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념 Jeju Prayer

작품 줄거리

비념>은 ‘세계 7대 자연경관’인 제주에 얽힌 기억을 따라 오름, 바다, 한라산, 숲, 제주공항, 강정을 떠돈다. 토벌대를 피해 몇 날 며칠을 한라산에 숨어 있던, 나무 창에 젊은이들이 전부 찔려죽던, 제주를 떠나 일본으로 향해야 했던, 4살배기 아들과 함께 옷이 피가 되도록 맞은, 기억들. 할머니들과 무당은 작은 집에 모여 4.3으로 죽은 원혼을 위한 비념을 한다. 오랫동안 하소연할 수 없었던 증언과 시간들은 모여 창이 되고 굿이 되었다. 하지만 무당들이 비념을 드리던 강정의 신성한 바위 ‘구럼비’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부서진다. 그럼에도 제주의 땅에는 그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3을 지나온 할머니들은 그 땅과 기억을 딛고 자신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 비념을 따라 기억의 여행을 시작한다.

프로그램 노트

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폭도로 몰려 사라진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제주 여성의 이야기다. ‘남성’만 벌초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어 묘소에도 갈 수 없었다. 같은 추모도 어떤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여성들은 귤을 따는 손으로, 산속을 걷는 발걸음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한다.
아직까지도 제주4.3을 앞장서서 증언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를 다르게 겪은 ‘남성’이다. 잡혀 성고문을 당하거나 죽을까 두려워 일본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더더욱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한국이 이들을 잊었듯, 이들도 한국어를 잊어간다. ‘증언자’는 한정되어 있다. 고통을 ‘통용될만한’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만 증언자로 승인된다. 풀어낼 수 없는 아픔, 굿으로 가슴을 쳐야만 사라질 기억은 말하면 안 되거나 말할 수 없는 기억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자의 한’ 정도로 치부된다. 같은 때를 말하면서도 이것은 왜 증언도 역사도 되지 못하는 것인가.
비념은 죽은 사람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한 굿은 비념을 지내려고 모인 할머니들이 눈물을 찍어내고 말을 뱉어내는 시공간을 잠깐 열어낸다. 죽은 이들을 위해 부르는 창은 산 사람을 위한 것에 가깝다. 기억의 공간은 다른 목소리를 빌려 열린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서 제주4.3의 아픔을 청산한다는 지금도, 4.3 때 일본에 피신해 국적이 남한이 아닌 ‘조선’인 사람은 한국에 올 수 없다. 한국은 여전히 4.3에서 자행된 학살을 국가 정책으로 밀어붙였던 ‘대한민국’ 위에 서 있다. 그뿐인가.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도 남성에 의한 성폭력을 ‘어쩔 수 없는 일’로 가벼이 다루고, 남성의 업적만을 기록한 역사를 ‘진짜 역사’로 만드는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4.3을 기억한다.
제주4.3을 다시 기억하는 오늘, 부유하는 기록들은 누구의 힘을 빌어 여기까지 드러난 것일까? 무엇을 위해? ‘화해’나 ‘진짜 기억’을 위해? 지금까지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오롯이 담고 있지 못한 기록, 남성이 붙잡은 기록물 아래에서야 복기되는 시간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다시 생각한다. 겹겹이 덮힌 기억들 아래에 있는, 혹은 이 기억들을 가로지르며 존재할 수 없는 기억이라고 여겨졌던, 배제된 이의 이야기를.

감독

임흥순 IM Heung-soon

임흥순

경원대학교 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단편 <내 사랑 지하>, <추억록>, <숙자>, <꿈이 아니다>, <숭시> 장편 <비념> 등을 연출했다.

인권해설

제주는 삼다도 즉,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한다. 제주여성들의 삶은 돌과 바람만이 존재하는 척박한 섬에서 차별과 억압으로 점철된 일상에 대한 저항의 시간이었다. ‘일상’의 시간을 ‘저항’의 시간으로 대체하며 살아온 제주의 여성들은 오랜 기간 제주의 땅을 지키며 ‘여성’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녀들의 공동체는 지금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혹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또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었고, 제주를 지키는 ‘가치’라 명명하는 아이러니가 공존하고 있다. 그/녀들의 일상은 ‘해녀’로 물질을 하고, 물질이 끝나면 다시 밭으로 나가 ‘농부’로 그리고 남은 시간은 가사노동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 ‘살암시난 살앗주’ : 제주의 ‘할망’들은 ‘그냥 그렇게’ 아픔의 시간을, 고통의 시간을 이어갔다.

여성의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상적인 삶과 생애 과정에서 주어진 젠더 지위와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한 가부장제적 억압의 역사에 거스르며 투쟁해 왔는지에 대한 젠더 경험의 진술이며 증언이라 할 수 있다. – 김성례(<여성주의, 역사쓰기: 구술사 연구방법> p.21)

남편의 할머니는 ‘백조일손’의 희생자이다. 당시 군대에 가 있는 오빠를 대신하여 10살배기 ‘딸’이었던 남편의 고모가 홀로 자신의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더듬으시는 ‘할망’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녀’의 가슴을 얼마나 녹였을지 짐작도 못 할 만큼의 세월이다.
그렇게 제주의 4.3은 70년의 세월을 거스른다.

아직도 정명되지 못한 4.3을 혹자는 ‘사태’라 혹자는 ‘항쟁’이라 부른다. 하지만 제주여성에게 4.3은 정명의 과제를 넘어선 젠더폭력으로서의, 공동체 안에서 감당해야 하는 제노사이드로서의 폭력 경험이다. 4.3항쟁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가족 또는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결혼 혹은 ‘성상납’의 매개로 이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또는 마을 공동체는 침묵을 ‘강요’하고 침묵에 ‘동의’함으로써 당시 생존한 ‘여성’들의 경험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타자의 목소리에 의해 한두 사례가 밝혀지고 있을 뿐, 피해 당사자로서 혹은 생존자로서 ‘여성’의 증언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쏟아지는 증언들 속에서 여성들의 경험은 누구의 ‘아내’이거나 ‘딸’로서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가족의 사태를 수습했던 존재의 위치로, 피해 가족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의 생존, 마을의 생존 그리고 개인의 생존을 위해 당시 여성들이 경험해야 했던, 가부장제 구조 안에서의 침묵함으로써 존재가 인정되었던 여성폭력 피해자로서 경험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젠더로서 경험하는 여성 ‘개인’의 경험은 곧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여성 구술사는 구술자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주의적 만남이다. 구술사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자료를 만들어 내고, 여성의 경험을 정당화하고, 세대가 다른 여성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전통적 역사에서 거부당했던 여성들의 뿌리를 발견하고, 여성의 역사가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Gluck 1977:5)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으로 제주의 군사기지화는 시작되었다. 제주의 반군사기지운동의 연속선에서 촉발된 제주 군사기지화와 젠더적 관점에서의 평화 운동은 우리의 일상적 공간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군사기지가 들어선 마을의 상권은 ‘군인’을 대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부장제가 여전히 체제 유지를 위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결국 ‘여성’들이 젠더폭력의 대상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기에 군사기지화는 여성의 삶에 주요한 변수이며, 여성들의 삶을 왜곡하는 기제이며, 여성의 일상을 또다시 침묵하거나 묵인하게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1% 제주, 제주의 1% 강정, 이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제주의 군사기지화는 이제 성산 제2공항으로 공군기지로 이어지며 제주섬의 기지화는 제주섬의 일상적 공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여성들의 삶의 질이 더 낮아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여성’들은 ‘개인’의 경험을 ‘집단화’함으로써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수한다. 즉, 젠더폭력은 침묵하고 국가폭력으로 대체할 때 ‘여성’ 또한 ‘동일한’ 피해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제 4.3에서 ‘여성’의 경험은 가부장적 사회구조 안에서 국가폭력 당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도구화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고명희(제주여성인권연대 활동가/여성주의 상담 활동가)

1423회 서울인권영화제제주 4.3 70주년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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