허를 주어 해당 기간 동안 타회사에서 일반복제약을 제조할 수 없도록 시장 독점권 지위를 부여한다. 의약품 개발이 공공제약이 아닌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다뤄지면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먼저 특허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결과물은 고가의 약이 되어 시장에 돌아오고, 의약품 접근권 문제는 여지껏 해결되지 않았다. 1940년대 유럽에서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던 때 대량 공급되었던 말라리아 치료제 ‘디디티’는 유럽 내 말라리아가 사라지자 생산이 중단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내성이 생긴 구식약에 의존하고 있는데, ‘아프리카 말라리아’를 위한 약은 누가 개발하고 있는가. 현재 국내에서도 상업성을 이유로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생겼다. 국내 민간 제약사들은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분명하고, RNA변이가 쉬워 개발하더라도 수익을 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시바삐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수익성을 기준으로 개발 여부를 따지고 있는 상황이다.

트립스에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겪고 있는 나라에 한해 특허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한시적으로 일반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의약품 특허 강제실시’라는 규정이 있다. 코로나19를 신속하게 퇴치하기 위해 캐나다와 독일은 코로나-19에 치료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들에 특허 강제실시를 신속하게 발동하도록 법률 개정을 마쳤고, 칠레와 에콰도르 의회도 강제실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달리 국내 특허청은 ‘코로나19 특허정보 내비게이션’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오히려 국민들에게 특허출원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백신 개발을 권력 독점과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바라보며 경쟁적으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공평한 분배를 보장하기 위해 결성한 세계보건기구(WHO) 협의체에 불참하기도 했다. 이처럼 코로나19사태를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들 속에서 섣불리 어떤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선진국이라는 지위와 상관없이, 의약품 접근성이 확보된 공공성이 높은 국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제약회사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치료제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치료제를 보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누구에게 먼저 약을 제공할 것인지. 치료제의 균등 배분은 어떠한 공적인 전달체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인지. 초국가적인 의약품 공동 개발 관리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 코로나19는 가히 인재라고 불릴 만큼 의료 및 제약 관련 체제와 관리에 나 있던 구멍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단순히 ‘아웃’-코로나 아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코로나를 넘어서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고, 누구도 남겨지지 않을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선아, 스

인권해설

영화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의약품 접근성’입니다. 특히 지적 재산권과 특허에 대한 부분을 잘 파고들어 설명해줍니다. TRIPS로 불리는 ‘무역 관련 지식 재산권 협정’은 제약회사들이 특허에 목을 매기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TRIPS 이후 국제 무역에서 특허권이 절대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의약품을 20년 이상 세계 독점하는 일이 가능해졌거든요. 독점하는 동안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국가와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제약회사가 부르는 돈을 낼 수 있는 국가, 그리고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죠.

불평등과 재난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노출되고, 더 많은 상처를 주곤 합니다. 영화는 가난하고 힘없는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에게 더 가혹한 의약품 공급 현실을 보여줍니다. 개발도상국을 가장 괴롭히는 질병은 AIDS,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병인데요. 이들 질환은 약만 있으면 극복 또는 관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약을 구매할 방법이 없어 감염자는 방치되고, 주변으로 전염됩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 약이 있어도 그 약을 삼킬 깨끗한 물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매년 1500만 명이 남반구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전염성 질환의 85%가 발생하는 남반구에서 11%의 의료 비용을 쓰고 나머지 89%를 북반구에서 쓴다는 사실은, 이 조용한 재앙이 불평등에서 비롯된다는 걸 증명합니다.

김주성(늘픔약사회)

22코로나19 인권영화제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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