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패밀리 Family in the Bubble

작품 줄거리

1980년대 국가 주도의 개발시대가 열렸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은 작은 건설업으로 하루아침에 중산층 사장님이 되었다. 도시개발 붐과 함께 부모님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순조로운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동산 거품과 함께 모든 것이 가라앉았다. 금방 되찾을 줄 알았던 우리 가족의 호황기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15년이 지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은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믿음을 붙잡고 ‘한 방 터질 날’을 기다린다. 답답한 마음에 대화를 해봐도 언성만 높아질 뿐 대책이 없다. 무엇이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유를 찾으려 카메라를 들었다.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개발정책의 흐름과 부모님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그 끝에서 우리는 살아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프로그램 노트

1970년대 후반, ‘국가경제개발’이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대대적인 국가 주도의 도시개발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향했고, 도시에는 이들이 거주하고 삶을 일굴 새로운 건물이 필요했다. 부동산 가격이 수백 배씩 뛰어올라도 수요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사람들은 소규모 건설업을 시작했고 부동산 투자에 열광했다. 위험을 감수하면 큰 ‘한 방’을 터뜨릴 게 확실했던 시기, 당시 부동산은 모두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았다. 소규모 회사들은 모조리 부도가 났고, 무수히 많은 개개인의 삶도 조각나버렸다. 거품의 몰락은 가족 사이에도 균열을 내었다. 집안의 경제 사정이 몰락한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고 삶에 치이면서 서로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그리고 간극은 애증과 원망이 되어 그들 관계에 ‘가족’이라는 이름만을 남긴다. 버블경제 또한 그렇게 거품뿐인 가족, “버블 패밀리”를 만들었다.
버블은 수많은 삶을 조각냈지만 그 모든 책임은 ‘지나친 욕심’의 탓이 되어 개인에게 덮어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었다. 국가는 작은 영리 업자들에 대한 안전망을 만들고 필연적으로 일어날 경제위기 상황을 대비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국가는 오히려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펼쳤고, 부동산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데에 일조했다. 국가와 소수 기업에 떨어질 이익이 부서진 개개인의 손실보다 크다면 그만이라는 계산,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국가경제개발이었다. 처음부터 거품과 함께 휩쓸려갈 사람들이 정해져 있던 구조에서, 과연 모든 책임을 개인의 탓이라고 몰아갈 수 있을까?
지금도 한국에는 영화 속 부모님처럼 부동산 몰락을 겪고도 부동산의 희망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서 이들의 ‘욕심’은 너무나 당연하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과거 큰 ‘한 방’의 경험과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는 부동산 투기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사회는 이들의 ‘욕심’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는 유일한 희망이 된 부동산의 끈을, 우리는 과연 욕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감독

마민지

1989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와 동 대학 방송 영상과 전문사 다큐멘터리 전공을 졸업했다. 자본이 도시의 장소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지에 관해 관심을 두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버블 패밀리>(2017) 는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며, 2017년 EBS 국제다큐영화 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홍형숙 감독의 신작 <J의 행성(가 제)> 조연출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성의 우울증에 대한 두 번 째 장편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이다.

인권해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몇 가지 빈곤 지표가 있다. 한 가지는 50%에 육박하는 노인빈곤율, 또 한 가지는 소득이 낮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주거비를 지출하는 주거빈곤율이다. 언뜻 보기에 두 가지 사실은 병렬적이지만 구체적인 연결점이 있다.

이 두 가지 비참은 한 사회학자*의 설명을 통해 연결된다. 그는 한국의 독특한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자본주의 후발 국가였던 한국은 6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저축은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노동자들은 자산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중상위 계층 이상의 노동자들에게만 편중된 이득이었다. 자산 격차는 점점 커지고, 노동자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필요가 늘어나며 정부는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을 세운다. 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목표는 ‘내 집 마련’ 이었다. 자가소유자는 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집은 가장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었다. 새로 연 모델하우스는 인산인해였고, 수십 수백 대 일의 추첨을 거쳤다. 몇 배의 웃돈을 주고 사도 다시 몇 배로 불어났으니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전 재산을 집에 투자한 사람들은 집을 통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경로의존성’ 이라는 개념은 이 과정에서 복지의 확대보다 주택시장의 확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설명한다. 이미 정부 정책에 따라 집을 사고, 임대업자가 된 사람들은 복지와 연금 확대를 위한 세금인상보다 더 많은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지한다.
주택 보급률 108%에도 절반의 국민이 집을 갖지 못한 현실, 가장 많은 집을 가진 사람이 2291채의 집을 가진 현실은 어느 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선택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사회 공동의 산물이다. 90년대 간편한 주택공급과 노동자들의 내 집(건물) 마련을 위해 지어진 다세대주택과 상가건물은 정부의 전격적인 지원 속에 탄생했고, 누군가에게는 2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든든한 노후보장책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승자의 이야기다. 패자의 이야기는 다르다. 이농 정책에 따라 도시로 밀려든 사람들은 가난한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이 엉겨 살던 청계천, 한강다리 밑, 판잣집은 쉽게 헐렸다. 서울 잠원역 앞 비닐하우스에 살던 한 할머니는 살면서 수차례 철거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청계천 다리 밑에 살 때는 그냥 어느 날 집이 사라졌고, 여의도에 살 때는 포크레인이 집을 쿡 내리찍었다고 한다. 강남에 있던 집은 지게차에 밀려 납작해졌다.
평생 내 집 마련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거나 게임에서 패배한 노인들은 절반의 확률로 빈곤에 빠지게 되었다. 나라는 제법 발전했지만, 그들을 보호해 줄 튼튼한 사회안전망은 없다.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선택해오지 않았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면 문 여닫는 소리도 조심스러워한다. 행여 집주인을 만나면 보일러가 말썽이 났어도 불편한 기색을 숨긴다. 세입자 신세란 그런 것이라고 한다.
승자의 이익이 있는 곳엔 폭력이 상주한다.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발은 더 많은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 더 빨리 사람을 내쫓아야 하는 속도전이다. 대규모 건설이 공간과 수익성의 이유로 이뤄지기 어려운 요즘, 세입자를 내쫓기 위해 작은 상가 하나에서도 건물주가 용역폭력을 구입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이다. 뉴타운 건설 붐이 끝나도 우리의 욕망이 끝나지 않는 한 새로운 버블과 폭력은 이렇게 얼굴을 드러낸다.

재벌은 노동자의 저축을 지원받아 성장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고통 분담은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정리해고, 임금동결, 파견법 수용. 불안정한 노동형태는 일반화되었고 높은 가계 저축은 높은 가계 부채로 전환되었다.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한국 경제문제의 중요한 뇌관이 되었다. 건드리면 터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집값은 올라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공공주택 보급률은 OECD 평균 12%,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사회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의 절반으로 꼴찌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강남 집값은 여전히 불패의 역사를 쓰고 있다.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불패의 역사인가? 다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약속을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까? 20년, 30년 뒤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한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선택을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은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 -자산기반복지의형성과 변화>(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년, 김도균 저)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43다시, 함께, 내일도!다시, 함께, 내일도!거기에선 상영하지 않습니다텔아비브국제엘지비티영화제 보이콧 선언 감독선23회 서울인권영화제국가의 이름으로

리뷰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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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롬사랑해

    우리는 땅을 욕망하면서부터, 땅을 딛지 않고 땅을 이고 살아가네요. 망해도 “반 정도 아름답다”니, 그래서 궁상도 반쯤은 유쾌한가 봅니다. 이것이야말로 연출의 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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